문희상 국회의장이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강경일변도로 대응한 결과 예산안과 선거법, 그리고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법까지 막아내지 못했다. 굳이 승패를 따지자면 범(汎)여권에 내리 3연패 한 결과다.
이후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이를 지켜보는 외부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국당은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일부·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주도의 공수처 설치법이 최종 통과되자 거세게 반발했다.
본회의장에서 나온 심재철 원내대표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한테 악법 중 악법인 공수처법이 날치기 처리됐다"며 "공수처는 북한의 보위부, 나치의 게슈타포 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수처를 두고 "문재인 정권의 모든 권력범죄 은폐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주구가 될 것"이라며 "문 정부 비리 은폐처, 친문 보호처"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의원 상당수는 4+1 협의체 합의에 한국당이 무시된 데 대한 분노를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본회의 진행을 맡은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성토도 잇달아 제기됐다고 한다.
이런 논의는 2시간에 걸쳐 이뤄졌고,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의원들의 결기를 모아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일부 의원들은 이미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조만간 의원 108명 전원의 사퇴서를 받기로 했다.
심 원내대표는 "강력한 대여 투쟁을 위해 (의원들이) 원내 지도부와 당 지도부에 모든 것을 일임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원내대표단, 당 지도부와 협의해 사퇴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겠다. 충분히 협의해 강력히 싸워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무더기 사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수가 200명 밑으로 내려가면 국회가 자동으로 해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국회의원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는 헌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적잖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곧바로 나온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의 사직은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찬성이, 회기가 아닐 때는 국회의장 결재가 필요하다. 그전까지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사직 의사를 서면 또는 구두로 철회할 수도 있다. 한국당 자력으로 사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국당의 결의는 현 상황에 대한 반발을 당 안팎에 강력히 호소하는 차원의 행동으로 풀이된다. 역대 국회에서 야당의 '압박 카드'로 종종 쓰였지만 실제 사직으로 이어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의원직 총사퇴 카드가 실제 사퇴로 이어진 건 지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회담 당시 민중당 소속 의원 8명의 집단사퇴가 유일하다. 한국당에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강경파를 중심으로 총사퇴가 거론됐었지만 힘을 받지 못했었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말 진정성을 보이려면 의원들이 회관에서 방(사무실)을 빼고, 보좌진도 퇴직시키고, 불출마 선언까지 해야 할 것"이라며 "총선 앞두고 그런 흐름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초선 의원도 통화에서 "결기를 드러내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홍준표 전 대표도 총사퇴 결정 직전 페이스북에 "이제 의원직 총사퇴도 의미 없다"며 "야당의 존재가치가 없다면 오늘 밤이라도 모두 한강으로 가거라"라고 거세게 비판한 바 있다.
한국당과 정치적 대극에 서 있는 정의당에서는 "저질 공갈일 수밖에 없다"며 "총선이 석달 반 남은 시점에서 정치적 실효성이 있을 리 없고 비웃음이나 사기 딱 좋은 헛발질"이라는 비아냥 담긴 논평까지 냈다.
한편 한국당은 이날 통과한 공수처가 헌법에 어긋났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