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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시민 함성에 무릎 굽힌 中·홍콩정부, 재충돌 불씨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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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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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범죄인 인도 법안' 처리 연기 선언.
람 장관과 중국 정치적 타격 불가피. 법안 철회는 하지 않아 여전한 불씨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반대 시위의 한 참가자가 '중국 범죄인 인도 반대'라고 쓰인 영문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 사용도 불사하며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이 법안 처리의 무기 연기를 선언한 것은 홍콩 시민들의 조직적 저항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안 처리 연기는 친중파인 람 장관의 정치적 입지뿐만 아니라 미국과 치열하게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될 전망이다.

■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범죄인 인도 법안' 처리 연기 선언, 강경론에서 급선회

람 장관은 15일 오후 3시(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입법 추진의 결정적 계기가 된 타이완(臺灣) 살인사건의 유력 피의자 신병인도를 타이완 정부가 요청하지 않고 있어 법안을 서둘러 처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2월 타이완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친 홍콩인의 타이완 인도를 위해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해 왔다.

람 장관은 "법안 2차 심의는 보류될 것이며, 대중의 의견을 듣는 데 있어 시간표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법안 처리가 사실상 무기한 보류됐음을 시사했다. 다만 "법의 '허점'을 메우는 것은 필요하다"며 법안 철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또 최근 홍콩에서 연이어 벌어진 대규모 시위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슬픔과 실망을 느꼈듯 나 또한 슬픔과 후회를 느낀다"며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들을 것"이라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이같은 태도는 수만의 홍콩 시위대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입법회 건물을 봉쇄했던 12일 발언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것이다. 람 장관은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차단했던 날 밤 배포한 동영상 성명에서 시위를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이어 "본토와 홍콩의 문제를 일부 인사들이 갈등을 조장하는데 사용하고 있지만 폭력시위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오산"이라며 법안 처리 강행을 시사했다.

■ "법안 처리 되면 내가 中에 잡혀갈수도...." 공포감에 시민들이 나서

강경론으로 일관하던 '친중파' 행정장관의 급격한 태도변화를 이끌어 낸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들불같이 번진 홍콩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친중 인사들로 장악된 입법회가 법안 처리 수순에 접어들었을 때 까지도 홍콩 시민들의 저항이 이토록 거셀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지난 2014년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벌인 대규모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의 실패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지난 9일 법안 반대 시위에 무려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정치색 짙은 '행정장관 직선제'란 이슈가 일반 시민들에게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반면 '범죄인 인도 법안'은 어떤 홍콩인들이라도 중국 본토로 넘겨져 사법처리가 될 수 있다는 실제적인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홍콩인들의 공포심리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사법당국이 자행한 초법적 인신구속 사례가 한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2015년 중국이 금지하는 금서(禁書)를 판매하던 홍콩 서점 주인들이 중국에 돌연 납치돼 본토 수사기관에서 조사받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7년에는 중국 금융재벌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이 홍콩 호텔에서 실종됐다 본토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중국과의 법죄인 인도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 공안이 마음대로 홍콩인들을 대륙으로 '납치'해 가는 마당에 '범죄인 인도 법안'이 개정될 경우 중국의 잔인한 사법체계에 홍콩인들이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이번 시위에 일반 자영업자와 기업은 물론이고 고등학생 등 '홍콩 전체'가 참여했다는 점은 홍콩인들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반증하고 있다.

■ 캐리 람 정국 장악력 약화 불가피, G20 앞둔 중국도 타격

'범죄인 인도 법안' 처리 연기 선언으로 캐리 람 행정장관은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무엇보다 람 장관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시민들의 민심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한창 미국과 갈등으로 핀치에 몰린 중국 정부에게까지 더욱 부담을 안겨주는 모양새가 됐다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놓고 홍콩 행정부와 시민들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시민들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점은 향후 람 장관의 정국 장악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람 행정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陳智思) 의장과 전직 관료, 입법회 의원 등 친중파 진영마저도 12일 시위대에 의해 입법회 건물이 봉쇄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법안 처리를 연기하고 시민들과 대화해야 한다며 강경론자인 람 장관으로부터 돌아섰다. 람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사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다.

홍콩 시위의 여파는 대륙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에게도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담판을 앞둔 시 주석에게 갑자기 등장한 홍콩 시위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만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미 의회가 홍콩 시민들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사를 나타내면서 '범죄인 인도 법안' 처리 여부는 미중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됐다. 중국으로서는 법안 처리를 연기할 경우 미국의 내정간섭을 용인한 셈이 되고 그렇다고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경우 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때와 같이 서방 세계의 비난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홍콩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의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명보(明報) 등 홍콩 매체들은 중국에서 홍콩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내려와 대책 회의를 했으며, 람 장관에게 법안 처리 연기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 中 국제 사회 비난 피해가기 택했지만...재충돌 불씨 여전

중국 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결정했다면 G20을 앞두고 홍콩 시위가 계속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비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을 갖는다면 무역문제를 다뤄보기도 전부터 홍콩 시위 문제로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현재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에게 서유럽 등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도 고려해야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89년 톈안먼 시위 여파로 대다수 서방국가들이 중국과 교역을 금지하면서 개혁·개방 초기 중국 경제가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우회로를 택했다 해서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진 않는다.

람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밝혔지만 홍콩 행정부는 법안 처리를 연기했을 뿐 폐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콩 재야단체와 야당도 "법안이 완전히 철회될 때까지 항의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100만 시위로 자신감을 얻은 시위 주최측은 법안 처리 연기 선언에도 16일로 예정된 '검은 대행진' 시위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변할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중국 정부는 이번 홍콩 시위 기간 동안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움직임 배후에 미국이 도사리고 있다며 시위대를 미국의 앞잡이로 몰아갔다. 홍콩 정부의 법안 처리 연기 결정으로 체면을 잃게 된 중국 정부가 위기를 넘긴 뒤 다시 예전의 강경 노선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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