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수입과 판매를 허용하는 것 역시 성적 활동의 특정 형태에 대한 승인이라는 점에서 (리얼돌 수입 금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개입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 수입을 사실상 허용한 이후 리얼돌 문제를 다룬 학술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됐다.
28일 건국대에 따르면 이 대학 부설 몸문화연구소 윤지영 교수는 지난 18일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과 공동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논문을 발표했다.
앞서 2017년 7월 인천세관이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규정해 수입 통관을 보류했고, 리얼돌 수입업자는 이에 반발해 인천세관을 상대로 수입통관보류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은 리얼돌을 '음란물'로 규정해 통관보류를 결정한 세관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성기구와 마찬가지로 리얼돌도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해 리얼돌 수입은 법적으로 허용됐다.
논문에서 윤 교수는 리얼돌 수입 관련 재판을 언급하면서 "1심은 리얼돌에 대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란물'로 규정했지만, 2심에서는 '성기구'로 정의하면서 수입을 허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1심에서 '사람의 존엄성'을 말할 때 말하는 사람은 여성을 가리키지만, 2심에서 성적 자유를 지닌 '개인'은 남성으로 한정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여성이 사용하는 성인용품과 남성이 사용하는 리얼돌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봤다.
그는 "여성용 성인용품은 남성 신체의 완벽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여성이 기구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신체가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리얼돌 등 남성용 성인용품은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리얼돌이 불러일으키는 성적 자극의 본질은 "수동적이며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라고 윤 교수는 규정했다.
윤 교수는 이어 "남성들의 치료와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여성 신체가 형상화되는 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인격침해나 심리적·신체적 훼손을 유발하는지, 어떤 측면에서 트라우마적 요소가 될 수 있는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고 판결을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을 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한 달 만에 26만3천792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서명 참여자 일부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리얼돌 수입허용 판결 규탄 시위'를 열고 "리얼돌은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성욕과 지배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하는 성 착취 문화의 일면"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8일 산업통상자원부 종합 국정감사에서는 무소속 이용주 의원이 감사장에 실제 리얼돌을 가져와 산자부 장관에게 리얼돌 수입 문제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1년에 13건 정도였던 리얼돌 통관 신청은 지난 6월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재까지 100여건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