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꺼내니 난리, 결국 쏘였다"…'안전불감' 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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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가 '반드시 옷 입어야 한다'고 제지했다면…"
부산영화제 토론회 '한국영화 노동안전 진단과 과제'
'폭파·차량씬 경험자 73% "보호구 지급 받지 못했다"
"'현장서 사고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체념하는 듯"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제가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에서 일어났던 일이긴 한데, 양봉장 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다들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어요. 물론 벌이 있으니까 '뭔가 일할 때 입는 옷이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까 그렇게 심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나보다 싶었죠. 그런데 벌집을 꺼내는 장면이 있었어요. 꺼내니까 난리가 난 거야. 그런데 슛은 들어갔고…. 결국 물렸어요. 저도 물렸고. 이럴 때 누가 제지를 했다면… 만약 옷을 반드시 입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면…. 옷은 있었어요."

지난 7월 25일 진행된 영화산업 현장 산업안전 관련 인터뷰에서 나온 한 촬영팀 스태프의 경험담이다.

그는 "그런데 만약 (그 현장에) 안전감시자가 있었다면, '옷을 꼭 다 입어야 한다'고 했다면"이라며 "생각해 보면 현장에서 누군가 한 번이라도 제지를 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감시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6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는 '한국영화 노동안전 진단과 과제' 토론회를 통해 관련 실태조사 결과가 공유됐다. 이 실태조사는 지난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간 영화제작 노동자 500명(응답자 2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해당 실태조사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이산노동법률사무소 최여울 노무사는 이날 토론회 브리핑을 통해 "스태프는 '제작사가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안전감시자처럼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제작사는 '스태프 스스로 안전에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실태조사 일환으로 지난 7월 22일 진행된 제작사 인터뷰에서 한 프로듀서는 "(현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제일 중요한 건 장비 관리인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카메라든 조명장비든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장비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비가 굉장히 크고 무거운데 제대로 고정시켜놓지 않고 벽에 기대놓아서 장비가 쓰러져 사고가 발생하거나, 장비에 다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장비를 관리하고 세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여울 노무사는 "이들 인터뷰를 통해 느낀 것은 '노사 양측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모른다' '실효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양측 모두)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듯했는데, 현재 미흡한 부분을 해결하면서 사고를 줄이는 데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산업안전보건법 '사각지대' 영화 현장…"적용 범위 개선돼야"

6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회 '한국영화 노동안전 진단과 과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업·건설업 중심으로 갖춰져 있다보니, 유동적인 노동 환경을 지닌 영화 제작 현장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법 적용 기준 범위는 상시 근로자 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3개월가량 단기 고용되는 영화 제작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책임연구원을 맡은 삼현공인노무사 김현호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 근로자 수', 그러니까 직원 수에 따라 달라진다"며 "영화 제작업의 경우 100인 이상이 적용 기준인데, 상시 근로자 수가 이러한 경우는 큰 영화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제작업은 상시 근로자 수가 시기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법 적용에 있어서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영화 제작의 경우 '사업장'보다는 '제작' '사업' 단위 기준으로 근로자 수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 제작 현장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참여한 영화 촬영 중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나'라는 물음에 4분의 1가량인 24%가 '그렇다'고 답했다. 사고 유형은 '넘어짐' '미끄러짐'이 62.5%로 가장 많았으며, '사고를 산재로 처리했다'는 응답은 16.7%에 그쳤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제작사 조치와 관련해 '최근 참여한 영화작업 중 제작사로부터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8%였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크랭크인에 앞서 1회 실시됐다. 특히 제작사가 별도로 안전보건관리자를 둔 경우는 17%에 불과했고,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보호구가 지급(75%)되기는 했으나, 마스크·장갑·방음귀마개 정도에 그쳤다.

최여울 노무사는 "폭파·차량 씬을 경험한 응답자는 67%였지만, 이 가운데 73%가 해당 씬 촬영 당시 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며 "마스크·장갑과 같은 기본적인 보호구는 지급됐지만, 폭파·차량 씬에 적합한 보호구는 절대다수가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 "작은 사고란 없다…'사고의 무게는 모두 같다'란 철학 담겨야"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날 토론회 두 번째 발제에서 "보호구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보통 '버프'라고 불리는 천으로 된 마스크는 심리적 위안만 줄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현장에 적합한 보호구를 챙겨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성애 국장은 "건설 현장은 튼튼하게 짓지만, 영화 현장은 딱 한 달짜리로 짓는다. 제작비가 더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건설사도 유명한 곳은 현장이 수십 개씩 있다. 유명 영화사도 현장이 몇 개씩 있을 텐데, 그곳들을 모두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한 작업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고가 났을 때 (당사자만)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튼튼하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현호 노무사 역시 "사회, 영화산업이 발전할수록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고 건수나 접수되는 신고 사례는 점점 늘었다"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정착되면서 영화 제작 현장에서 안전보건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인식이 고도화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조성애 국장은 특히 "작은 사고란 없다. 사고는 모두 동일한 무게여야 한다. 그래야만 개선할 수 있다. '그 사고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며 "사고에는 법칙이 있다. 경미한 사고를 외면했을 때 중대 사고와 사망 사고로 이어진다. '경미한 사고부터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철학이 담겨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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