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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딸 이리샤', 적을 물리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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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이리샤' 장형윤 감독 ②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싸이더스 사무실에서 '마왕의 딸 이리샤' 장형윤 감독을 만났다. (사진=이노기획 제공)

 

※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이리샤' 내용이 나옵니다.

이리샤는 누가 봐도 멋지고 근사한 현우 선배를 좋아한다. 정작 본인에게 호감을 표하는 사람은 같은 동아리의 진석이지만, 신경 써 주는 태도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러다 엄마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맞은 자신을 걱정하며, 진석이 직접 도움을 주려고 한다. 동정하는 거로 느껴져 호의를 차갑게 거절하는 이리샤. 그런데 자기 때문에 진석의 생명이 위독해진다.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이리샤'(감독 장형윤)는 마왕의 딸이었을 당시 기억을 잃은 이리샤가 친구 진석의 빼앗긴 영혼을 되찾기 위해 요정 세계로 떠나며 펼쳐지는 시공 초월 판타지 어드벤처다. 모험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멜로에 가깝다. 이리샤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을 자각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싸이더스 사무실에서 만난 장형윤 감독은 멜로로 가기 위해 주인공도 소녀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리샤가 우여곡절 끝에 진석을 다시 만나고 사랑을 깨닫는 것이, 공포스러운 존재로 설정된 마왕을 물리치는 것보다 중요했다고.

◇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이리샤

'마왕의 딸 이리샤'에서는 이리샤가 마왕의 딸이었을 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래 마왕 자리를 꿰차고 들어 온 '악한 마왕'을 무찌르는 서사가 자세히 펼쳐지지 않는다. 장 감독에 따르면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 남에게 좀처럼 자기 마음을 열지 않는 이리샤가 변하는 것이다.

장 감독은 "마왕을 물리치는 부분이 짧아졌다. 영화적으로는, 이리샤가 진석이를 찾았을 때 이미 끝나는 얘기다. 진석이를 찾아 사랑을 완성하는 거니까"라며 "마왕을 물리치는 건 부차적인 거다. 자기 때문에 죽게 된 친구를 찾은 소녀가, 결국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본인도) 마음을 연다는 게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밝혔다.

진석이가 조금은 이상하고 독특한 구석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이리샤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에도 배경이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리샤에게 자꾸만 요정 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도 원래는 좀 더 자세하게 펼쳐질 예정이었는데, '너무 설명이 장황하다'는 생각에 빈 고리를 관객들이 연결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겨뒀다는 게 장 감독의 설명이다.

이리샤는 자기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 진석을 찾으러 요정 세계로 떠난다. 이리샤는 모험을 겪고 나서야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헌신하며 사랑을 주었던 진석의 존재를 깨닫는다. (사진=지금이 아니면 안돼, 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요정 세계로 이리샤를 안내한 개구리가 사실은 진석이었다는 것은 나름의 반전이다. 개구리는 이리샤에게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건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온 이리샤를 본 진석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진석을 이리샤를 보호하기 위해 요정 세계에서 지구로 파견된 인물이라고 봤다. 그러니 현실에서도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리샤가 (가정형편 때문에) 알바도 하고, 엄마도 자기를 힘들게 해서 (좋아하는) 음악 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일단 스트레스가 많아요. 이리샤는 다 힘들고 짜증 나고 자기 뜻대로 안 풀리는 상황이죠. 그런데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아이가 있었는데 본인 때문에 그 아이가 죽어버린 거죠. 어떻게든 구하려고 하다가 진석이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고, 그 깨달음이 사랑이 되는 형태에요. 연애할 때 내가 먼저 좋아서 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하니까 나도 마음이 갈 수도 있잖아요? (이리샤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또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 게 어느 순간 고마워지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와, 내가 뭐라고 날 이렇게 좋아해 주지?' 하고요. 지쳐서 쉬고 싶은 이리샤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진석이 몫이었어요."

극중 진석은 그렇게 잘생기지는 않은 안경 낀 남자애고, 이리샤가 초반에 호감을 표한 현우 선배만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잘생긴 설정이다. 진석도 현우 선배와 비교했을 때 밀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장 감독은 "드라마 보면 평범한 역할도 되게 잘생긴 분이 하지 않나. 현우를 약간 더 잘생기게 잡긴 했는데, 이번엔 '꽃보다 남자' 같이 (이리샤) 주변에 잘생긴 남자를 많이 배치하고 싶었다. 앤드류도 금발 미남이고. 이왕 그릴 거 다들 엄청 잘생기게 그리자는 주의였다"라며 웃었다.

