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으로 각종 상 휩쓴 이성민이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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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비스트' 정한수 역 이성민 ②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성민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비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형사의 감정 골이 깊어지고, 각자 감정에 파고들게 되는 스릴러 '비스트'(감독 이정호)는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이성민은 희대의 살인마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살인을 숨겨주는 형사 정한수 역을 맡아, 극한 상태에 있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다.

'비스트' 후반 촬영 때는 눈 실핏줄이 터질 만큼, 그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배역을 잘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겹친 결과이지만, 작품엔 그의 수고가 고스란히 담기게 됐다.

'비스트'는 어느 때보다 고되게 촬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성민은 '베스트셀러'(2010), '방황하는 칼날'(2014), '비스트'(2019)까지 함께한 이정호 감독을 믿었다. 오랜만에 복귀한 이 감독을 보고 그가 본인 스스로에게 굉장히 치열해졌다는 걸 깨달았다고도 덧붙였다.

의외로 남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이성민은 '비스트'를 통해 폭발 직전의 감정을 안고 가는 역할을 경험했다. 어떤 배우든지 간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델 새롭게 가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배우 이성민을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여러 입장을 두루 살피면 더 흥미로운 영화 '비스트'

민태 역을 맡은 유재명이 '안개 같다'고 표현했듯, '비스트'는 쉽게 손에 잡히는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현장에서 정해진 장면도 적지 않았다. 한수와 오래 알고 지낸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 분)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춘배는 숲속에서 한수와 크게 싸우고 총질을 피해 도망친다. 영화에서는 낭떠러지로 떨어진 춘배의 모습이 비칠 뿐 죽었는지 명확히 표현하진 않는다.

이성민은 "그 지점을 감독님도 많이 고민하셨다. 이게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르고 넘어가는 게 맞겠냐, 확실히 죽인 게 맞나 하고. 애매모호하게 나오지 않나"라고 운을 뗐다.

이어, "춘배한테도 여러 말이 많았다. 칼로 찌르면 정확히 죽이는 것이지 않나. 총이 몸을 관통한다든지. 이런 건 명확한데. 제 입장에서는 (춘배 목숨) 여지는 열려 있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더라"라고 말했다.

무엇 하나 또렷하지 않고 희미하며 모호한 분위기의 영화 '비스트'. 이성민에게 어떤 영화인 것 같냐고 의견을 묻자 "괴상한? 이상한?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 민태 역 유재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왔다는 이성민은 배우들과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봤다.

이성민은 '비스트'에서 라이벌로 호흡을 맞춘 유재명을 두고 연기를 워낙 잘해서 연기로 사고 칠 만한 친구 같았다고 말했다.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그는 "우리는 작년에 시나리오 처음 받고 계속 읽고 상의하고 토론하고 현장에서 찍고 편집본 보고 극장에서 보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 이야기를 구축해 왔다. 대중은 지금 이야기를 처음 맞닥뜨리는 것 아닌가. 어쨌든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만 이성민은 "연쇄살인범(이송희 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아들이 죽은 거니까 화가 날 거고, 춘배 입장에서 보면 걔도 화나는 게 있을 거다. 여러 입장이 있으니, 그걸 보는 재미가 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조금 더 진화될 거로 생각했어요. 역시 이정호 감독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감독님 스타일이, 늘 양면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방황하는 칼날'도 미숙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그들의 죄를 처벌하는 게 맞느냐, 안 맞느냐 갖고 화두를 던지는 것처럼요. 여기도 보면 민태와 한수, 춘배라는 여러 인물의 악당 같은 모습을 비춰주면서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잖아요. 누구 편을 따라가게 할 건가. 그게 이정호 감독님 특기인 것 같아요. 대화할 때도 평소에 그러세요. 근데 원래 성향은 굉장히 상식적인 것 같아요. (웃음)"

◇ 실핏줄 터지는 열연… 힘들었던 촬영 현장

영화 개봉 전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는 이성민의 실핏줄 열연 사실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따로 분장한 게 아니라 정말 실핏줄이 터진 것이다. 이성민은 "컨디션도 안 좋았고, 캐릭터 프레스(압박)가 많이 걸려있던 것 같다. 맨날 막 예민한 연기를 해야 하니까. 맨날 때리고 맞고 이런 걸 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두 번 터졌는데, 한 번은 촬영이 없는 때였다. 그래서 스스로 아쉬워했다. 감독님도 아쉬워했고. '방황하는 칼날' 때 (정)재영이도 엔딩 때 (실핏줄이) 터졌다. 그때도 전 신기했다. '아니, 쟤 뭘 했지? 숙소에서 눈을 찔렀나?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했는데, (저도 그런 걸 보고) 이정호 감독님 작품을 하면 주인공들은 그렇게 되는구나, 했다"고 말해 폭소를 유발했다.

겨울에 촬영을 진행해서 더 어려운 점도 있었다. 두 차례 나온 갯벌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성민은 "굉장히 힘들었다. 갯벌은 차갑고 빠지면 안 됐다"면서 "영화가 힘들어 보이긴 해서 그게 그나마 위안인데 추위가 덜 보이더라. 겁나 추웠다"고 밝혔다.

