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지만, 이같은 담화는 한국을 통해 북미실무협상과 관련된 메시지를 발신하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담화의 마지막에 "남조선 당국자들과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는 했지만, 여러 맥락과 실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는 표현과는 조금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웃겨도 한참 웃기는 사람", "남조선과 할 말 없다"에 우리 정부도 "무례한 언사" 맞대응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대변인 담화에서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떠들썩하였는데 나온 것은 겨우 쥐 한 마리)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남조선 당국자(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라는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합동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때에 대화분위기니, 평화경제니, 평화체제니 하는 말을 과연 무슨 체면에 내뱉는가 하는 것이다"며 "북한 전 지역을 타격하기 위한 정밀유도탄, 전자기펄스탄(NNEMP), 다목적 대형수송함(F-35B 탑재 강습상륙함) 등의 개발 및 능력 확보를 목표로 한 국방중기계획은 또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역력하다"며 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지막으로는 "이번 합동군사연습이 끝난 다음 아무런 계산도 없이 저절로 대화국면이 찾아오리라 망상하면서 조미대화(북미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런 부실한 미련은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며 "두고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북한은 이 담화를 발표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오전 8시 1분과 16분쯤에 강원도 통천 북방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 뒤 발사체 발사까지 이어지자, 우리 정부 또한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한미연합훈련이 북측을 겨냥한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이 아니라 전시작전권 전환을 대비한 연합지휘소훈련임을 설명해 왔다"며 "북측이 우리를 비난한 내용을 보면 공식 입장 표명이라 보기에는 도를 넘은 무례한 행위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남북이 상호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지킬 것은 지켜가는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며 "남북관계의 발전은 대화와 협력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가 최근 연이었던 발사 때마다 "정부는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나간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북측도 적극 호응해 올 것을 촉구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표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보다 수위가 강해진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 또한 이날 오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합의정신을 고려할 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남북관계가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 대화와 협력이 더욱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조평통 담화는 성숙한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북미협상 위한 메시지와 함께 '서운하다는 뜻'… 표면적인 표현과는 다르게 읽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이번 담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맥락을 따져볼 때 북한이 남북대화를 정말로 중단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며 '한국을 거론하며 이를 통해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대변인 담화가 상대적으로 '급'이 낮으며, 남북대화를 중단하겠다는 발언 자체도 수위가 강하지 않아 '서운함의 표시'에 오히려 가깝다는 뜻이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북미협상에 집중하고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는 데 집중하려 하면서, 한국을 통해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며 그 근거로 북한의 비난이 대부분 한미간의 안보 문제에 관련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이 주로 언급한 한미연합훈련이나 국방중기계획은 곧 미국과도 얽혀 있는 문제인데,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홍 실장은 "북한은 항상 이중적인 메시지를 써 왔다"며 "최근의 한반도 군사 움직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실제 북미협상에서 미국이 포괄적 비핵화를 요구한다면 포괄적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협상 카드를 마련하려는 것인데, 미국에 직접 얘기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한국을 통해 이를 전달하는 것이다"고 해석했다.
즉, 앞으로 있을 북미 실무협상에 대비해 협상의 주된 이슈가 될 입장들을 보여주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실망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이다.
홍 실장은 "담화 중에서도 조평통의 대변인 담화라면 급이 낮다. 그럴수록 표현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강하게 지켜지진 않는다"며 "북미협상이 나름대로 의미있게 진전되고 나면, (남북대화를) 계속 긴장으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 유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되는 경제협력 분야 언급을 기대했을 텐데, 그만큼의 내용은 없었다"며 "남북의 철도나 도로 연결, 또는 개성공단 재개 같은 실제적인 선언 의지를 기대했는데 없었으니 실망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는 말은, 말이 많은데 내용이 없다는 뜻이고 이는 한국이 원론적인 입장만 말했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다"며 "마지막에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생각은 바뀔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대화를 하려면 한국이 환경과 여건을 만들고 명분을 찾아 달라는 메시지가 묻혀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일부 김은한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소통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미국이 대북제재 조치를 취한 직후 북한이 연락사무소에서 인원들을 철수시켰던 것을 생각해 보면, 북한이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대화 채널을 닫지 않았다는 점은 이같은 해석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