◇ 목소리 연기에 나선 천우희-심희섭-김일우

'마왕의 딸 이리샤'는 배우 천우희, 심희섭, 김일우가 각각 이리샤, 개구리/진석, 기타 로비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장 감독은 언론 시사회 때도 세 사람이 다들 너무 목소리 연기를 잘해주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각자 녹음을 하고 돌아갔기에.

가장 고생한 사람은 아무 가이드 없이 혼자 녹음했던 심희섭이다. 심희섭은 원래 부엉이 역할로 섭외됐다가 더 비중 있는 개구리/진석 목소리를 맡게 됐다. 장 감독은 "개구리를 제일 먼저 해서 심희섭 배우가 아무래도 제일 힘들었다. 천우희 배우는 심희섭 배우가 연기한 걸 듣고 칠 수 있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거의 상대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화면 보면서 (대사 나가는 때를)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배우 심희섭, 천우희, 장형윤 감독. 심희섭과 천우희는 '마왕의 딸 이리샤'에서 각각 개구리와 이리샤 목소리를 연기했다. (사진=싸이더스 제공)

 

김일우에 관해서는 "(저희의) 연락이 의외였다고 하셨지만, 로비라는 캐릭터와 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생각보다 좀 내성적이시더라.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셨다. 드라마에서는 뭔가 나서고 농담하는 연기를 많이 하셨는데, 직접 만났을 땐 되게 진중하셨다. 그런데 역할을 되게 좋아하셨다. 애니메이션은 처음이었지만 재미있어하셨다"라고 전했다.

각자 캐릭터에 배우들의 목소리를 입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장 감독은 "보통은 다른 연기를 많이 찾아본다. 저 같은 경우는 천우희, 심희섭 씨가 했던 드라마 연기(목소리)를 사전 작업 된 부분에 붙이고 어울리는지를 봤다. 영상에 목소리가 (잘 맞는지) 붙여보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천우희는 '마왕의 딸 이리샤' OST에도 참여했다. 장 감독은 "천우희 씨가 현장에서 (원곡) 가수와 거의 비슷하게 불러서 저희도 들으면 버전이 헷갈린다. 어떤 게 가수가 부른 건가 해서. 목소리도 비슷하더라"라며 "OST는 데모 버전이다. 완성 버전은 훨씬 더 풍부하게 악기가 들어 있다면, 데모 버전은 목소리가 곧 주인공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작품에서 줄곧 음악을 소재로 해 온 장 감독은 삽입곡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 가을방학을 좋아해서 음악을 넣으려고 연락도 했었단다. '마왕의 딸 이리샤'에는 연회 장면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더하는 킹스턴 루디스카의 '마이 코튼 캔디'가 들어갔다. 평소에 워낙 좋아했던 노래였고, 처음부터 음악 먼저 생각하고 장면을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음악감독 소개로 알게 된 굿나잇스탠드는 영화의 메인 테마곡을 담당했다.

◇ "애니메이션은 사랑이죠"

우리나라 영화 시장이 거의 세계 5위인데 애니메이션은 20위권 안에도 작품이 없다며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을 향한 관심을 부탁한 장 감독.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창작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애니메이션은 사랑이죠. 저는 움직이는 걸 사랑해요."

장 감독은 "애니메이션에서 제가 좋아하는 건, 생명이 없는 게 생명을 갖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상상으로 그렸던 그림이 움직이는 게 너무 좋아서 하는 건데, 현실적으로는 되게 힘들다. 단편을 해도 힘든데 장편을 하면 얼마나 힘들까"라면서도 아직 해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며 앞으로의 구상을 밝혔다.

이리샤는 개구리, 기타 로비, 고슴도치 등과 힘을 합쳐 진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진=지금이 아니면 안돼, 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현실 인물 다큐멘터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이 한 예다. 극영화 애니메이션을 만들더라도 방향은 조금 달라질 예정이다. 멜로에 대한 감성과 기억이 강해서 그동안 그 부분에 몰두해 왔다면, 일단 다음에는 좀 더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장 감독은 "유아용은 아니면서도 아이들이 보기에 좀 더 재미있고 문학적인 걸 해 보고 싶다.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편 애니메이션, 지금도 전체 관람가이지만 좀 더 극렬하게 전체 관람가를 노리는!"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기가 어려워요. '뽀로로' 정도나 보러 올까요. 애들 때문에 (부모들이) 오는 정도가 전부죠. 그걸 일부러 보러 와 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다행히 주말에는 관이 더 열리더라고요. 조조 시간대가 많지만 주말이나 시간 날 때 봐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한국 애니메이션이 계속 잘 안 되고 있으니 좀 더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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