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지난 6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지난 5일부터 '범죄인 인도 법안' 송환법 반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전면 시행했다. 복면금지법은 공공집회나 시위에서 마스크, 가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내세운 법 시행의 이유는 국가 안정과 질서 유지다. 그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넉 달 동안 400여 번의 시위가 있었고, 300명 가까운 경찰을 포함한 1000여 명의 부상자가 있었다"며 "특히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폭력 사태가 고조했다. 폭력이 고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관련 법규를 검토했다"고 법 시행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람 장관이 설명한 법 시행의 배경은 명목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사례로 볼 때 '복면금지법'은 정부가 시위대에 밀려 위기 의식을 느낄 경우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 4월 프랑스 정부가 '복면금지법'을 시행한 바 있다. 이른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가 8주 간 이어지는 등 정권에 위협으로 다가올 만큼 격화하면서다. 노란 조끼 시위는 당초 유류세 인하 요구로 시작됐지만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퇴진 요구로까지 확대됐다.
앞서 한국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복면금지법'이 추진된 적이 있다. 계기는 2015년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였다. 이 시위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노동법 개악 반대, 쌀 수매가 인상 등의 이유로 13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이 시위에서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이듬해 사망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복면을 쓰면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며칠 뒤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집회 참가자들을 IS(이슬람국가)에 비유하며 '복면금지법'에 힘을 실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진압경찰이 총을 들고 반정부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캐나다, 불가리아, 이집트 등 15개국이다. 하지만 대부분 약자 보호나 종교적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에 복면금지법이 처음 등장한 건 1830년대 소작농들이 원주민으로 변장해 지주나 보안관을 공격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다. 1950년대에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이 두건을 쓰고 회합하는 것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주별로 규제가 생겼다. 즉, 오늘날 미국의 복면금지법은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횡포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문제 등 종교적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올해 초 시위와 관련된 복면금지법을 도입했지만, 많은 예외 조치들이 인정되고 있다. 의회의 심의를 거쳐 도입됐다는 것도 홍콩과의 차이점이다. 홍콩의 복면금지법은 정부의 '긴급법' 발동을 통해 이뤄졌다. 홍콩에서 긴급법은 계엄령에 준하는 행정명령으로 52년 만에 처음 발동됐다. 그 외 시위 참가자를 직접 겨냥한 복면금지법을 도입한 국가는 독일, 캐나다 등 극히 일부다.
이종훈 명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홍콩의 복면금지법은 정부가 시민을 억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홍콩 시위에 관여하고 있는)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복면을 금지하겠다는 건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처럼 채증을 통해 시위 참가자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홍콩 시민들이 복면금지법에 극렬히 반발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프랑스, 독일 등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에서 복면금지법을 도입한 경우를 홍콩의 사례와 같이 볼 순 없다. 사회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충분히 확립된 국가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복면금지법의) 공익적 목적이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화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복면금지법이 시민 탄압이란 정권의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