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에 심어진 가이즈카 향나무. (사진=문화재제자리찾기)
대한민국에 헌신한 애국지사를 모신 국립대전현충원에 일제(日帝) 잔재로 알려진 가이즈카 향나무가 400그루 넘게 심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한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에 들여와 일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가이즈카 향나무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회 등에서 제거됐지만 대전현충원에는 수백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현재 대전현충원은 전두환 친필 현판이 34년간 그대로 걸려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관련기사 "[단독] 전두환 친필, 대전현충원에 34년간 걸려있었다") 전두환 친필 현판과 함께 일제 잔재 나무를 철거해야 하나는 목소리가 높지만 소관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 "현충원 일제 잔재 나무 철거해야" 보훈처에 진정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14일 대전현충원의 가이즈카 향나무를 철거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단체 혜문 대표는 진정서에서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으로 가는 길에 왜향나무(가이즈카) 수종이 가로수로 식재돼 있다. 현충원 건립 취지와 심각하게 어긋나고,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광복절을 맞아 이제라도 일본 수종을 제거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대전현충원에 심어진 가이즈카 향나무는 총 477그루(8월 초 기준)다. 가이즈카 향나무는 현충원의 가장 중심부인 '현충탑'과 '현충문' 앞 현충광장의 양쪽 도로를 둘러싼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에 버젓이 가이즈카 수백그루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국립대전현충원 가이즈카 향나무 가로수 식재 도로.
◇사적지 부적합 수종인 '가이즈카'…이토 히로부미가 처음 들여와가이즈카 향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로, 지난 1909년 1월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초대 조선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함께 대구 달성공원을 찾아 기념 식수로 심었고, 이후 한반도 전역에 퍼졌다.
일제 통치의 상징인 가이즈카는 전국 관공서와 학교, 유적지 등에 널리 심어졌다.
가이즈카 향나무가 공론화 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당시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립서울현충원의 가이즈카 나무를 뽑자는 청원을 냈고, 국회는 이듬해인 2014년 이를 받아들여 관련 예산 30억원을 배정했다. 서울현충원의 가이즈카 향나무는 현재 대부분 국내 수종으로 교체된 상태다.
문화재청은 가이즈카 나무를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심어진 가이즈카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지난 2017년 제기돼, 국회는 지난해 가이즈카 향나무 일부를 제거했다.
아울러 각 교육청에서도 가이즈카를 뽑는 작업이 한창이다. 교육 당국은 가이즈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에 다른 수종으로 교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훈처, 일제 잔재 수종 철거 요구에 "시간을 두고 검토할 사안" 답변국방부 관할인 국립서울현충원을 비롯해 국회와 각 교육청, 관공서 등에서도 일제 잔재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지만 대전현충원 주무 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철거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가이즈카는 1980년대 대전현충원 조성 당시에 심은 이후 약 40년 동안 조경수로 관리됐다"며 "시간을 두고 검토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대전현충원에 34년 동안 걸려있는 전두환씨의 친필 현충문 현판을 하루빨리 교체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소극적인 입장이다.
보훈처는 "현충문 현판과 현충탑 헌시비는 지난 1985년 현충원 완공 당시부터 34년째 현존하는 시설"이라면서 "교체한다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구진영 연구원은 "논란이 사그라들기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행정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일제 잔재를 없애고 현충원을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보훈처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