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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박지후가 말하는 은희의 '단짝', '섬', '한 줄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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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벌새' 은희 역 박지후 ①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영화 '벌새' 배우 박지후를 만났다. (사진=박종민 기자)

 

※ 영화 '벌새' 내용이 나옵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은희(박지후 분)는 집이나 학교에서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집에서 주목받는 사람은 대원외고-서울대 합격을 꿈꾸는 우등생 대훈(손상연 분)뿐이다. 대훈의 합격을 위해 가족들의 노동력이 동원된다. 엄마는 반찬 하나라도 더 신경 써야 하고, 엄마가 없으면 집안의 누군가는 대훈을 위해 밥을 차려야 한다. 학교라고 크게 다른 건 없다. 지루한 수업에 통 집중할 수 없어 그림을 그리고, 갑자기 이름이 불려 영어 교과서를 읽게 됐을 땐 능숙하지 못하고 어설퍼 같은 반 친구들의 은근한 비웃음을 듣는다.

그러나 은희는, 답답했던 두 공간에서 벗어났을 때만은 아주 또렷하게 존재한다. 좋아하는 남자애 지완(정윤서 분)에게 키스해 보자고 제안할 때 조금도 쑥스러워하지 않고, 통 연락이 없는 것 같으면 먼저 음성 메시지를 남겨 연락하라고 요구한다. 단짝 지숙(박서윤 분)과는 콜라텍의 현란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스트레스를 풀고, 상가 문방구에서 자잘한 것을 훔치는 비행도 감행한다. X를 맺은 후배 유리(설혜인 분)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는 발을 치고, 같이 노래방에 간다.

가장 아늑하고 편안해야 할 것 같은 두 공간(집-학교)에서 자기다울 수 없는 은희는, 그 바깥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지완, 지숙, 유리는 솔직한 은희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중요한 관계들이다. 한문 교실 선생님으로 온 영지(김새벽 분)는 은희를 존중하며 은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유일한 어른이다.

영지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희를 함부로 단정 짓거나 평가하거나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꺼내면 경청하고,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도움말을 준다. 이를테면, 일상적으로 손찌검하는 오빠에게 맞고 있지만 말고 맞서라고. 철거민들을 불쌍해하는 은희에게 함부로 동정할 순 없다고 일러준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에서 주인공 은희를 연기한 배우 박지후를 만났다. '벌새'는 1994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열다섯 살 은희의 보편적이면서도 찬란한 이야기를 그린다. 박지후는 당시 시대적 배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은희는 지금의 또래 10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벌새' 오디션을 치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냥, 한참 연기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어느 작품 오디션을 볼지 엄마랑 대화하고 있었다. 오디션 모집하는 사이트가 있다. 이거 한번 해 보자, 프로필 넣어보자, 해서 하게 됐다. 저는 뭐든 좋았으니까. (웃음) '오케이~' 하고 넣었는데 프로필 합격하고 1차 오디션을 보게 됐다. 1차 오디션에선 쪽대본을 보여주신다. 상황 네 개 정도를 연습해 갔다. 대사를 보지 말고 상황만 생각해 보라고 했다. 영지 선생님이랑 대화 나누는 상황이었다. 2차 오디션에선 큰 대본을 받고 충분히 읽었다. 지정해주시는 상황을 연기했다. 그때는 앞에 스태프분들이 되게 많았다. 2, 3차 때는 연기는 조금 하고 은희의 감정이나 대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벌새' (사진=에피파니&매스 오너먼트 제공)

 

▶ 김보라 감독이 오디션 때 본인이 '볼매'(볼수록 매력적인 사람)라고 하면서 다음에 꼭 볼 수 있게 헤 달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말은 즉흥적으로 나온 건가.

네! 그냥 어떻게든 감독님한테 저를 남기고 싶었다. 인상에 남기고 싶었다. 나름의 기회였으니까, 그걸(은희 역을) 잡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고, 어필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웃음) 충동적으로 한 거다.

▶ 김보라 감독과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했다던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오디션 때 (대화를) 많이 나눴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 집에서 1박 한 적이 있다. 한강도 가고 감독님이랑 같이 시간을 보냈다. 제 일상생활에 대해 많이 여쭤보셔서 그때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 '벌새' 시나리오를 읽고 은희는 어떤 아이라고 생각했나.

일상생활이나 이런 건 저나 제 또래 10대하고 다름이 없었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고, 누구한테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어 하면서도 당찬 아이라고 생각했다.

▶ 은희는 집과 학교에서 방치된 느낌이다. 집은 우등생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못 해서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이런 은희의 상황에 어떻게 몰입하려고 했는지.

'몰입해야지!'라는 생각을 안 해도 상황이 그렇지 않나. (웃음) 은희가 그런 아이(로 설정돼 있으)니까. 학교에서도 (연기할 때) 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니까 실제로 그런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고, 영어책을 제대로 못 읽을 때 실제로 비웃는 느낌이었다. 은희에 대입해서 그런지. (웃음) 가정에서의 모습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음악을 들어서 분위기를 가진 상태에서 촬영했다.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계속 생각했다.

