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 '영원한 사랑'을 이렇게 크게 들어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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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①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을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내용이 나옵니다.

정지우 감독이 '유열의 음악앨범' 시나리오 초고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만들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었다. 초고는 개봉 버전보다 좀 더 감정의 미묘함에 집중했기에 어렵다고 봤다. 무엇보다 음악이 매우 중요한 영화라서, 저작권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멜로. 한국영화 시장에서 결코 주류가 아닌, 만들어지는 수도 적은 장르였다. 완성된 한 편의 영화로 보고 싶긴 하지만, 선뜻 뛰어들기 힘든 판에 결국 정 감독이 발을 디딘 이유는 제작사 '무비락'의 김재중 대표 덕이었다. 모험을 넘어, 무리수라고 판단될 수 있을 정도의 큰 금액을 음악 저작권료에 할애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기에 시작과 끝을 볼 수 있었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개봉한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정지우 감독을 만났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실제로 방송된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제목을 따온 사연부터, 귓가에 자꾸만 맴도는 노래를 고른 배경,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일어난 일을 풀어낸 이유 등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이 개봉 날인데 기분이 어떤가.

그래도 덕담을 많이 듣고, 격려 많이 듣고, 분위기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영화 관련된 프로모션을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에서 한 것 같다.

▶ KBS 쿨FM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7년 동안 썼고, 영화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 '우아한 거짓말'과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을 집필한 이숙연 작가가 초고를 썼다.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시나리오를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부탁을 받고 봤다. 관객으로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이걸 하기에는. 일단 초고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는 훨씬 더, 아주 미묘한 내면이 주된 느낌이라고 저는 봤기 때문에, 영화에 만드는 난도도 높았다. 또 영화가 만들어지기가 굉장히 어려운 조건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내면의 미묘한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제작 쪽에서는 인색해 하는데, 알고 보니 음악도 나오는 거다. 음악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 지 좀 됐다. 멜로 드라마가 오랜만에 나와서 반갑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랜만인 이유가 있다. 이제 한국영화는 예산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산업에서 멜로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각을 합쳐보면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사진=정지우 필름, ㈜무비락, 필름봉옥 제공)

 

▶ 우여곡절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유열의 음악앨범'에는 신승훈부터 콜드플레이까지 10곡의 노래가 담겼다. 어떻게 이 아이들이 살아났나.

이야~ 정말 정겨운 표현이다. (웃음)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무비락 김재중 제작자가 '해낼 수 있다'면서 객기를 부렸단 생각이 든다. 2017년 말이나 2018년 초였는데, 그때부터 어느 수준 이상의 음악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예산이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게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조금 더 업데이트가 되어야 한다는 과정을 함께 고민한 거다. 처음부터 음악 예산에서 곡 수를 줄이려는 고민은 안 했다. (영화에 잘 삽입됐으니) 지금 곡 중 협상이 불가능한 곡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볼륨(음량) 이상으로 음악을 듣는 경험이 많지 않은데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는) 라이브 무대를 보는 양 큰 볼륨으로 들을 수 있다.

▶ 영화 속 음악은 가사를 통해 미수(김고은 분)-현우(정해인 분)의 상황을 드러내는 역할도 하더라. 화면에 맞는 노래를 고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가요의 가사가 그림(화면)에 붙는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가사는 정확한 자막이나 주석처럼 느껴지는데, 곡이 진행되면서 그게 다 맞기가 어렵지 않나. 근데 저희는 음악과 장면이 조응해야 하는 분량이 굉장히 많은 거다. 그래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본 영화에 비해서 온전한 볼륨으로 가사가 나오는 시간이 정말 정말 길다, 곡마다. 그렇게 길게 쓰는 게 저는 의미가 있다고 봤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2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고 보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시대별로 분류한 후보곡만 300곡쯤 됐다. 어떤 음악이 훌륭하다기보다는 그걸(가사 내용과 내용을) 맞추는 게 사실 어려운 것이었다. 저는 홍보하러 라디오 프로그램 나갈 때마다 신청곡을 핑클 '영원한 사랑'으로 하고 있다. 그 노래가 나오는 순간의 쾌감이 큰 것 같아서. 더더군다나 제게 핑클 노래는 TV 볼륨으로만 듣던 노래라서, 크게 듣는 기분이 참 좋았다.

▶ 1994년 10월 1일 시작해 2007년 4월 15일까지 KBS 쿨FM을 통해 13년간 방송된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영화의 중심 소재이며, 제목이기도 하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이 영화 제목을 온전히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웃음) 일단 유열 님을 모르더라. 진짜 오랫동안 '유희열의 음악앨범'이라고 불렸다. 유희열 씨가 하는 '음악앨범'이라는 예능이 새로 나온 줄 알았다더라. '비긴 어게인' 이런 것처럼 음악 프로그램이 나온 줄 알았다고 하고. '유열의 음악캠프'도 있었고, 제가 직접 들은 것 중 제일 웃겼던 건 '유하의 음악일기'였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 감독까지 나온 거다. (웃음)

사실 용기가 좀 쪼그라들었다. 이 제목으로 할 수 있을까 하고. 저희는 2시간짜리 음악 프로그램 같은 영화다. 신청곡-사연-DJ 멘트-가사 이런 구조가 거의 틀이 잡혀 있었고 아주 미세한 조절만 할 때가 이미 도래한 상태였다. 의인화해서 설명하자면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제목이) 자리를 딱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제목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이 들면 더 센 놈이 나와야 하는데 진짜 그게 어렵다. 그러다 보니 '유열의 음악앨범'이 된 거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난 미수(김고은 분)와 현우(정해인 분)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사진=정지우 필름, ㈜무비락, 필름봉옥 제공)

 

▶ DJ 유열의 멘트가 영화 중간중간에 나온다. 재녹음한 건가.

