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 이장하 역 배우 류준열을 만났다. (사진=쇼박스 제공)
2016년 개봉한 영화 '더 킹'부터 장편 상업영화의 주연을 하나둘 맡기 시작한 류준열은 최근 3년 동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게 일한 배우 중 한 명이다. '택시운전사'(2017), '침묵'(2017), '리틀 포레스트'(2018), '독전'(2018), '뺑반'(2019), '돈'(2019), '봉오동 전투'(2019)까지 1년에 최소 2편의 영화로 관객들을 찾았다. 그동안 그는 늘 '아직 관객들에게 선보이지 못한 다음 작품'이 있었다.
류준열은 데뷔 후 처음으로 차기작 없이 쉬는 기간을 앞뒀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는 "좋은 작품 있으면 전화 주세요"라고 두 번이나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장르나 규모를 가리지 않고, 드라마 쪽으로도 열려있다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대학 때 연기를 전공하고 배우로 데뷔한 이후, 일에 푹 빠져 살았던 류준열은 모처럼 찾아온 휴식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놀 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는 류준열은 "일할 때가 제일 편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류준열의 액션은 '롱 테이크'
날랜 발과 정확한 사격 솜씨를 지닌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 역을 맡은 류준열은 '봉오동 전투'에서도 액션 연기를 상당 부분 직접 소화했다. 산속에서 촬영한 장면이 많았고, 험준한 곳도 종종 등장했다. '다치지 않기'가 1순위였기에, 현장은 '안전제일' 분위기로 흘렀다.
류준열은 "저희 영화는 감독님이 안전에 대해 엄청 고민하시고 애쓰신 부분이 많다. 기존 영화에서는 피지컬 팀이 액션 촬영할 때만 잠깐 도와주고 가셨다면, 저희 피지컬 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셨다. 저보다 더 많이 출근하셨으니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몇 개월 동안 찍다 보니까 부상에 되게 예민했는데, 발 한 번 안 접질리고 마무리 잘했다. 절벽 와이어 씬도 그렇고 그만큼 액션 팀과 호흡을 많이 맞춰보기도 했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의사소통이 쉬웠다. 많이 도와주시고 코치도 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이장하가 나오는 장면에선 유독 롱 테이크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곧장 억울함을 호소해 웃음을 안겼다. 류준열은 "꼭 제가 출연한 영화는 '원래 여기는 끊어서 가는 건데, 준열 씨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지 않기로 했어' 이러시더라. 전작에서는 대역 분이 있으셨는데 수갑 차는 손 장면만 대역을 한 적이 있다"라고 웃었다.
류준열은 극중 액션 장면의 상당 부분을 직접 소화했다.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류준열은 "제가 직접 해야 얼굴도 다 보이고 진짜 같이 나오니까 (제작진이) 되게 좋아하시고 그런 걸 선호하시는 편이다. 물론 제 대역 친구가 너무 잘해준 지점도 있다. 부상 위험이 있는 것들은 대역분들이 해 주시는데, 다른 스케줄이 있었는데 제 대역이라고 해서 와주신 분도 있어서 너무 감동했다.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롱 테이크 액션'과 '직접 소화하는 액션'이 담긴 필모그래피가 계속 쌓이다 보면, 앞으로도 높은 수준의 주문이나 요구가 들어오면 어떡하냐는 질문에는 "그래도 그게 확실히 그림은 잘 나오더라. 만족도는 굉장히 높은데 하는 동안은 고생하는 게 있다. 너무 칭찬 많이 해 주셔서 신이 나서라도 열심히 하게 된다"라고 답했다.
◇ 캐릭터 만드는 것을 도와준 베테랑 배우들, 진정한 리더십 보여준 원신연 감독류준열은 '봉오동 전투'의 다른 주연 배우들과 이미 전작을 같이한 경험이 있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전설의 독립군 황해철 역 유해진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에서, 뛰어난 언변과 사격 솜씨로 일본군을 저격하는 마병구 역 조우진과는 숨 가쁜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돈'에서 만났다. 베테랑인 두 사람은 류준열이 이장하 캐릭터를 잡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고.
