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DC코믹스의 슈퍼빌런 캐릭터 조커가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조커'는 코믹스의 인물을 1980년대로 가져와 현실과 맞닿은 채, 불온한 세상 그리고 이 시대가 가져올 미래를 말한다. 이러한 현실과의 접점이 '조커'의 인기 요인 중 하나 아닐까. 이에 '조커'의 장면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배우를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로버트 드니로와 아서, 그리고 '조커'최영주 기자(이하 최) : 기억에 남는 장면 이야기를 하니까 말인데, '머레이 쇼'를 보면서 웃겼던 게 바로 머레이 역을 맡은 배우가 로버트 드니로라는 점이었다.
이진욱 기자(이하 이) : 아, 나도 그 생각을 했다.
최 : 그동안 로버트 드니로가 작품 속에서 연기한 유명 캐릭터는 고담이라 불릴 정도로 혼란스럽고 부패한 뉴욕의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인물들이다. '택시 드라이버'(1976년)의 트레비스가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머레이 역할을 맡은 것도 재밌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 이유다.
이 : 한때 사회파 영화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인물이 기득권의 자리에서 아서라는 인물을 조롱하고 결국에는 심판받는다. 그를 뛰어넘은 존재가 나타나는 과정이 영화 안에서 그려지지만 영화 밖으로 봐도 똑같다. 세대교체랄까? 드니로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배우의 뒤를 이어 호아킨 피닉스가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영화 외적인 선언 같기도 했다.
최 : 드니로라는 배우를 통해서, 드니로가 출연했던 전작과 지금의 영화를 통해서 시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걸 보며 감독이 캐스팅을 영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 그게 참 재밌는 것 같다. 유럽 사회를 뒤흔든 '68혁명'에서 권위적인 기성세대의 답답함에 환멸을 느낀 젊은 세대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새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꿈틀댔던 유럽과 미국의 1960~1970년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주류 기득권층이 됐다. 드니로의 모습은 기득권이 된 이후에도 젊은 시절에 추구했던 가치를 계승하고 있는가, 유지하고 있는가 물음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서 비판받고 있는 386세대도 마찬가지 카테고리 안에 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곳도 달라진다는 말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세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공감대가 적지 않나 싶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최 : 동감한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스가 '조커'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기득권이 된 모습을 보며 과거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현실을 소환하게 된다. 조커라는 코믹스의 인물을 현실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그걸 보는 관객도 현실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오게 만드는 영화다. 그렇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 있다.
이 : 이 영화가 특별한 지점에 있는 건 조커라는 코믹스 인물을 가져왔다는 것과 더불어 영화 속 이미지가 주는 함의다. 하나하나 활용을 잘 했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프레임 안에 가져간 계단 신, 채플린의 영화 등 하나의 장면 안에서 많은 걸 유추해낼 수 있도록 화면의 매력을 십분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이 '조커'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최 : 영화에서는 뉴스와 '머레이 쇼'가 반복해서 나온다. 사회적인 문제와 코미디의 반복을 통해 그 자체로 희·비극의 교차 내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뉴스의 내용을 보면 현실 반영이자 '조커'라는 영화 안에서 아서가 속한 계급을 바라보는 기득권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때로는 비유적으로 담아낸다고 봤다.
영화 '조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 마지막에 조커가 군중의 열망을 대변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장면이 있다. 기존에 조커를 표현했던 영화를 보자면 왜 악당들이 조커를 따르는지가 항상 궁금했다. 그가 희대의 악당으로서 악당들의 추앙을 받고, 지도자로서 서기까지 과정을 납득시킨 장면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으로 세운 공화정을 부정하고 황제가 되는 과정도 비슷하다. 프랑스혁명을 전 유럽에 전파시킨 전쟁영웅이 황제로 군림하는 과정에는 분명 군중의 추앙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반복된 과정인데, 과연 우리는 이를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조커가 군중의 화신이자 악당들의 악당이 되는 장면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 것 같다. 마지막에 조커가 입 안의 피로 스마일 마크를 그리는 건 대단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최 : 이게 사실 한 인물이 고난을 통해 점차 성장하고, 거대한 적을 무너뜨리며 결국 군중의 지지를 받게 되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다. 배트맨도 '다크 히어로'라고 하는데, 조커가 '악당들의 영웅'이 되는 모습을 보며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광대 가면을 쓴 군중이 조커를 구하는 건 마치 구원자이자 영웅의 부활처럼 보였다.
이 : 정신질환을 지닌 어머니와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학대당한 과정이 분명 아서의 질환을 만들었고,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낳았다. 아버지 역할의 사람들이 내게 부당함을 계속 요구하고 학대하면 개인이 어떻게 성장할지 말해준다. 친부살해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부하고, 아버지를 초자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극복하고 또 다른 세상을 여는 혁명 서사다. 정말 이대로 미래를 향해 갈 거냐는 물음을 이 영화는 분명히 던진다고 본다.
영화 '조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최 : 사람들이 또 많이 주목하는 게 호아킨 피닉스가 등뼈와 갈비뼈로도 연기한다는 거다.
이 : 처음 봤을 때 에일리언이 튀어나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웃음) 클로즈업된 등뼈를 보는데, 그게 사실은 신발 끈을 풀고 있었던 장면이다. 광대의 신발 끈을 푸는데, 그게 애처롭게 다가왔다. 삶이라는 게 이렇게 고단하구나. 암튼 대단한 등뼈 연기였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게, '머레이 쇼'에 나가려고 분장하는 장면이 있다. 머리를 염색하고 얼굴은 물론 혀까지 하얗게 칠한다. 그건 애드리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 정도로 연기 잘하는 사람을 두고 연출자가 그 정도로 디테일하게 디렉팅 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 장면은 호아킨 피닉스에게서 나왔을 거 같은데, 혀를 하얗게 칠하는 걸 보고 저 사람은 자기 몸으로 엄청난 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절감했다.
