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광주 데이트 폭력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맡은 광주 광산경찰서가 단 한 차례도 직접 피해자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는 등 부실수사 정황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17일 광주 광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맡은 광산경찰서 강력팀은 피의자인 A(30)씨를 긴급체포한 이후 A 씨에 대한 조사만 했을 뿐 피해자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피해자 B(31·여)씨가 유사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자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광주 해바라기센터로 보내 단 한 차례의 조사가 이뤄졌을 뿐이다.
A 씨가 혐의 전체를 부인하고 있고, 현장 CCTV 등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정황이 다수 발견됐지만 경찰은 피해자 조사를 직접 하지 않고 해바라기센터에서 넘어온 서류만을 토대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여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될 경우 여경이 동석한 가운데 경찰서가 아닌 피해 여성이 원하는 장소에서 편안하게 진술 청취를 할 수도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검찰에서도 피해자 B씨를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기에 의문점이 있는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추가 진술 청취가 요구된다"며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피해자 직접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사진=CCTV 동영상 캡쳐)
수사 과정에서 수사 지휘와 감독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광산경찰서는 수사 과정에서 사건 발생 장소의 CCTV와 인근 차량 블랙박스 수사 등 데이트 폭력 사건에 기본이 되는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일선 수사팀의 수사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지휘라인에 있는 형사과장과 경찰서장이 직접 사건을 챙겼어야 한다는 게 수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형사과장과 경찰서장이 직접 사건을 챙기고 수사 전반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데이트 폭력 사건 발생 시 경찰청장에 즉각 보고되는 체계가 오히려 부실수사를 유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데이트 폭력이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범죄라며 데이트 폭력 등을 엄단하는 수사기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부에 대한 보고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수사과정에서 일부 의혹이 있더라도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긴급체포 이후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상반되고 피해자 진술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음에도 구속영장 신청, 기소의견 송치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처럼 이번 사건 수사과정에서 부실수사의 문제점이 다수 제기되고 있는데도 경찰은 자체 감찰은 커녕 "일부 혐의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지난 2018년 10월 28일 새벽 광주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차량 안 등에서 여자친구 B씨를 약 3시간에 걸쳐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지만 1심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한편 A 씨는 유죄로 선고된 부분도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며 무죄라고 주장하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