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는 22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전날 열린 해외동포사업국 창립 60주년 기념보고회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사진=조선중앙TV 보도화면 캡처)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고문에 이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내세워 연말 비핵화 협상 시한을 상기시키며 대미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27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 담화에서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끌기를 하면서 이 해(올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미관계가 그나마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북미 정상 간의 "친분관계의 덕분"이라면서 "그러나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그는 "조미 수뇌들 사이의 친분관계는 결코 민심을 외면할 수 없으며 조미관계 악화를 방지하거나 보상하기 위한 담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조미관계에서는 그 어떤 실제적인 진전이 이룩된 것이 없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불과 불이 오갈 수 있는 교전관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다는 외교적 명구가 영원한 적은 있어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격언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는 경고로 담화를 마쳤다.
김 부위원장의 이날 메시지는 사흘 전인 지난 24일 발표된 김계관 고문의 담화와 비교할 때 톤이 한층 강경해졌고 내용 자체도 길어졌다.
김 고문은 워싱턴 정가와 행정부 관료들의 "냉전식 사고"를 비판하면서도 북미 정상 간 친분관계는 "각별"함을 강조하고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는 기대감에 방점을 뒀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젠틀맨'(gentleman)이라고 부르며 '스톡홀름 노딜' 이후의 침묵을 보름여 만에 깨고 유화적 손짓을 한 것에 대한 화답 성격이 짙다.
반면 김 부위원장의 담화는 첫 문장부터 "최근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과 아량을 오판하면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더욱 발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서 미국 측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문제 삼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을 강조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김 부위원장은 찰스 리처드 미국 전략사령관 지명자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 보고서에서 북한을 '불량 국가'라 지칭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제반 상황은 미국이 셈법 전환과 관련한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를 고립 압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통일전선부장 직을 하차하고 2선후퇴한 상태여서 북한이 그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배경이 주목된다.
이는 김 부위원장의 대미 강경 이미지를 활용하되 원로급 인사의 개인 담화 형식을 통해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계관, 김영철 모두 고문급이고 원로들인데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전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셈법 전환 없이 적당히 시간만 끌며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한다는 의심을 점차 굳히며 대응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추세다.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금강산 발언도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남측을 흔들어 미국을 움직이려 한 의도가 있다. 남측이 한미공조 틀에 묶인 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도 근본적 검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여기에는 북한 식량난 악화 등 대북제재 효과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할 듯 말 듯 하면서도 속 시원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임 교수는 "북한은 연말 총화를 앞두고 초조감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김 위원장의 딜레마가 깊어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