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당시 사건 처리 과정과 관련, 현직 검찰 간부들을 경찰에 고소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검찰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수사가 제자리걸음이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에 대한 의혹 규명이 이번 수사의 핵심인데 검찰은 정작 기초 자료 제출부터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 검찰이 '내부 비위'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서 검사는 지난 5월 당시 권모 법무부 검찰과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문모 전 법무부 대변인과 정모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권 전 과장은 서 검사의 성추행 피해가 있던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으로 있으면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지시를 받고 서 검사를 면담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피소됐다.
문 전 대변인과 정 부장검사는 각각 언론 대응과 검찰 내부망 글을 통해 서 검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서 검사 측으로부터 고소장을 제출받은 직후 고소대리인인 서기호 변호사를 불러 고소인 조사를 마쳤다. 하지만 이후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권 전 과장이 서 검사와 면담하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면담기록 등 검찰 내부자료가 필요하지만 검찰이 경찰의 관련 자료 요청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서초경찰서는 해당 사건과 관련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최근 세 번째 자료 요구 공문을 보냈다.
앞서 두 차례의 자료 요청 당시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모두 "관련 자료가 없다"며 법무부는 대검에, 대검은 법무부에 물으라는 식으로 자료 제출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며 의도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경위급 경찰관은 "역으로 검찰이 경찰을 수사했으면, 이같은 기초자료를 확보하는데 이 정도까지 걸릴 일이겠냐. 한 달이면 확보하고 남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경찰관도 "장관이 지시까지 한 서 검사의 면담 기록은 어떤 형식으로든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없다'는 이유로 제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하다"고 밝혔다.
고소인인 서 검사 또한, 해당 수사와 관련,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서 검사는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경찰에 이들(현직 검사 간부)을 고소했지만 검찰의 자료 제출 거부로 수사는 멈춰있다"며 "피의자인 위 검사들은 검사장 및 최고 요직으로 당당히 승진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초경찰서는 자료 요청 회신 기한까지는 우선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세 번째 자료 요구 공문을 보냈다"며 "자료 회신 기간이 남아 있어서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제수사 검토 여부에 대해서는 "자료가 와야 판단이 가능하다"며 "아직 고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임은정 부장검사의 '전·현직 검찰 수뇌부의 직무유기 고발 사건'도 경찰이 세 차례 자료 요구 후 회신이 없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결국 회신이 없다면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