▶ 그런 의미에서 은희에게 지완, 지숙은 더 특별한 존재였을 것 같다. 은희에게 두 사람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

일단 지숙이는 물론 다른 학교이기는 하지만 되게 서로 아팠던 부분들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라고 생각했다. 진짜로 솔직하고 서로 할 말도 하지 않나. (지숙이가 은희에게) '너 가끔 네 생각만 한다'고. 말 그대로 단짝 친구인 것 같다. 서로 독설도 날리고, 진짜 미안해서 울 때는 서로 눈물도 닦아주고. 지완이는 음… 스쳐 가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볍게 스치는 건 아니고, 은희가 진짜로 진심으로 대했지만 언젠가 떠날 그럴 아이. 섬 같은.

박지후가 맡은 은희는 집안과 학교에서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며 자기를 찾아가는 인물이다. (사진=에피파니&매스 오너먼트 제공)

 

▶ 좋아하는 걸 물을 때 지숙이 장난스럽게 지완의 이름을 말할 만큼, 은희는 교제 중인 이성 친구 지완에게 푹 빠져있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애써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않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은희는 집안과 학교에서는 자신을 감추면서 살았을 것 같더라. 지완이가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녹는다고 해야 하나. (웃음) 지완이 앞에서 잘 보여야겠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지완이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카세트테이프도 만들어 마음을 표현하고 주고받았던 것 같다. (은희가) 먼저 뽀뽀하자고 말하지 않나. 지완이가 나를 좋아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니까 이건 말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중간에 지완이 다른 여자애와 잘 지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른바 바람을 피운 건데, 은희는 다시 온 지완을 받아준다.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보나.

은희는 친구도 다른 중학교에 단짝이 있을 뿐이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지완 말고는) 없었다. 그러니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을 것 같다. (나중에 왔을 때) '쟤는 무슨 생각으로 온 거지?' 싶기도 하고, 미울 수도 있고 원망하는 감정이 들 수도 있는데 다시 (은희가) 좋다고 온 거니 표면적인 감정만 보고 속는 셈 치고 믿어봤던 것 같다.

▶ 그래서 나중에 지완에게 '나 너 좋아한 적 없다'고 하는 선언이 더 통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두 번째 만남 때는 외로워서 만나는 거였을 수도 있다. (첫 번째 만남) 그만큼,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 콜라텍에서 만난 후 친해지자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후배 유리와의 관계도 재미있었다. 노래방에 같이 가고, 병문안도 오고.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은 원래 모르는 노래였다. (가사에) 사랑은 쉽게 깨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진짜 사랑은 아픈 거구나' 하고 가사에 몰입해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 병문안은, 그 당시에 후배가 선배 병문안을 오는 것 자체가 웃겼다. (웃음) 귀엽게 느껴졌다. (제 주변에서) 선배 병문안을 하는 아이들은 잘 못 봤다. 그런데도 찾아와 준 것이지 않나. 집까지 전화해서 알아낸 그 열정이 되게 고맙고 귀여웠을 것 같다. 당황스럽긴 한데 싫진 않은. 조용히 둘이 얘기하려고 커튼을 치는데, (연기할 땐) 못 느꼈는데 극장에서 보니까 (그 장면이) 되게 웃기더라. 그 둘의 관계가 애틋해 보였다. 교환일기 쓰는 느낌이기도 했고. 아! 커튼 칠 때 제가 입을 앙다물고 있더라. (웃음) '내가 저런 표정 지었나?' 했다.

▶ 먼저 호감을 표하고 부모님보다 선생님보다 은희가 좋다고 했던 유리의 변심은 그래서 더 놀라웠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는 말을 듣고 은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솔직히 유리가 먼저 (은희에게) 다가와 준 존재인데 진짜 어안이 벙벙했을 거 같다. 처음에는 (은희가) 넋이 나가는데, 나중엔 (유리를) 째려보고 나가지 않나. 그러니 지진 않은 것 같다. (웃음) 다만, (사람 마음이) 한결같을 순 없다는 걸 알았을 것 같다.

배우 박지후 (사진=박종민 기자)

 

▶ 은희의 세계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어른이 바로 한문 선생님 영지다. 영지는 은희에게 어떤 사람일까.

영지 선생님은 진짜, 은희의 삶 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영지 선생님으로 인해서 변한 게 제일 많지 않나. 자기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존재.

▶ 은희는 초반에 지숙과 필담을 나누면서 영지가 담배를 피운다며 조금 특이한 존재로 바라본다. 하지만 점차 속 이야기도 털어놓으면서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고백한다. 영지의 어떤 점이 은희 마음을 열게 했을까.

처음에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한문학원 안에서, 학생 앞에서 선생님이 담배 피우고 있다? 그거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자기소개시키고 자기도 소개하는 소통 방법도 색달랐고. 은희가 만화 좋아한다고 하니까 자기도 좋아한다고 맞장구치는 것도. 그때 은희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냥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대화를 깊게 하지 않아도 '아, 이 사람 잘 맞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같은 시선에서 바라봐주기도 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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