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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母 "집에 있으면 미칠것 같아 노동현장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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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죽은 이유, 내 삶의 목표가 됐다
사고 이후 개선은 커녕, 현장은 엉망
위험한 현장 몰고, 사고 나면 개인탓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 거리로 나섰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미숙(故김용균씨 어머니)

지난 12월 충남 태안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24살 김용균 씨. 기억들을 하실 겁니다. 그 당시 김용균 씨 어머니와 나눴던 인터뷰도 저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우선 그 사고 당시의 인터뷰 잠깐 들어보시죠.

♣ 김미숙> 아들이 그렇게 힘들게 일했고 그렇게 위험하게 머리를 집어넣고 일해야 되는... 아들한테 늘 열심히 하고 그렇게 행하기를 부탁했는데 결국은 제가 말한 것 때문에 애가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직도 애하고 입술에 뽀뽀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 없이 그런 애였습니다.

◇ 김현정> 성실하고 밝고...

♣ 김미숙> 사람이 물건인지 없으면 또 하나 채워서 가동하면 되니까. 이게 뭡니까.

◇ 김현정> 다시 들어도 저는 좀 가슴이 먹먹하네요. 그 사고 당시에 발전소 측은 말했습니다. ‘김용균 씨가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김용균 씨 어머니는 이 부분이 가장 서럽다라고 했었죠. 특조위가 넉 달을 조사했고요. 얼마 전에 그 결과를 전해드렸는데 그 조사 결과를 받아든 김용균 씨 어머니의 이야기 직접 듣죠. 오늘 김미숙 씨를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머님.

◆ 김미숙> 안녕하세요.

◇ 김현정> 조금 긴장이 되신다고 해서 제가 아까 1부 때부터 모셨어요.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 김미숙> 아직도 긴장이 됩니다.

◇ 김현정> 아직도 긴장이 되세요? 그러시죠. 사고 당시 인터뷰, 저는 다시 들어도 또 먹먹한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난 세월을.

◆ 김미숙> 그냥 내 아들이 왜 피켓을 들었는지 그 이유가 이제 앞으로의 제 삶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아픔 겪지 않게 하려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습니다.

 

◇ 김현정> 어머니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저희가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원래 직장 다니셨는데 그때 저한테 뭐라고 그러셨냐면 ‘제가 일을 참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시키면 잘 하는 사람인데 우리 아들도 그래서 나를 닮아서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러셨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데 그 열심히 하던 일도 직장도 그만두셨다면서요?

◆ 김미숙> 이런 일을 안 겪었으면 몰라도 이제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이 있다는 거. 그래서 우리 아들도 죽고 다른 사람들도 한 해에 2400명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너무 충격이 컸고요. 그래서 그런 이전의 일보다 이제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 생각이 들어서 노동 현장, 노동 문제가 발생하는 곳마다 어머님 얼굴이 보이던데요. 직접 뛰어다니시는 거예요?

◆ 김미숙> 죽거나 이런 곳에 가서 손잡아주고 힘내라고 얘기도 해 주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4달 간의 조사 결과를 하나하나 좀 짚어보죠. 사고 당시에 그러셨어요. 제일 서러운 게 ‘김용균, 내 아들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회사가 말한 부분. 이게 서럽다’ 그러셨는데 그때 근거가 뭐였냐면 낙탄 처리 지침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벨트 및 회전기기 근접 작업 수행 중에는 비상 정지가 되지 않도록 접근 금지인데 아니, 접근 금지라고 했는데 왜 들어갔느냐.’ 이 부분을 문제 삼은 거였는데요. 진상조사는 정반대로 나왔죠?

◆ 김미숙> 우리 아들이 업무 수칙을 너무 잘 지키려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 김현정> 오히려 너무 잘 지켜서 사고가 난 거다?

◆ 김미숙> 네. 그리고 특조위 결과 발표가 우리 아들이 왜 죽어야 됐는지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는데 여기서 다 드러났더라고요. 잘못된 민영화로 인해서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권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게 그렇게 진행되어 왔고 그 속에서 우리 아들이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들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또 죽어나가는 사람들,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 안전하지 않아서요. 그런 사람들이 매일 뉴스를 통해서 보고 있는데 정말 답답합니다. 바뀌지 않는 사회가.

 

◇ 김현정> 지금 이 얘기를 들어보면요. ‘아니, 접근 금지라고 그랬는데 왜 들어가느냐?’가 회사 말인데 이걸 생각해 보면 비상 정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김용균 씨는 낙탄을 정지시키지 않고 주워올린 거잖아요. 그러다 사고를 당한 거잖아요. 이게 앞뒤가 안 맞는 말인 거죠.

