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사진=연합뉴스 제공)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의 전 임직원들이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피해 발생 당시 책임자들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면서도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정계산 부장판사)는 19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이사,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이마트 전 임원 등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홍 전 대표 측은 본인의 대표 재직 시절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된 혐의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홍 전 대표의 법률 대리인은 "문제가 된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사이에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SK케미칼은 정부의 판매중지 권고를 받아들여 판매를 즉시 중단했으며 피해자들과 대부분 합의했다"며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의 인과관계가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는가는 매우 신중하게 가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K케미칼 측 대리인들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공동으로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원료인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기도 했다.
지난 2016년 환경부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외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 등을 주원료로 한 가습기살균제의 폐질환 유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조사를 벌였지만 올 1월 나온 종합보고서에서도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기소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 측은 애경산업이 직접적으로 가습기살균제의 제조를 담당한 책임자가 아니라 '판매자'일 뿐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안 전 대표 측 대리인은 "저희는 판매자로서 주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이라며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홍모 전직 이마트 상품본부장 측 역시 생산자와 판매자가 동일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홍 전 본부장 대리인은 "저희는 완제품을 받아 판매하는 입장이었을 뿐인데 검찰에서는 과실치상 혐의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며 "이런 방식이라면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해 모든 생산·판매자들은 무한한 공동정범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법적 안정성에 문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로부터 벗어났다는 우려도 든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유해성이 공식적으로 입증된 PHMG를 원료로 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옥시·홈플러스와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데 불만을 나타내자 검찰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기소했다며 법리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 측은 "현대사회에서 공산품 등을 대량으로 생산·판매하는 시스템에서는 같은 시장에서 같은 군의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생산자들 간에 공동의 행동에 대한 의사가 있다고 본다"며 "피해자들의 인식을 비롯해 피고인들이 서로 같은 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업체로 인식하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고 기소 근거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