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태풍 '링링'이 지난간 직후 인천 강화군 하점면의 돼지농장 모습. 이 농장은 전국에서 9번재, 강화에서 5번째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이기도 하다. (사진=독자 제공)
인천 강화도에 9월 한 달 동안 태풍과 폭우,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역대급 재난'이 덮쳐 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특히 제13호 태풍 '링링(LingLing)'과 ASF는 각각 전국 최대 피해가 발생해 지역경제마저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절망적인 분위기마저 감돈다.
◇ ASF로 붕괴된 강화 양돈업계…지역경제 장기 침체 우려
태풍 '링링'으로 축사가 파손되면서 시련이 시작된 강화지역 양돈농가는 지난 24일부터 강화군에 발병한 ASF로 사실상 업계 기반이 붕괴됐다. 30일 인천시와 강화군 등에 따르면 현재 ASF 발병농장 9곳 중 5곳이 강화군에 몰려 있다. ASF 최대 피해지역인 셈이다.
강화군은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27일 강화군 지역내 모든 돼지를 매몰처분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로써 강화군 지역내 돼지 3만 800마리는 모두 땅에 묻히게 됐다. 인천 전체 사육돼지 4만 3108마리의 88%에 해당한다.
현재 강화군 곳곳에서 돼지 매몰처분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아직 이번 매몰처분에 따른 돼지농가의 피해는 추산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ASF로 돼지 시세가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이다.
국내 9번째로 ASF 확진 판정을 받은 하점면 돼지농장의 농장주 심모(56)씨의 사연은 더욱 안타깝다. 그는 이미 태풍 '링링'으로 축사의 지붕이 날아가고 축대가 무너졌다. 축사가 대부분이 망가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농장을 재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ASF가 발병하면서 주저앉게 됐다.
강화군 관계자도 "대부분의 돼지농가가 태풍 때부터 피해를 입었지만 심씨의 경우 직접 군청에 문의하며 복구 지원을 요청했는데 ASF로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ASF에 다른 방역 작업도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강화군의 주요산업인 관광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ASF 확진 소식이 나올 때마다 해당 농장을 중심으로 주요 길목마다 통행이 막히고 곳곳에서 소독약이 뿌려지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당장 강화의 대표 관광명소로 꼽히는 초지진은 평소 주말 관광객의 약 40%가 감소했다. 강화씨사이드리조트, 석모도 미네랄 온천과 수목원 등을 찾는 관광객도 줄고 있다. 지역 대표 문화행사인 교동향교 문화재 체험 행사, 미혼남녀 만남, 토요문화마당 등은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복구 작업 중인 인천 강화군 하점면의 한 인삼밭. (사진=강화군 제공)
◇ 태풍 '링링' 전국 피해 15% 강화에 집중인천시와 강화군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국내 상륙한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강화 지역에 발생한 재산피해액은 77억 5000만원(정부 추산 70억 8000만원)이다. 이는 전국 피해액인 487억원의 15%에 해당한다.
피해 유형별로 보면 공공시설 파손 5곳을 비롯해 주택 16동과 어선 4척, 축사 65동, 수산 증·양식시설 35곳, 나무 332그루 등 2010개의 개인시설이 파손됐다. 인삼밭과 과수원을 비롯해 농경지 1463㏊에서 강풍 피해가 발생했고 비닐하우스도 13.9㏊ 규모로 파손됐다.
또 교동도와 서도면 전 지역이 정전되면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으며, 왕새우 2만1000㎏·닭 4000마리·돼지 233마리·소 17마리 등이 폐사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일 강화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시·군은 45억~105억원을 초과할 때 선포할 수 있다. 강화군의 경우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 피해액은 60억원이다.
특히 강화지역 특산물인 인삼의 경우 태풍에 수확을 앞둔 인삼 대부분이 손상돼 폐기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40억원으로 추정했지만 농가는 아직 태풍 잔해를 치우는 것도 마치지 않은 상황이어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집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십년 이어온 인삼농사 포기를 고민하는 농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강화지역 인삼밭의 절반가량이 모여 있는 하점면에서 16만5000㎡(옛 5000평) 규모의 인삼밭을 40년째 재배하는 최정식(65)씨는 "태풍으로 인삼밭의 모든 시설이 망가져 복구 작업 중이지만 앞으로 2주가량 더 소요돼야 한다"며 "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해가 커 인삼 재배 포기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방역당국이 인천 강화도 입구에서 차량 방역하는 모습. (사진=주영민 기자)
◇ 태풍 피해 직후 하루 216㎜ 폭우로 피해 가속
기상청에 따르면 호우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10일 강화군에는 216.5㎜의 폭우가 내렸다. 단 하루였지만 시간당 40㎜가 넘는 강한 비가 내리면서 그 위력이 장마 못지않았다.
이 비로 초등학교를 비롯해 상가와 주택이 침수됐고 나무가 쓰러졌다. 도로로 토사가 흘러내려 한때 차량 운행도 통제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이날 내린 비는 3일 전인 지난 7일 태풍 '링링'의 피해를 입은 축사들의 피해가 가중했다.
강화군 관계자는 "태풍 '링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축사가 없었다"며 "그 상황에서 3일 뒤 폭우가 내리면서 축사의 피해가 가중돼 복구 지원을 서둘러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화군은 태풍 '링링' 사태 이후 주요 농업의 타격과 지역 이미지 훼손으로 지역경제의 장기 침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미 태풍 '링링'으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ASF로 한 번더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지역주민이 체감하는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과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