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회는 지난해 12월 14일 277회 정례회 3차 본회의를 열어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의 강원도 권리의무 변경 동의안'을 의결했다. 기립 표결에서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는 민주당 도의원들.(사진=강원도의회 제공)
공사 지연과 시공사 변경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등 춘천 레고랜드 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지속되면서 강원도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부실했다는 책임론도 확산되고 있다.
강원도의회는 지난해 12월 14일 277회 정례회 3차 본회의에서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 강원도 권리의무 변경 동의안(이하 '레고랜드 동의안')을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찬성,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기립 방식으로 진행한 표결에서 출석인원 44명가운데 33명이 찬성하고 11명이 반대했다. 33명은 모두 민주당 의원이었고 11명은 한국당 의원이었다. 한국당은 소신 결정을 위한 무기명 투표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남상규, 허소영 의원은 본회의장에 불출석해 기권을 택했다.
동의안은 기존 엘엘개발(현 강원중도개발공사)이 직접 추진하던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을 멀린으로 사업 주체를 변경하는게 핵심이다. 주변 부지를 팔아 공사비를 마련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문화재 발굴 지연과 강원도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시행사 엘엘개발의 자금난 등과 겹치며 차질을 빚자 멀린의 직접 투자를 확대하는 대신 주도권을 넘겨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계약 변경 내용에는 테마파크 사업비용 예상액 2600억원 가운데 멀린이 1800억원을, 엘엘개발이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대출금 2050억원 가운데 800억원을 투자하는 권리의무도 담겼다. 동의안 의결에 이어 엘엘개발은 멀린사와 총괄개발협약(MDA)을 체결했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계약 변경 내용을 완벽하게 검증도 못하고 강원도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우려를 정파적 판단으로 간과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강원도의회 한국당 원내대표 신영재 의원은 "이제부터는 멀린에서 요구하는대로 거의 사업이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계약상으로도 강원도와 엘엘개발이 멀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동의안이 부결돼서 강원도 권리를 찾아나가는 길이었는데 우리 강원도 의도대로, 방향대로 사업을 끌고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강원도는 협약 발효일에 즉시 200억원을, 중요 계약 체결일에 나머지 600억원을 즉시 투자하도록 돼 있지만 멀린의 대응 투자 계획은 없어 결국 우리 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지적도 더했다.
800억원을 투자한 강원도 추가 임대 수입료는 연간 레고랜드 입장객 200만명이 초과해야 지급되고 이마저도 1인당 1000원씩, 기간도 10년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반면 표결 직후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레고랜드 동의안 승인에 특별히 감사드린다. 이 사업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강원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업 부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최 지사는 "의원분들의 우려와 걱정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점검하고 면밀하게 살피겠다. 사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 도민들과 도의회의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6개월여 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기존 시공사 계약 승계 등을 강제 규정으로 담아내지 않은 MDA 사항에 따라 지난 4일 멀린사는 현대건설과 시공사 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멀린사는 시공 능력과 공사 금액 절충 등을 고려해 기존 시공사 승계 대신 신규 업체와의 계약을 택했다.
엘엘개발과 지난해 3월 시공 계약을 체결해 1년 넘게 기반 공사를 진행해왔던 STX건설은 계약 배제에 따른 2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손해 배상 등 법적 대응에 사실상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STX건설은 멀린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대로 이번 결정을 기존 발주처의 계약 불이행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전망이다.
'레고랜드 중단촉구 문화예술인, 춘천시민·사회단체, 제 정당, 범시민 대책위'는 9일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레고랜드 시공사 재선정 문제와 관련한 책임자 처벌과 강원도의회의 행정조사권 발동을 촉구했다. (사진=진유정 기자)
시민사회단체들은 강원도의회의 면밀하지 못한 의정활동을 비판하는 한편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강원평화경제연구소는 "이 문제의 커다란 책임과 원인은 도의회에서 레고랜드 권리변경 동의안을 '묻지마' 통과시킨 여당의원들에게 있다는 점을 박아둔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 천만 원 전세 계약서만도 못한 내용으로 MD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자구 확인조차 방기하며 이를 묵인하더니 결국 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자존심에 상처를 남겨 주었다. 그 손실 또한 수백 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강원도의회가 책임있는 의정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레고랜드 중단촉구 문화예술인, 춘천시민·사회단체, 제 정당, 범시민 대책위'는 9일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지 말라는 사업구조 변경을 강행해 얻은 결과는 200억원의 손해배상만 남게 됐다. 지난해 12월 강원도의회가 동의한 레고랜드 시행사 변경은 애초부터 허점 투성이었고 노예계약에 가까운 우려가 많은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7년 동안 강원도와 엘엘개발이 벌여온 일은 투명하게 밝혀진 내용이 하나도 없다"며 "강원도의회의 허술한 검증이 레고랜드 사업의 부실과 도민 기만을 부채질 한 만큼 즉각 행정조사권을 발동해 레고랜드 사업의 모든 내용을 도민에게 밝히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손해배상이 진행된다면 이 부분 역시 배임이 될 것"이라며 "강원도는 책임자를 파면하고 강원도의회는 레고랜드 사업 관련 책임자를 배임혐의로 즉시 고발하라"고 주장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강원도의회는 뒤늦게 수습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강원도의회 경제건설위원회는 8일 글로벌투자통상국 소관 2019년도 주요 업무 추진상황 보고를 받고 대책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의원들은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될 경우 9월 회기에서 행정조사권을 발동하겠다는 방침을 전했고 강원도는 컨소시엄 구성이나 지분 참여 등 대안을 마련해 시공사 재선정에 따른 법적 분쟁 위험성을 해소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