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또다시 양정철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마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얘기로 점철됐습니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과 윤석열 후보자의 심문응답.
주: 양 원장과 만난 사실이 없다는 겁니까?
윤: 만난 적은 있습니다.
주: 언제입니까?
윤: 금년 초였습니다. 2월쯤 됐을 겁니다.
주: 양 원장을 알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윤: 2015년 대구 고등검찰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연말에 가까운 선배가 (서울) 올라오면 얼굴이나 보자고해서 식사장소에 갔더니 그분이 나와 있었습니다.
올해 2월이면 양 원장은 아무런 직책이 없는 '자연인' 신분입니다.
검찰청을 매일 드나드는 기자들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서울중앙지검장을 '백수'였던 양 원장이 만난 셈입니다. 물론 여러 명이 동석한 자리였지만, 양 원장은 야인시절에도 힘있는 사람들은 꽤 만날수 있었습니다.
양 원장이 정말 실세긴 실세인가 봅니다.
기자 출신의 한 의원은 기자들에게 "앞으로는 양 원장이 있는 민주연구원에서 주요한 뉴스들이 나올 것이다. 총선과 관련해 주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내가 기자라면, 양정철만 따라다닐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와닿는 요즘입니다.
야당 의원들은 양 원장과의 만남을 일제히 질타하며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해명하라는 겁니다.
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이 내용을 보니 검찰 중립성이 이미 깨졌다"며 "그간 후보자께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누누히 말했다. 결국 권력 앞에 충성한 모습이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당 김진태 의원은 시그너스컨트리클럽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 9200만원을 받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 4519만원을 선고(1심) 받은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사례를 언급하면서 양 원장도 비슷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당은 지난 6월 양 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양 원장을 고발한 상탭니다.
다시 말해, 양 원장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는 상황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인 윤 후보자가 양 원장을 만난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까닭은 결국 검찰의 중립성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논란부터 장자연 리스트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까지, 부실수사 혹은 봐주기 수사 논란 등 '권력의 시녀'란 오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문 대통령의 복심 양 원장과 서울중앙지검 수장인 윤 후보자가 만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부적절해 보입니다. 물론 윤 후보자는 여야 정치인을 두루 만났다고 답하긴 했습니다.
양 원장이 2017년 페이스북에 적었던 것처럼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고 항변한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입니다. 저들은 악하니까 안 되고, 우리는 선하니까 괜찮다는 식의 얘기는 지지자들에게나 통하는 얘깁니다.
양 원장은 지난 5월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하면서 두 달 동안 여봐란듯이 '실세' 행보를 보였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공식 일정으로 예방하고, 저녁에는 서훈 국정원장과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민주연구원장이라는 신분으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고위공직자들입니다.
양 원장이 실세 행보를 거듭할수록 그동안 양 원장과 관련한 설(說)이나 루머의 신빙성도 커져만 갈 겁니다.
양 원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한국을 떠난 후에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양 원장에 대한 여러 설들이 있었습니다. 양 원장이 청와대 내부 알력 다툼에 개입하거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입니다.
확인되지도, 확인할 수도 없는 이런 얘기들은 말이 많은 여의도 정가의 특성상 참고 정도만 하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인데, 양 원장의 요즘 행보에 자꾸만 지나갔던 설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양 원장의 행보를 불안한 시선으로 봅니다.
중진 의원은 "당에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데, 양 원장이 너무 나가면 정작 주목을 받아야할 지도부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양 원장이 적절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옆에 있다면 대통령이 좀 편하시거나 덜 외로울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면 시스템을 깰 수가 있다. (중략) 양날의 칼 혹은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양 원장이 2017년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양 원장은 다시 한 번 스스로 시스템을 깨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