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 있는 택배상자들. 자료사진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갑질 고객'의 적반하장 격 대응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심한 배달업 종사자들의 사연이 잇따라 올라왔다.
#택배 기사 아버지를 둔 한 20대 여성은 "착불 택배비를 놓고 마찰이 생기자 A고객이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컴플레인을 걸었다. 조그만 실수에도 컴플레인이 누적되는 구조라서 아버지는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까봐 노심초사다"고 적었다. 하지만 A고객은 "착불 택배비 3천원을 찾느라 10분이 채 안 걸렸는데, 배달 기사가 불쾌한 표정을 지어 택배비를 보내지 않았고, 계속 컴플레인을 걸었다"고 당당해했다.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배달 라이더를 고용한 한 음식점 사장은 "B고객은 '만나서 결제(현장 결제)'로 주문하고서 20여 분간 부재중에 전화까지 안 받았다. 결국 라이더는 음식값도 못 받고 음식만 놓고 왔는데, 무전취식한 B고객은 '별점테러(리뷰 갑질)'까지 가했다"고 적었다.
실제 배달업 종사자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유형의 갑질 고객을 마주한다.
13년째 택배 기사로 일하는 박성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택배지부장(CJ대한통운 소속)은 10일 CBS노컷뉴스에 "'배달한 컴퓨터를 설치해달라'고 조르는 고객, '왜 이제 왔느냐' '물건을 여기 갖다 놓으라'고 반말로 지시하는 고객, 욕설을 내뱉는 고객 등 천차만별이다"고 전했다.
"아내와 함께 택배 일을 하는" 박 지부장은 "물량이 집중되는 명절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부는 당일배송을 목표로 택배상자 270개를 오후 11시 30분까지 배송했다. 그런데 한 고객이 '지금 몇 시인데 잠을 깨우냐'고 아내를 나무랐고,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송을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조합원에게 '고객이 심한 말을 해도 웃으며 응대하라'고 교육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특히 택배 기사는 방문하는 구역이 정해져 있어서, 할당 구역이 바뀌지 않는 한 갑질 고객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질 고객으로 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배달업 종사자들이 많지만, 정작 회사들은 갑질 고객 대처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박 지부장은 "CJ대한통운에는 서브터미널이 270여 개 있다. 각 서브터미널을 총괄하는 서브장(지점장)들에게 '갑질 고객 응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고 수없이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알아서 하세요'다. 방문한 집에서 애완견에 물렸을 때도 사측에서는 '고객한테 병원비를 청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가 고객에게 욕설을 들었을 때, 회사는 철저히 고객 위주로 대응한다.
박 지부장은 "욕하는 고객에게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등 대처를 잘못하면 회사 개인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며 "고객센터에 '택배 기사가 욕했다'는 신고가 들어가면 택배 기사에게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그 즉시 학자금 지원도 중단된다. (고객에게 욕을 들어도) 무조건 고개 숙이고 감정을 삭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갑질 고객에 대해 강력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는 "회사는 고객이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서 이들이 어떠한 행위를 해도 용납한다. 노동 선진국처럼 노동자의 인간존엄성과 인격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배달앱 '배달의 민족' 관계자 역시 "고객이 주문할 때 쓸 수 있는 요청사항에 무리한 요청을 할 경우 자동으로 블록 처리된다. 고객센터도 라이더에게 '배달 이외의 어떤 요구도 들어주지 말라'고 교육한다"며 "다만 '갑질' '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진상고객에 관련된 규정은 없고, 위법한 상황이 아니라면 법적 조치를 취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