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입법회(국회)에 진입한 시위대가 기둥에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영문을 스프레이로 칠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 기념일인 1일 또다시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를 외치는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에서, 일부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등 폭력적 성향을 보이면서 향후 시위 양상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우선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이번 시위의 도화선인 된 ‘송환법’의 철회를 시사한 점이 향후 시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람 장관은 2일 새벽 대규모 시위가 가까스로 진정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 의회 임기가 끝나는 2020년 7월이 되면 해당 법안(송환법)은 소멸되거나 자연사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은 우리가 경청해 온 (송환법 폐기) 요구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응답”이라고 말했다. 송환법이 자동 폐기 수순에 접어들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람 장관은 그동안 어떤 직·간접적인 방법으로도 송환법의 철회를 시사한 적이 없다. 람 장관은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인 200만명이 참여한 지난달 16일 시위 당일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사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법안을 재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 송환법의 철회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홍콩 '우산 혁명'의 상징적 인물인 조슈아 웡(黃之鋒·23)이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을 향해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송환법 철회는 시위 주최측이 람 장관에게 요구한 5대 요구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람 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사실상 선언한 이상 시위 동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1일 시위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보여준 폭력성에 상당수 홍콩 시민들이 비판에 나선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홍콩 행정부와 중국 정부가 1일 시위 참가자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리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16일 시위에 일주일 전 시위보다 두 배 달하는 200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것은 앞서 12일 있었던 시위대의 입법회 건물 봉쇄 과정에서 경찰들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데 대한 영향이 컸다.
람 장관은 2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입법회 건물로 진입한 일부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앞서 지난달 9일, 16일 평화롭게 진행됐던 시위들을 부각시키며 이번 시위가 “완전히 다른 장면”이었으며 “불법 행위 척결을 추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중국 정부의 태도도 강경하다. 홍콩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은 이날 책임자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1일 입법회 건물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경악하고 분노한다"며 "이를 규탄하는 한편 홍콩 특별행정구가 심각한 위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위대의 폭력은 홍콩 법치에 대한 극단적 도전으로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홍콩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로 입법회 건물과 시설이 훼손된 것은 법치를 짓밟고 사회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위법행위라는 점에서 강력 규탄한다”며 “홍콩 정부와 경찰의 법적 대응을 중국 정부는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주요 매체들도 홍콩 시위대의 폭력적 입법회 건물 점거를 ‘법을 무시한 폭도들의 행위’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일 사설에서 "지난 1일 밤 벌어진 시위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며 시위대의 행위를 “폭도들의 행위와 같다”고 성토했다.
다만 인민일보(人民日報), 신화통신, CCTV 등 주요 관영매체들은 홍콩 반환 기념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홍콩에서 발생한 민주화 시위 등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홍콩 행정부와 경찰이 중국 측의 강한 압박을 배경으로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사법처리에 나설 경우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또다시 대규모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