녹음 원본은 찾을 수 없었지만, 첫 방송 오프닝은 (실제 방송과) 거의 같다. 첫 방송을 썼던 라디오 작가님이 지금도 라디오 작가를 하고 계셔서 그 내용을 얻었다. 원본 (음성이) 없어서 녹음은 다시 하긴 했다. 그때 당시 장비들로 남아있는 건 노후해서 퀄리티가 좀 좋지 않다. 곳곳의 멘트를 다시 했다. '정애리의 음악앨범' 부분, 그건 원본이다.

▶ '유열의 음악앨범'은 유열이 '음악앨범'의 새로운 DJ가 된 1994년 10월 1일 만난 미수와 현우가 만나고 엇갈리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이야기다. 1994년에 시작해 1997년, 2000년, 2005년이 차례로 나온다. 시기가 바뀔 때마다 스케치 장면이 나와서 주위를 환기하는데 이렇게 연출한 이유는.

이 영화의 시대를 실제보다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품이나 색감 모두. 실제 94년보다 조금 더 오래된 것 같은 때로 기준점을 잡으면 시대와 시대가 사실 더 잘 구분된다. 94년 10월 1일이 현재인 상태로 보일 순 없을까, 그런 기분으로 각각의 시간을 운용하려다 보니까 시대와 시대를 구분해내는 정확한 막이 필요했다, 혼동이 안 되게. 그 막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첫 커트와 마지막 커트를 스케치로 표현했다.

▶ 극중 2005년도 굉장히 '현재'처럼 묘사되는 것 같다. 실제로는 14년 전인데.

(2005년을) 2019년 현재라고 느끼기를 원했다. 엄청나게 과거에서 시작해서 과거로 (이야기가) 끝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았다.

▶ 미수와 현우는 우연히 만나고, 뜻하지 않게 헤어진다. 그러기를 반복한다. 현우가 연락을 받지 않던 날 미수가 보낸 메일이 인상적이었다. 연락 없는 게 더 고맙다고, 오늘은 후진 날이었다고 하는 고백이. 현우 연락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상대가 잘못하고 상대가 연락이 없으면 논리적으로는 '너 왜 그래?'라고 하거나 '무슨 일 있니?' 하고 걱정하고 원망할 텐데 '내가 오늘 (연락받을) 상태가 아니야'라는 일종의 자책이 이어 붙어 있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나한테 돌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수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일한다. 그게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그 피로함이 어떤 임계점을 살짝 넘어간 순간 있지 않나. 마음이 관리가 안 되는 날.

▶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수수한 분위기인데, 미수와 현우의 키스 장면은 영화 속 장면이라기보다는 정말 연인의 키스를 훔쳐본 느낌이었다. 극장 안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둘이 손잡고 뽀뽀하고 키스하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잘 촬영해 놓고, 영화 완성본하고 비슷한 편집본을 보고는 '어우, 이렇게 야한 장면이었어?' 하면서 자기네들도 깜짝 놀라더라. (웃음)

왼쪽부터 정지우 감독, 김고은, 정해인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정말 연인이 되는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그 긴장감 때문에 빨리 화면이 넘어갔으면 하는 마음도 들더라.

그걸 원했다, 그걸! (웃음) 그들의 호흡과 같이 호흡하다 보면 약간 숨이 가빠진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에 내 숨을 쉬어도 되는 거다.

▶ 미수와 현우가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중반 이후에는 미수가 다니는 출판사 대표(박해준 분)는 대놓고 미수에게 "웃게 해 줄게, 지금처럼. 반하게 해 줄게"라고 한다. 대표의 등장 이유는 무엇인가.

대표에 대해서는 연령대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더라. 박해준 배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은 명백하게 (대표 역에도) 호감이었다. '이 사람이 이 정도의 격이 있는 건 좋은 사람이다'라며 '지혜로운 인생 선배'라고 하는 반응은 연령대가 좀 더 높은 쪽에서 나온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 같다고 생각하더라. (웃음)

▶ 현우는 고등학교 때 친구 추락사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소년원에 갔고, 사건과 연루된 무리와 위태로운 사이를 유지한다. 미수가 우연히 태성을 만나 현우의 과거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한다. 미수가 "언제 괜찮아져? 언제까지 불안해?"라며 오랜 시간 안고 있던 불안함을 드러낼 때,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대사할 때 진짜 대사 같지 않나? 사실 저는 그 대사가 굉장히, 굉장히 좋아서 이걸 잘 찍고 싶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조금 낯선 대사여서 촬영하는 순간까지도 고민이 있었지만, 역시 김고은 양이 저를 구원해주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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