◆ 김미숙> 완전 상반된 얘기인 거죠. 자기네들은 그렇게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해서 죽었다고 얘기를 하니까 이건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번에 나온 거죠.

◇ 김현정> ‘위험의 외주화’, 우리가 요사이 그런 말 참 많이 해요. 지하철에서 사고 났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빗물펌프장에서 사고 났을 때도 그렇고 김용균 씨도 그렇고. 그때 어머니가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사고가 나고 나서 아들 일터에 처음 가봤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긴 시간 그렇게 많은 양의 일을 그것도 밤에, 그것도 혼자서 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고 미안합니다’ 그러셨거든요. 그 위험했던 일터가 당연히 기억나시죠?

◆ 김미숙> 네, 너무... 지금 요즘도 계속 다른 방송에서도 방영이 되고 있는 것도 계속 보고 있는데 그때는 2인 1조를 못 해서 애 혼자 일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지금은 2인 1조가 됐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혼자서 2km를 봤는데 지금은 둘이서 4km를 보고 그래서 현장은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고요.

◇ 김현정> 지금도 개선이 안 됐어요?

◆ 김미숙> 하나도... 오히려 일의 양이 많아져서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처음 가셨을 때 그 현장 모습은 어땠어요? 제가 기억하는 그 당시 CCTV는 뭐였냐면 지하니까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한데 석탄도 까맣잖아요. 그러면 전등이라도 좀 많이 붙어서 환하게 해 주면 좋겠는데 전등도 무슨 70년대 탄광처럼 군데군데 하나씩 있어서. 그때 김용균 씨가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 그거 켜놓고 이렇게 벨트 속을 머리 넣고 봤었다면서요?

◆ 김미숙> 그 속에서는 용균이가 손전등이나 헤드랜턴도 없이 이상 신호가 있으면 위에 보고를 해야 된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사진을 찍어서. 그런데 용균이가 일했던 곳은 철제로 막혀 있는 상태고 바깥에 불이 있는 관계로 그 안에는 휴대폰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근접해서 사진을 찍어야 되는 환경이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분진이 많이 날리니까 가까이 찍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으니까 회전체에 이상이 있으면 가까이 찍어야 하니까 그냥 사고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더라고요.

◇ 김현정> 그렇죠.

◆ 김미숙> 어떻게 사람이 일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곳에 집어넣어놓고 일 시켜놓고 사고가 나면 본인 책임으로 몰고 가고 있는 현 사회가 너무 답답합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왜 내 자식이 그 속에서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렇게 일을 시켰는지. 나라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국민의 한 사람 목숨이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아이인데 그 속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권도 없고 아무런 힘이 없고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지. 이건 나라가, 정부가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김용균 씨 이야기에 우리 사회가 더 감정 이입이 됐던 건 뭐냐 하면요. 김용균 씨 처지가 일반적인 우리 청년들의 처지하고 참 닮아 있었다는 점이에요. 뭐냐하면 대학 졸업하고. 우리 김용균 씨는 전문대 나왔죠?

◆ 김미숙> 네.

 

◇ 김현정> 전문대 졸업하고 최종 목표는 한전 정규직이 되는 건데 바로 취업은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스펙 쌓고 경력 쌓아서 가야지 하고 자격증 따느라고 1년. 그다음에 여기저기 이력서 넣는 데 7개월. 그러다가 겨우겨우 이곳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이렇게 된 거죠?

◆ 김미숙> 네.

◇ 김현정>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서 경력 쌓아서 ‘나 한전 가야지’가 꿈이었던 거예요.

◆ 김미숙> 애가 처음부터 군대 가서 전선 같은 것도 만져보고, 그래서 그쪽이 나한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쪽으로 처음부터 선택을 했어요. 그래서 직업 구하는 것도 그쪽 한 방향으로밖에 구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저기 구했는데 너무 일할 자리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요즘 대학 나오고 고등학교 나오고 회사를 구할 때 정말 학생들이 회사 구하는 자체가 힘들잖아요,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용균이처럼 또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다가 구할 게 너무 뻔하게 눈에 보입니다.

◇ 김현정> 그래서 우리가 더 슬펐던 건데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러셨어요. 내 아들 같은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이러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 찾아다니셨는데 어떤 분들이 기억나세요?

