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장근로' 1년만에 입장 바꾼 정부, 주52시간 전면 후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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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지난해엔 "단순 일감 증가는 재난 아냐" 특별연장근로 확대 반대
근로기준법도 '특별한 사정'으로 제한…위법 시비 우려돼
"해외서도 경영상 사유로 특별연장 허용? 실제 조건도, 문화도 달라"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52시간제 보완대책 추진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김민재 기자)

 

정부가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안착을 위한 보완책 중 하나로 특별연장근로 확대안을 내놓았지만, 노동계 반발은 물론 위법 시비까지 일고 있어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 "일감 급증 등 경영상 사유로도 무제한 노동 허용"

고용노동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주52시간제 보완대책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대책은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조건 확대안이다.

'특별연장근로' 제도는 자연재난 등을 수습하기 위해 연장근무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노동자 동의 아래 법정한도와 관계없이 무제한 연장노동을 허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9조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을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가장 최근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로, 당시 정부는 ASF 방역을 위해 관련 기관 3곳에 대해 한시적으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다.

이러한 인가 조건에 정부는 업무량이 늘어나는 등 경영상 사유로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함께 발표된 중소기업에 대한 계도기간 부여 방안이나 외국인 고용허용한도(E-9) 한시적 상향 조정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대책이다.

중소기업이나 구인난을 겪는 일부 사업장에 대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다른 대책과 달리, 특별연장근로 확대안은 시행규칙 자체를 개정하기 때문에 기업 규모나 기한의 제한 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년 전 '경영상 사유' 확대 반대하던 노동부, 180도 입장 바꾼 까닭은?

그런데 불과 지난해 7월, 노동부는 경영상 사유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주52시간제 보완책 중 하나로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를 요구하자 노동부는 관련 브리핑을 열고 '불가(不可)' 방침을 공식 천명하기도 했다.

당시 경총은 2~3년마다 공장 전체를 멈추고 정기보수작업을 하는 화학·정유·제철, 긴급 장애에 대비해 24시간 일하는 IT 업계, 정해진 기간 내 집중적으로 일하는 조선업·건설업 등을 특별연장근로 대상 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단순히 업무가 몰릴 경우는 재난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극히 예외적인 사항에만 적용하도록 한 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적용지침'까지 배포하면서 △재난 등 사고가 발생했거나 발생이 임박했고 △이러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다른 근로자로 대체가
어려워 연장근로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인가 및 승인이 가능하다고 못 박기도 했다.

법은 그대로인데 정부 입장만 180도 바뀐 데 대해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 이은호 대변인은 "1년 동안 사회적 논의도 없었고, 범위가 확대될 특별한 사안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관할 부처의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 시행된 지난 4월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이마트 본점 사무실에 '9 to 5 근무문화 정착을 위한 우리의 약속' 메모를 붙어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상위법도 사유 엄격히 제한…"노동시간 정책 무력화 우려돼"

상위법인 근로기준법 제53조에서도 특별연장근로 사유는 '특별한 사정'으로 성격을 명확히 제한하고 있다.

이번 보완책을 발표한 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통상적인 업무과정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업무량이 증가하는 경우"며 "갑자기 회사의 기계가 고장이 나서 기계를 수리를 해야 한다든지, 돌발적인 상황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경영상 사유로 인한 인가 조건의 대표적인 예시를 제시했다.

지난해 관련 지침에서 거론한 사업장 경영과 관련된 인정 예시인 △폭설·폭우 등 자연재난이 사업장에 발생 △감염병, 전염병 등의 발생 △화재, 폭발, 환경오염사고 △방송·통신 기능 마비 사태로 인한 방송재난 등과는 확연히 온도 차가 느껴지는 설명이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특별연장근로는 사회적, 자연 재난에 대비하는 제도인데, 일시적 물량 폭증에 따른 경영상 이유라는 조건으로 허용한다면 명확한 법률적 요건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며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과도한 행정조치로 위법으로 판단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컨대 원청이 갑자기 물량을 늘릴 때 사인 간의 계약인데 이를 정부가 확인하기 어렵다"며 "예측하지 못한 불가항력적인 재난으로 명확하게 사유를 정하지 않는다면 사업주들이 모든 경우에 특별연장근로로 대처하는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고, 노동시간 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경영상 사유로 허용되는 특별연장근로 해외사례(자료=고용노동부 제공)

 

◇노동 선진국도 경영상 사유 허용? "실제 요건 엄격…한국과 다른 노동조건 고려해야

이에 대해 정부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노동 선진국도 경영상 사유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면서 이번 대책을 일종의 '정상화' 작업으로 묘사했다.

이재갑 장관은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68시간까지 근로가 허용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굉장히 제한적으로 해석해 온 것"이라며 "지금은 52시간제로 단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례에 맞춰서 경영상 이유까지 확대해서 해석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 일본과 독일,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세 나라 모두 업무량이 급증할 때 특별연장근로와 유사한 제도를 허용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노총 유정엽 정책실장은 "일본의 특별연장 인가제도는 재해나 기타 긴급사유에 한정해서 운영한다"며 "예측하기 어려운 업무량 증가에 관해서는 노사협정과 행정관청 신고를 거치도록 하는데, 이는 특별연장 인가제도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독일도 감독관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한 특별연장 허가제도는 공공에 필요한 긴급한 사유로 한정하고, 일반적인 일시적 업무량 증가 상황에는 허용하지 않는다"며 "프랑스 역시 시행령을 통해 엄격하게 연장근로를 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 애초에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과 비교할 수 없도록 평균 노동시간이 적은 노동조건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김성희 소장도 "독일, 프랑스는 시간외노동 자체가 예외로 취급받는 나라"라며 "반면 한국은 주52시간제라는 단어 자체가 12시간의 시간외노동을 상수로 두고 이에 더해 특별연장근로까지 하겠다는 것이어서 국제 관행과 비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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