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매관계' 스틸컷(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한국에서 18년, 일본에서 8년을 살고 있다. 20대를 일본에서 보내고 있고 그곳에 친구들도 많은데, 이 영화를 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6일 부산 해운대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자매관계'(Sisterhood·2019·일본)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 도중 한 여성이 전한 소감이다.
이 여성은 "영화가 흑백으로 촬영된 이유가 궁금하다"며 "의견이 남성에 비해 절반 정도 밖에 존중받지 못하는 일본 여성들의 현실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가"라고 물었다.
이날 GV에 참석한 '자매관계' 연출자 니시하라 타카시 감독은 "지난 2015년 촬영을 시작해 완성까지 4년이 걸렸는데,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섞어 마무리했다"며 "촬영은 컬러로 했으나, 다큐 부분과 픽션 부분 영상을 균등하면서도 균일하게 배치하고 싶어서 나중에 흑백으로 통일했다"고 답했다.
그는 "올봄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사회적으로 남성은 파랑, 여성은 빨강으로 구별하고 배치하는 것이 만연해 있는데, 그러한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흑백으로 한 것 아니냐'고 멋진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자매관계'는 여성들 인터뷰를 통해 일본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남성중심주의를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그 와중에 픽션으로서 중간중간 삽입된 한 연인 이야기는 직설의 건조함을 상쇄시키면서 이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그간 작품으로 현실 사회 문제를 조명해 온 니시하라 감독은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행복에 관해 계속 생각했다"며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가닿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배우 우사마루 마나미는 "내가 누드모델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영화를 촬영했다"며 "지금 이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 보니 그 당시에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들지' '내가 뭘 고민하고 있나'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한 내 모습이 영화에 남은 덕분에 지금 보면서 나 자신이 이렇게 미숙했다는 데 놀라기도 한다"며 "이렇게 영화제에 오기까지 나 역시 성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일본 개봉 당시 관객 너무 안 와서 '틀린 것 아닌가' 의심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6일 부산 해운대구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에서 초청작 '자매관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감독 니시하라 타카시(가운데)와 배우 우사마루 마나미(오른쪽)가 참석하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우사마루 마나미는 "4년 전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다큐멘터리로만 만들어질 것으로 구상됐는데, 스스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영화가 기록처럼 남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연에 응했다"며 "나는 우사마루 마나미 본인 역할로 출연했기 때문에 연기를 한다는 기분은 없었다. 대사가 있었지만, 대부분 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렇듯 '자매관계'는 10대 후반과 20대 여성들 목소리를 전하는 데 주력한다.
이에 대해 니시하라 감독은 "지금 일본 젊은 세대가 많이 힘들어하는 데 시선이 간 것 같다"며 "36세인 나보다 어린 세대에게 신경이 더 쓰였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읽었는데, 30·40·50대 여성들마다 고민하는 문제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앞으로 시대를 짊어지게 될 젊은 세대였다"고 부연했다.
특히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일본 관객은 자신을 "도쿄에 살면서 '보이스 오브 재팬'이라는 성평등 관련 활동 단체에 소속돼 있다"고 소개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관객은 "영화에서 다룬 이야기는 일상이다. 일본은 확실히 시대에 뒤쳐진, 여러 면에서 뒤떨어진 상황이다. 이러한 일본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내 생각에는 전통적인 사고의 타파라는 생각이 든다"고 자답했다.
니시하라 감독은 "어려운 문제다. 말한 대로 확실히 일본 사회는 평화(平和)할 때 (조화로울) '화'를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사회"라며 "조화를 중시하는 전통이 지배하는 분위기를 확실히 바꿔가야 한다. 내가 영화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여성 저널리스트 이야기를 비롯해 준비하는 작품이 몇 개 있는데, 사회를 직시하는 영화를 계속 지향하고 싶다"며 "실은 일본에서는 내가 하는 활동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가 없다. 시부야에서 이 영화를 개봉했을 때도 관객이 너무 안 와서 '내가 틀린 것 아닌가'라고 의심했는데, 이번에 부산영화제에 초청돼 '틀린 게 아니'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고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