◆ 김미숙> 한화 폭발 사고의 유가족이 11일 동안 언론을 찾아가고 좀 도와달라고 얘기를 해도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냥 11일 동안 넋 놓고 앉아 있었는데 그때 저희한테 연락이 와서 그때 부랴부랴 내려갔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기자들하고 우리하고 가서 그 유가족들하고 얘기하는데 한 분이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어머님처럼 그렇게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대단하게 어머님은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죠.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한 가정 아이의 엄마고 그 아이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위해서 나서는 것뿐이다. 다른 건 안 보인다. 그냥 자식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엄마로서는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다. 그러니까 용기 내서 무조건 되든 안 되든 용기 내서 해 보자’라고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그분들이 힘내서 기자 회견도 열고 또 나중에 합의도 잘 이끌어내서 정말 제가 거기서 그분들한테 힘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걸 보면서 힘을 많이 받았습니다.

◇ 김현정> 아들이 굉장히 밝았잖아요.

◆ 김미숙> 네.

◇ 김현정> 저 그때 첫 취직해가지고 첫 출근하는 날 찍은 동영상. 양복 입고 찍은 동영상 봤거든요. 장난스럽고 엄마한테 애교도 많고 이런 아들이... 우리 어머님이 지금 눈을 감으시네요. 그런 아들이었기 때문에, 밝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금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뛰시는 모습을 저는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 김미숙> 저는 지금 그냥 집에서 있는 자체가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거리로 자꾸 나오려고 하고 집에서 있으면 저도 그냥 그 어둠 속에서 저도 자꾸 죽고 싶을까 봐. 그래서 더 거리로 나오려고 그럽니다.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저처럼 아픔을 겪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픔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자꾸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외면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김용균 씨만의 일이 아니고 이렇게 위험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머니 좀 힘내셔야 하고요. 우리 아들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라고 그때 저한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실 일이 많아요. 그래서 김용균법도 만들어졌고 김용균재단도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 김미숙> 재단을 만들어서 이렇게 저처럼 아픔을 겪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 김현정> 이런 분들,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위해서 돕는 일을 하는 건가요?

◆ 김미숙> 아까 얘기했듯이 한화 폭발 사고처럼 손 내미는 분 잡아주고 위로해 주고 힘 돼주고 하는 일하고 비정규직이 또 너무... 우리 아들이 비정규직이라서 그렇게 당한 거잖아요. 그런 것도 사업으로 넣고 싶고.

 

◇ 김현정> 지금 응원과 위로 문자도 엄청나게 들어옵니다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좋은 곳에 다 취직하고 싶죠.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지만 사고 여건이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목숨 걸고 임하는 청년들, 그들의 부모님들 듣고 계실 겁니다. 그 분들께 한마디 하신다면.

◆ 김미숙> 정말 사회가 왜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한테 어렵게 만드는지. 그냥 상위 1%를 위해서 국민들이 이렇게 희생당해야 되는 건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안전 교육부터 받고, 그다음에 사회에 나왔을 때는 이런 사회활동하는 사람들 노조 가입 같은 거 하고 그걸 권하는 건 그것이 있어야만 본인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권하고 있습니다. 꼭 사회에 나오면 그 회사가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확인하고. 목숨은 누가 지켜주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은 제일 소중하기에 꼭 자기 자신이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목숨을 지키기 싫어서 안 지키는 게 아니라 그건 우리 어른들이 챙겨줘야 되는 것이고 기업들이 내 자식같이 생각하고 챙겨줘야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그렇게 안 되니까 여러분 우리가 일단은 스스로 지킵시다. 그 말씀을 하시는 것도 참 어떻게 보면 슬픈 현실이네요.

◆ 김미숙> 특조위 결과 발표 나온 거. 지금 그게 제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나온 것보다 정말 이행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책이 그냥 나와서 그냥 책꽂이에 꽂아놓고 누가 읽으라는 게 아니고 정말 이게 잘 현장에서 이행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다 지켜보고 같이 함께 협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만드는 것도 우리가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처음에 하려고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을 너무 가지게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같이 호응하고 같이 함께해 주십시오.

◇ 김현정> 어머니, 오늘 많이 떠셨어요. 지금 많이 떠시고 눈물도 흘리시고 방송 이렇게 생방송으로 길게 하시는 거 처음이신가요?

◆ 김미숙>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 김현정> 거의 처음이시죠? 잘 전달하셨고요. 어머님의 진심이 많은 분들에게 통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힘내시고요.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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