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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성8차 윤씨 "살아나가기만...19년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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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흘 잠 안재우고 폭행
구체적인 진술했다? 경찰의 조작
무기징역 받고 죽고 싶었으나...
명예 회복해서 당당히 살고 싶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윤 모씨(화성 8차 사건 범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그중에서도 8차 사건. 우리는 지금까지 이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8차의 범인은 그 당시에 검거가 됐고 20년간 옥살이까지 했는데 만약 그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지는 거죠.

심지어 이춘재가 ‘8차 역시 내 소행이다’ 라고 자백을 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설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춘재의 자백은 아주 구체적이고요. 8차의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진술을 하고 있답니다. 즉 이춘재가 8차의 진범일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당시 8차의 진범으로 지목돼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 모씨. 윤 모씨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또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까요. 윤 씨 얘기를 오늘 직접 들으시겠습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하고 2009년에 1급 모범수로 석방이 됐습니다. 윤 모씨, 음성 변조를 해서 진행한다는 점 미리 말씀을 드리죠. 윤 선생님, 안녕하세요?

◆ 윤 모씨> 안녕하세요.

◇ 김현정> 교도소에서 나온 게 2009년인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 뒤로는?

◆ 윤 모씨> 2009년에 나와서 교화위원 집에서 한 3년 있다가 직장 하나 얻어서 지금 8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렇게 살다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춘재라는 사람이 내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여러 개의 범인이다라고 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 소식 처음 딱 전해 듣고 어떠셨어요?

'화성 8차' 범인 "경찰에 고문당해 자백" 주장 (CG)[연합뉴스TV 제공]

 

◆ 윤 모씨> 저는 좀 착잡했습니다.

◇ 김현정> 착잡하셨어요?

◆ 윤 모씨> 이춘재가 화성 사건 했다고 했는데, 제가 8차 아닙니까? 나중에 조사를 하다 보니 제 사건까지 (이춘재가) 저질렀다고 해서 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 김현정> 착잡했다는 말씀은 누명 쓰고 살았던 것들이 쭉 생각이 나면서 착잡했다. 그런 말씀이실까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여러분, 사실은 우리가 뭐 단정적으로 8차의 범인이 이춘재다. 윤 모씨는 억울한 누명을 쓴 거다. 지금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윤 모씨는 수감 생활 내내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왔고요. 이춘재는 자기가 8차 진범이라고 주장을 하고 나선 상황이기 때문에, 즉 아귀가 맞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 8차 사건을 돌아봐야 한다는 거.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서 진상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는 점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좀 드려보죠. 30년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을 좀 되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다가 끌려가셨어요?

◆ 윤 모씨>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형사들이 와가지고 조사할 게 있다고 해서 그때 갔습니다.

◇ 김현정> 밥 먹고 있는데?

◆ 윤 모씨> 네.

◇ 김현정>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셨어요?

◆ 윤 모씨> 그렇죠. 끌려갔더니 농기구 사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별일 아니라고 금방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양산동에 OOO 별장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요. 올라갔다 거기서 뭐라고 한마디한 거 기억이 나요.

◇ 김현정> 누군가의 별장으로 끌고 가서 뭐라고 한마디를 했어요? 누가요?

◆ 윤 모씨> 경찰이죠.

◇ 김현정> 뭐라고 한마디를 했습니까?

◆ 윤 모씨> '네가 8차 범인이다‘ 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 경찰서로 갔습니다.

◇ 김현정> 산으로 먼저 끌고 가서, 별장으로 먼저 끌고 가서 ‘네가 8차 범인이지’ 하고 그다음에 경찰서로 데리고 와서… 그 8차 사건 나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을 거 아니에요?

◆ 윤 모씨> 저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얘기했었거든요, 그 당시에요. 그런데 거짓말 탐지기 하신 그분이 누구인지 성함은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 (거짓말 탐지기) 뭐가 안 맞는다고 데려가 조사해.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 김현정> 거짓말 탐지기를 하더니 뭐가 안 맞는다. 데려가서 조사해?

◆ 윤 모씨> 네.