"이장하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답답했던 지점이 있었어요. 말수도 없고 정규 군인으로 훈련받아 딱딱한 사람을, 둘과는 대비되게 해야 했으니까요. 두 분은 워낙 연기하면서 날아다니시는 분들, 좋은 연기를 보여주시는 분들이니까 같이 호흡하고 싶다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께) 좀 더 부드러운 (이장하의) 모습을 후시(녹음)할 때까지도 제안했어요. 목소리 톤도 너무 진지함이 묻어나니까 좀 가볍게 가자고 했는데도 저는 결국 (감독님께) 설득을 당해서 지금 기자님들이 보시는 이장하 모습이 나왔죠.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쟤는 우리랑 각이 달라, 자세부터가 다르고', '넌 여전히 안 웃는구나. 웃을 때 참 근사한데' 하는 것. 이게 다 애드리브에요. 제가 고민하던 걸, 본인들이 대사로 제 캐릭터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시더라고요. 베테랑들은 정말 다르구나 했어요. 큰 그림 보면서 후배 챙기면서 작품 챙기시는 것 보고요."
류준열은 또한 선배 배우들로부터 '동료 배우들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웠다고도 전했다. 그는 "앞선 영화들에서 좀 바쁘거나 피곤해서, 정신없어서 관계를 소홀히 했다면 저도 나름대로 촬영장에서 여유가 생기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동료 배우들이 참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류준열은 '돈' 촬영 때 유지태가 어떤 배우와 친하냐고 물었던 일화를 전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막 친한 배우가 없어서 얘기하기 쑥스러웠다는 류준열에게, 유지태는 촬영하며 만난 선배, 후배, 동료 배우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좋은 관계를 만들면 좋을 거고, 나중에 돌아보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는 내용이다.
윗줄 앞 왼쪽부터 배우 류준열, 조우진, 유해진. 아랫줄 왼쪽부터 배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원신연 감독 (사진=쇼박스 제공)
그때의 말을 잊지 않았던 류준열은 요즘 들어 그 말이 더 와닿는다고 밝혔다. '더 킹' 찍으면서 '택시운전사' 제안이 들어왔을 땐, '더 킹'에 함께 출연한 배성우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그땐 그게 선배가 후배에게 통상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만큼 신경을 써 준 부분에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봉오동 전투'로 처음 작업한 원신연 감독에 관해서도 물었다. 류준열은 '살인자의 기억법' 등 최근작뿐 아니라 원 감독의 모든 작품을 다 극장에서 볼 만큼 원래부터 팬이었다고 강조했다. 설경구 등 주변에서도 원 감독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궁금했다는 그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손수 보여주시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감독님 누구셔?' '원신연 감독님' 이러면 (그분) 좋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가까이선 경구 선배님도 계시고, 사람 참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제가 참 의지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책임감이 아주 가득 차 있으세요. 스태프분들, 동료분들을 잘 안고 가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그림이 굉장히 분명하고 배우에게 그걸 젠틀하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에서 감명받았어요. 왜 주제를 이렇게 했고, 왜 이렇게 편집했고, 왜 이런 마무리를 했는지 다 이해가 되게 만드세요. 그 부분이 감격스럽고 감동적이었어요."
◇ 좋은 작품 기다리는 중
'봉오동 전투'는 국내 4대 배급사 중 하나인 쇼박스가 내놓은 올여름 텐트폴(텐트 칠 때 세우는 지지대에서 나온 말로, 특정 시기를 겨냥해 나온 흥행 가능성이 큰 영화)이다. 지난 7일 개봉해 13일까지 24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일주일 전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예상 관객수를 묻자, "아무도 말을 못 한다. 저도 데뷔 초나 지금도 예상을 못 한다"라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어떻게 나올지) 몰라가지고 답답해 죽겠다"라고 너스레를 떤 류준열은 이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류준열은 "저는 한국영화가 선전하는 게 제일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라며 "좋은 영화를 많이 보여드려서 관객들에게 '한국영화 보는 게 재밌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게 제일 첫 번째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제공)
당분간 류준열은 '봉오동 전투' 홍보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다. 차기작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제 쉬는 거냐고 묻자 그는 "좋은 작품 기다리고 있다. 좋은 작품 있으면 전화 주세요"라며 웃었다. 드라마는 안 하냐는 질문에 "늘 스케줄 문제가 있었다. 가능한 시기를 맞출 때 드라마가 타이밍이 잘 안 맞더라"라고 답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둘 다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요새 드라마 환경도 좋아졌고. 좋은 시나리오 있으면 전화 주세요"라고 다시 한번 연락을 부탁한 류준열은 독립영화도 물론 열려있다고 밝혔다. 그는 "'쟨 이런 거 안 하겠지?' 하면서 안 보내시는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재밌고 독특한 독립영화가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다. 저희 회사는 (독립영화라고) 컷하지 않는다. 저도 시나리오 들어오는 건 다 본다"라고 부연했다.
"많다면 많은 작품에, 여러 번 나온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봐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차기작에 대해서 고민도 많고요. 빨리 좋은 소식 전해드리고 싶어요."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