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북한이 한미 양국의 연합공중훈련 연기 결정에도 불구하고 적대시 정책의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철회'를 요구하며 미국의 추가 조치를 압박했다.
스스로 설정한 연말 협상시한이 다가오자 초조함을 드러내면서도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서는 기싸움에 밀리지 않겠다는 특유의 '벼량끝 전술'로 보인다.
북한은 18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 담화를 차례로 내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고문은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적으로 보는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미국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전에는 비핵화 협상에 대하여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나중에 발표된 김 위원장의 담화가 분량도 많고 강도도 셌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협상의 틀거리 내에서 조미관계개선과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문제들을 함께 토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 사이에 신뢰구축이 먼저 선행되고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온갖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 문제를 론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조미대화에 관심이 있다면 어째서 대화 상대방인 우리를 모독하고 압살하기 위한 반공화국 '인권' 소동과 제재압박에 그처럼 악을 쓰며 달라 붙고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밝혀 최근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도 문제 삼았다.
이를 종합하면 북한이 철회를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비롯한 안전보장 외에 제재완화와 인권 문제까지 망라한 개념이다. 북한은 '생존권'과 '발전권'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제도(체제) 안전'을 위협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다만 북한이 대화 복귀의 조건으로 상정한 적대시 정책의 현실적 목표는 이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1년도 퍽 넘게 자부하며 말끝마다 자랑해온 치적들에 대해 조목조목 해당한 값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고 앞서 김 고문도 "우리는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더 이상 미국 대통령에게 자랑할 거리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합의를 전후로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유예 등의 '주동적 조치'를 취했음에도 미국 측은 아무런 화답이 없이 외교치적 선전 등 자국내 정치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있다.
자신들이 이미 실행한 조치들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합당한 성의 표시를 받아야 회담에 응하겠다며 몸값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환경을 감안할 때 북한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자체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적 야심을 버리지 않고 년말년시를 앞둔 지금의 바쁜 고비를 넘기기 위해 시간벌이만을 추구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바쁠 것이 없으며 지금처럼 잔꾀를 부리고있는 미국과 마주앉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 결정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요구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사실상 꼬투리를 잡았다.
"미국이 합동군사연습 연기를 그 누구에 대한 '배려'나 '양보'로 묘사하면서 마치도 저들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고있는데 우리가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남조선과의 합동군사연습에서 빠지든가 아니면 연습자체를 완전히 중지하라는 것"이라는 강변이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트위터 글이 북한 최고 존엄에 대한 결례로 비쳐진 것도 한몫 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있어야 할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라면서 "당신은 빨리 움직여야 하고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곧 만나자"고 말해 협상의 칼자루를 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로 대화 복귀의 명분은 얻었지만 이를 즉각 수용할 경우 약한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하노이 노딜'을 통해 경험했듯 오히려 협상 실패로 이어질 것이란 학습효과가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연말 시한이 시한폭탄처럼 작동하는 가운데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아슬아슬한 밀고당기기가 몇 차례 더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