◇ 김현정> 아니, 그런데 지금 수사 기록을 보면 체모. 그러니까 윤 선생님 체모와 족적을 근거로, 체포되자마자 5시간 만에 자백을 했다. 이렇게 그 당시 기록이 되어 있어요.

◆ 윤 모씨> 그 당시 기록은 그게 맞지를 않습니다. 체모는 그때 OOO 형사가 뽑아달라고 해서 6차례 뽑아줬습니다.

◇ 김현정> 여섯 차례 뽑아주셨어요?

◆ 윤 모씨> 네. 제 생각에는 그 체모를 여섯 번 뽑아줬는데 한 번 뽑을 때 한두 개 뽑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 체모를 갖다가 그 현장에 뿌려가지고 제 것이 나왔다. 그런 얘기도 하더라고요.

◇ 김현정> 뽑아줄 때야 전혀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하셨겠지만.

◆ 윤 모씨> 그런 생각을 저는 전혀 못했죠.

◇ 김현정> 그래요. 5시간 만에 자백한 적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고.

◆ 윤 모씨> 네.

◇ 김현정> 경찰의 가혹 행위로 어쩔 수 없이 허위 자백을 했다. 이렇게 제가 알고 있는데. 들었는데 가혹 행위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식이었습니까?

◆ 윤 모씨> 잠을 안 재우고 쪼그려뛰기를 몇 번 했어요.

◇ 김현정> 잠을 안 재운다는 건 몇 시간이나요?

◆ 윤 모씨> 3일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3일 동안 한 번도 안 재워요?

◆ 윤 모씨> 네. 미치지 않는 이상은 뭐 사람이 견딜 수가 없는 거죠.

◇ 김현정>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다리가 불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쪼그려뛰기를 시켰어요?

◆ 윤 모씨> 쪼그려뛰기 한 번인가 하다가 안 되니까 일어났다 앉았다 그걸 시키더라고요. 그걸 못해서 누가 발로 걷어찼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 김현정> 시키는데 못 하니까 발로 걷어찼어요?

◆ 윤 모씨> 네. 가슴하고 엉덩이 쪽을 좀 많이 맞은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게 뭐 비가 오거나 그러면 쑤시고 멍 자국이 가끔 나더라고요.

◇ 김현정> 지금도 후유증이 있을 정도로 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했다고 허위 자백을 해 버리면 살인자 누명을 쓰는 건데 끝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야겠다. 이런 생각은 못 하셨어요?

◆ 윤 모씨> 누구 형사인데 그 당시에 조사받을 때요. ‘너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셨다는 말씀이군요.

◆ 윤 모씨>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의아한 게 그때 경찰에서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어떤 피해자의 특징, 범행 과정. 이런 걸 상당히 구체적으로 윤 씨가 진술을 했다.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 윤 모씨> 거의 다 경찰의 조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김현정> 어떤 식으로요? 진술서를 어떻게 조작했습니까?

◆ 윤 모씨> OO라는 형사가 있어요. 나한테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네가 8차 범인이 맞다는 거예요. 음모 털을 한번 준 적이 있습니다. 그게 거기에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털이 왜 거기 있냐 물어보니까 그다음부터 대답을 안 하고 조서에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리고 몇 대 맞고 나니까 정신이 없더라고요.

◇ 김현정> 몇 대 맞고 나니까 정신이 없으셨어요?

◆ 윤 모씨> 네. 정신이 멍하고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감을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 김현정> 죽었는지 살았는지 느낌이 안 날 정도로 맞으셨어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러고 나서요?

◆ 윤 모씨> 그러고 나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때요. 새벽 되니까 내가 자백했다고 기자들이 막 몰려오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면 그 구체적인, 이렇게 해서 담을 넘어갔고 이렇게 폭행을 했고 살인을 했고. 이거는 다 형사들이 알아서 적은 거예요 아니면 불러준 대로 말씀을 하신 거예요?

 

◆ 윤 모씨> 형사가 거의 불러준 걸로 생각납니다, 지금.