최 : 극중 아서가 우발적으로 지하철에서 사람을 죽이고 나서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간 다음에 갑작스럽게 춤을 춘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숨어 총을 숨기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릴 예정이었는데, 호아킨 피닉스가 춤을 추는 장면으로 바꿨다고 하더라.
이 : 고비고비마다 춤을 췄던 거 같다. 마치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처럼? 처음 화장실에서 추는 춤은 현대무용이나 발레의 느낌은 아니고, 태극권이 생각났다. (웃음)
최 : 나는 현대무용 같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정말 광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런 식으로 춤을 추는 걸 보면서 말이다. 아서는 걸음걸이도 독특하다. 상황을 말이 아니라 마치 코미디언이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조커가 가진 광대라는 이미지가 무언의 몸짓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이 : 그래서 나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완벽한 조커로서 그려진 것 같아서 너무 대단하게 보였다. 나의 정체성, 조커라는 정체성을 찾은 것이지 않나. 우리가 흔히 봐 온 조커라는 희대의 악당으로서 그 계단을 내려오는데, 말 그대로 조커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는 전혀 조커라는 인물이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고뇌하고 소심했던 인물이 나를 찾았다는 듯이 춤을 추며 내려오는 그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최 :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총으로 죽인 장면이 조커의 시작이라고 느껴졌다. 아서는 반항하지 못한 채 때리면 맞고 빼앗으면 빼앗겼다. 그런 나약한 인물이 우연한 계기로 사람을 죽이고 나서, 심지어 춤을 추는데 그 춤이 어떤 자신감의 표출처럼 보였다. 조커의 씨앗이 그때 심어지지 않았나 싶다. 화장실 춤을 보며 이전 조커들이 떠올랐다. 조커가 굉장히 무서운 인물이지만, 과장된 웃음이나 몸짓 등 광대라는 이미지가 그의 아이덴티티다. 화장실에서의 춤은 광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 담긴 몸짓이자, 조커의 시작이라 봤다. 피닉스가 그걸 즉흥적으로 해냈다는 걸 듣고 놀랐다. 총을 닦고 두려움에 떨었다면 전형적인 상황이 됐을 텐데, 거기서 춤을 추면서 전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서사에 다름을 부여했다.
이 : 연출자의 미장센이나 장면들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연기였다. 로버트 드니로라는 대배우가 나오긴 하지만 조커라는 인물에 맞춰져 있는 영화에서 그 인물의 연기가 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었는데, 호아킨 피닉스가 너무 연기를 잘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초창기 리버 피닉스의 동생으로 많이 알려졌다. 이후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면서 어느 순간부턴가 거장들과 작업을 하고, 자기의 재능을 폭발시켰다. 이제는 거장의 그늘을 벗어나 연출자를 압도하는 배우가 됐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호아킨 피닉스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온 삶 자체가 영화에 녹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조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클로즈업, 그리고 관객의 시선최 : 영화에서 아서의 얼굴을 화면에 꽉 차도록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어떻게 봤나?
이 :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차원에서의 영화적 효과이지 싶다. 현상으로서의 웃음이 아니라, 표정 안에 있는 그의 본질을 보자는 환기였던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 : 발작적이고 표면적인 아서의 웃음에만 초점을 맞출 뿐, 고담시 그 누구도 아서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도 아서를 '해피'라 부르며 그의 아픔을 부정하고, '아서' 자체를 보지 않는다. 상담사도 그렇다. 아서는 상담사에게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본 적 있냐고 말한다. 담배를 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아서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한다. 유일하게,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까이서 봐주는 사람이 관객이라는 점에서 클로즈업은 유의미한 연출이지 않나 싶다. 클로즈업을 통해 아서의 내면을 관객에게 드러낸 피닉스도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아서를 오롯이 바라봐줄 수 있는 건 관객뿐이라고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재밌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이 : 그 연장에서 문득 드는 생각인데, 연출자 입장에서 '아서라는 광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내 영화를 보는 당신들의 태도는 자본가가 채플린을 바라보는 태도와 달라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자본가들이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태도와 관객이 아서를 보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요청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갑자기 뭉클해진다.
최 : 우리도 사실 그런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약자에 대해서는 조롱과 혐오의 요소만 보지 그들의 속까지, 그들의 얼굴까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게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서 드러나고, 사회 속에 있는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계속 영화가 질문을 던지며 현실을 소환하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가 대단한 거 같다.
이 :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영화의 가치를 먼저 봐준 것은 멋진 일이다. 코믹스 영화 사상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건, 어떻게 보면 관객들에게 영화를 봐야 한다는 당위를 하나 더 실어준 셈이다. 단순히 코믹스 영화라고 치부했다면, 이 영화를 볼 관객의 폭은 더 좁아졌을지 모른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적합한 작품에 상을 줬다는 건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선택이랄까.
◇ 한 줄 평이 : '과거와 현재를 통해 예측한 미래의 시나리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과 매치시켜 영화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살아왔던 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최 : '누군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현실에 대해 물음을 갖게 하는 영화'. 거듭 말했듯이 코믹스 속 인물인 조커를 현실로 데려왔고, 아서와 조커를 보며 관객들은 현실과 접점을 찾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화 '조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