이성민은 "갯벌 장면도 겨울에 찍은 건데, 미진이 시체 발견하는 건 그렇게 추운 날이 아니었다. 알몸남 맞는 씬이 추웠다. 그분이 엄청 고생하셨다. 완전히 다 벗고 있으니. 머리채를 잡아야 하는데 머리채는 짧으시고… 한 번 뒹굴고 나면 문신은 지워지지. 너무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운, 언 땅에 사람이 내동댕이쳐지면 굉장히 아프다. 눈이 와서 갑자기 언 땅인데 비포장도로라서 차 바퀴 자국까지 다 얼더라. 평평하지 않으니 발목이 접히기도 하고"라고 부연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비스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이성민이 말하는 이정호 감독, 유재명, 이송희

이성민은 이 감독과 세 편째 영화를 같이하고 있다. 전작과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냐고 묻자, 그는 "굉장히 치열해지신 것 같다, 본인 스스로에게. '방칼' 때보다 긴장도 많이 하셨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때랑 영화 촬영 현장이 많이 달라져서 시간 안에 다 찍어내야 하니까 부담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특히 '비스트' 촬영 때는 오케이를 자주 하지 않았다는 게 이성민의 설명이다. 원래도 오케이를 쉽게 내리진 않았지만, 이번이 심했다고. 이성민은 "감독님도 인물들이 마지막 극단까지 갈 때 그게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받는지 확신이 안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성민은 "이정호 감독은 약간 트릭 쓰는 걸 안 좋아한다. 날것을 좋아한다. 배우 연기를 보완하기 위해서 컷을 바꿔서 한 번 더 찍거나 하는 걸 싫어한다. 그냥 들이대고 나올 때까지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과 같이 찾아가는 작업이니까 스태프들도 힘들긴 하다. 근데 하여튼 엄청 긴장하고 찍으시더라. 촬영 내내 술·담배를 끊었다. 원래 담배를 엄청 피우는데 촬영 기간 내내 다 끊으셨다"라고 전했다.

'비스트'의 투톱으로 호흡을 맞춘 유재명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마약왕' 촬영 현장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고. 이성민은 "굉장히 좋았다. 현장에서도 배우로서 서로 뭔가 공을 주고받는 느낌이 들어서 연기하면서 되게 좋았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여러 모습을 봤던 것 같다.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언젠가 (연기로) 사고 칠 배우 같더라. 언뜻 보면 나랑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고. 살아온 것도 그렇고. 저보다 훨씬 지적이긴 하지만. 한 번은 만나겠구나 했는데 만났다"라고 말했다.

'비스트'는 연극계의 대선배이자 '1등 배우'였던 이송희와 함께 연기했다는 점에서도 이성민에게 뜻깊은 작품이다. 이송희를 언급하자, 이성민은 어느 때보다 신난 투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성민은 "대구에서 연극을 하시던, 지금 계속하고 계시는 이송희 선배님이다. 저도 대구 살았는데 저희 어릴 때 우상이었던 배우다. 1등이셨던 배우"라고 소개했다.

극중 아들 역할이 먼저 정해지고 나서, 정말 신기하게 이송희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이성민은 이정호 감독에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가장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마 역 캐스팅은 이렇게 이뤄졌다.

이성민은 "저는 굉장히 영광스럽고 행복했다,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선배님도 너무 좋아하셨고, (저는) 좀 꿈 같았다. 예전에 저는 말도 못 붙였던 선배님이었다. 무대에서 누가 1등이냐고 하면 거의 최다 득표를 얻는 선배님이시고"라고 말했다.

◇ 배우는 어디든 가 보는 게 중요하다

배우 이성민 (사진=NEW 제공)

 

'비스트'에서 남성적이고 감정적으로 끝을 보는 캐릭터를 맡으면서 연기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냐는 질문에 이성민은 "어떤 배우든, 어떤 델 가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돌려줬다.

"감정이든, 외형이든, 심리적이든 육체적이든. 그래야 그 영역이 나한테 체득이 되는 거니까요. 저는 이 작품 하면서 그 한 단계 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 부분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역할을 자신없어 했었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민은 지난해 '공작'에서 북한의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이성민은 '공작'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18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남자연기상,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제5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27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등 말 그대로 상을 휩쓸었다.

그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성민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며 "좋은 영화에 좋은 감독을 만나야 하는구나!"라며 웃었다.

"감사하고 뭐랄까 좀, 꿈 같았어요. 처음이 부일(영화제)이었는데 그때만 좀 실감이 안 났어요. 대체 왜 내가 이걸 받아야 하냐? 좀 민망하기도 했고. 그래서 뭐… 그럴 일인가? (웃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좋은 영화 덕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 근간은 캐릭터니까, 좋은 캐릭터를 받은 게 복인 거죠. 아무리 좋은, 훌륭한 배우라도 허접한 캐릭터를 만나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좋은 캐릭터를 만나는 건,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기 드물 텐데, 공교롭게 그런 경험을 하게 돼서 좋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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