◇ 김현정> 불러줬어요? 이렇게 한 거 맞지 그러면 네 이런 식으로?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 피해자의 오빠와 지인이었다. 이렇게 당시 보도가 됐었는데 지인인 건 맞습니까?

◆ 윤 모씨> 지인인 건 안 맞고요. 그 당시에 제가 농기구 수리할 때는.

◇ 김현정> 공장 다니실 때?

◆ 윤 모씨> 네. 여러 사람 상대하다 보니까 제 또래가 있다고 해도 봐도 잘 모르거든요. 걔가 내 친구라고 하는데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 김현정> 농기구 수리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하고 접하기 때문에 알 수도 있지만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 정도의 사이였다.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러면 그 집 가보기는 하셨어요, 피해자의 집?

◆ 윤 모씨> 가본 적이 없습니다.

◇ 김현정> 가본 적도 없어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알겠습니다.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위 자백, 허위 진술서를 썼다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선생님, 재판에서는 바로잡았어야 되는데 이상한 건 1심에서는 인정하셨잖아요.

◆ 윤 모씨> 구치소 갔을 때 (제가) 사형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 김현정> ‘너 사형이다’ 라는 얘기를 구치소 수감됐을 때 들었어요?

◆ 윤 모씨> 사형이라는 소리 듣고 겁 안 먹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 그리고 거기에 있던 동료가 시인하고 감형받아라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 김현정> 시인하고 감형을 받아라? 차라리 사형 아니고 무기 징역 목숨이라도 건져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말을 구치소에 있던 다른 수감자가 해 줬어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 말을 듣고.

◆ 윤 모씨> 네.

◇ 김현정> 아니, 국선 변호인이 있었다고 제가 들었는데.

◆ 윤 모씨> 국선 변호인 얼굴 한 번 못 봤습니다.

◇ 김현정> 네?

◆ 윤 모씨> 얼굴 한번 못 봤어요. 국선 변호인 얼굴 자체를 못 봤다니까요.

◇ 김현정> 얼굴 한번 못 보셨다고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1심, 2심, 3심 다 있었던 거 아닙니까?

◆ 윤 모씨> 저 구형받고 1심 때 그 변호사 얼굴 살짝 봤습니다. 법정에서 봤어요.

◇ 김현정> 세상에. 그건 뭐 변호인이 사실상 아니네요.

◆ 윤 모씨> 변호인이 아니고 저 혼자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김현정> 그러면 경찰 조서 같은 걸 읽어봐야 되는 건데, 당시에는 글을 좀 읽는 데 어려움도 있으셨다고 제가 들었단 말입니다.

◆ 윤 모씨> 제가 가정 형편이 좀 어려워서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 말았어요.

◇ 김현정> 게다가 이건 법적인 용어들, 어려운 용어까지 많았기 때문에 이건 변호사 조력 없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겠네요?

◆ 윤 모씨> 그 당시에는 뭐 저도 배움이 짧았고 제가 지식이 없다 보니까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래서 도와주라고 국선 변호인을 붙인 건데 이 사람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 윤 모씨> 네, 민선 변호인을 고용하라고 하는데 돈도 없고 우리 친척들도 그만한 돈이 없더라고요.

◇ 김현정> 돈이 없고. 게다가 부모님은 돌아가셨죠?

◆ 윤 모씨> 부모님은 돌아가신 상태고요. 그 당시에 1500만 원인가, 2000만 원 든다고 하더라고요. 변호사 한 번 선임하는데. 숙부님이나 친지들도 그만한 돈도 없었고. 또 변호사 쓸 엄두도 안 났을 거예요.

◇ 김현정> 그렇군요. 결국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8차 범인으로 지목이 돼서 무기 징역이 확정되고 감옥으로 갔습니다. 본인 주장대로 하면 이게 무죄고 보통 억울한 옥살이가 아닌데 도대체 20년을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버티셨어요?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 사진. 사진=연합

 

◆ 윤 모씨> 글쎄요. 처음에 저도 죽을 생각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 김현정> 죽을 생각하셨어요?

◆ 윤 모씨> 죽을 생각도 했는데 종교 교화위원이라고 있습니다.

◇ 김현정> 교화위원 있죠.

