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수사기관이 이른바 '사무장 병원'과 같이 의료기관 개설 규정을 위반한 병원을 수사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거나 재판에 넘기기만 하면 요양급여 지급이 보류되는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이 위헌 심사대에 올랐다.
1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대전고법 행정2부가 최근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건을 심리 중이다.
해당 조항은 수사기관이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있는 사람을 규정한 의료법 제33조2항과 약사법 제20조1항을 위반한 병원 등을 수사해 혐의가 있다고 수사 결과를 통보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병원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개설 규정을 위반한 의료기관에 이미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을 효과적으로 환수하기 위해 2014년 신설됐다.
이미 받은 요양급여비용을 토해내야 하는 사무장 병원 등이 폐업이나 재산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환수 처분을 피해나가자 이를 방지하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통보만으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전고법은 해당 조항이 무죄추정원칙에 어긋나고 재판청구권을 형해화하며, 의료기관 개설자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재산권 등을 침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가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공단이 일방적으로 지급보류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료법 위반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해당 기관을 개설한 사람을 죄 있는 자에 준해 취급하는 것"이라며 "법률적·사실적으로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재산권 등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무죄판결을 선고받더라도 이미 의료기관이 폐업하는 등 해당 조항으로 침해된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재산권 등은 회복할 수 없는 심대한 불이익을 입게 될 수 있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정성을 확보하려는 입법목적도 다른 방법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재판부는 "공단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결과를 통보받으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되 동시에 해당 기관의 재산을 가압류 또는 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하거나 담보권을 설정할 수 있다"며 "일방적인 지급보류 처분이 아니라 법원에 요양급여 비용에 대해 지급보류 신청을 하도록 법관에게 지급보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을 마련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충남 천안에 있는 A의료재단은 2017년 11월 의료법 제33조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자 공단은 수사 결과 통보를 받고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했고 A재단은 같은 해 12월 지급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사건을 심리 중인 대전고법 재판부는 지난 3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결정했다.
한편 의료법 제33조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재단과 이사장 등 관계자들은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지난 5월 무죄가 최종 확정됐지만, 요양급여비용이 지급되지 않으면서 경영난을 겪게 됐고 사실상 폐업 상태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