◆ 윤 모씨>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직 나이도 젊고 살 길이 막막한데 벌써 죽어서 되겠느냐. 그런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종교를 한번 가져보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종교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종교의 힘으로 버틴 거 같습니다.

◇ 김현정> 죽고 싶을 때마다 기도하면서?

◆ 윤 모씨> 네.

◇ 김현정> 뭐라고 기도하셨어요?

◆ 윤 모씨> 글쎄요. 제가 여기서 나가서 살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제 누명 벗고 싶다고 교화위원한테 얘기도 했었고 아는 자매님한테 여러 번 얘기를 했었거든요.

◇ 김현정> 살아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나가서 누명 벗고 싶다고 기도하셨어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 안에서 뭔가 재심을 신청한다든지 이런 생각은 전혀 못 하셨습니까? 엄두가 안 나셨습니까?

◆ 윤 모씨> 생각을 안 한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돌봐주신 교도관님들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한테 일단 면담을 해 봤어요.

◇ 김현정> 면담을 할 때마다 말씀하셨어요?

◆ 윤 모씨> 면담할 때 말씀드렸는데 재심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보니까요.

◇ 김현정> 맞습니다.

◆ 윤 모씨> 변호사도 있어야 되고 뚜렷한 증거도 있어야 되는데 뭐 증거가 워낙 완벽해서 저로서는 재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몇 번 말씀을 들었습니다.

◇ 김현정> 재심을 하려면 완전히 이 상황을 뒤집을 만큼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 재심 신청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 윤 모씨> 방법이 없더라고요, 보니까요.

◇ 김현정> 그렇게 버티고. 제가 그 당시 가깝게 지내셨던 교도관님하고 통화를 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내가 교도관 생활 수십 년 하면서 이 윤 씨처럼 성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저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정도로 성실하게 수감 생활을 하고 1급 모범수로 가석방이 20년 만에 되셨어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결혼은 하셨습니까?

◆ 윤 모씨> 안 했습니다. 생활도 그렇고 제가 만약 결혼하다고 해도 저 같은 사람한테 누가 오겠습니까? 엄두도 안 나고요.

◇ 김현정> 직장 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어요. 잔업 다 챙겨서 하시고 토요일까지 야간 근무하시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사시는 이유는 뭘까요?

◆ 윤 모씨> 저도 이제 나이가 오십이 넘다보니까 저도 이제 제 노후 대책을 좀 해 보려고. 저도 혼자 살망정 남은 여생을 좀 알뜰하게 보람차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다가도 내가 20년 억울하게 옥살이했지라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저 같으면 일어날 거 같은데요.

◆ 윤 모씨> 제가 거기에서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나오면서 생각이 점점 잊혀지더라고요. 잊어야 살고 또 생각을 하면 일이 안 되니까요.

◇ 김현정> 꿈이 있습니까, 꿈?

◆ 윤 모씨> 지금 꿈이 있다면 제 진실을 밝히고 제 명예를 찾고 싶습니다.

◇ 김현정> 명예를 찾고 싶다. 재심을 하기로 결심하신 이유도 바로 그걸까요?

◆ 윤 모씨> 네.

◇ 김현정> 그런데 재심으로 간다면 또 길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야 될 텐데 각오는 돼 있으십니까?

◆ 윤 모씨> 지금 각오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된 이상은 직장에도 다 알려질 테고 주변에도 다 어쩔 수 없이 알려지는 상황이 될 텐데.

◆ 윤 모씨>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제 뭐 당당하게 나가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 김현정> 당당하게.

◆ 윤 모씨> 네.

◇ 김현정> 윤 선생님, 끝으로 다시 한 번 질문드립니다. 8차 사건의 범인이 정말 아니십니까?

◆ 윤 모씨> 저는 아닙니다.

◇ 김현정> 여러분 들으신 이 말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거 같습니다.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재심 시작하시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끝까지 상황 지켜보고 또 여러분께 전달하고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가지고 보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감사합니다.

◆ 윤 모씨> 감사합니다.

◇ 김현정>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이 돼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 모씨 직접 만나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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