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 있는데 움막을 칼로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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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사건 조사 결과 발표
"한전, 주민 의견 수렴 사실상 건너뛴 채 공사 강행"
"경찰은 긴밀 공조하며 반대 주민들 사실상 진압…자살 사건 축소도"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사진=연합뉴스)

 

경남 밀양·경북 청도 송전탑 건설은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강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전력(한전)과 경찰이 공조해 주민들의 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지난 8개월 동안 조사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의 결과를 13일 내놨다. 조사위는 주민들의 재산·정신적 피해에 대한 치유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권고하는 한편, 경찰청장의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사업추진 정보조차 주민들에게 제공되지 않은 채 강행"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은 경남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원자력 발전소 3·4호기 생산 전력을 경남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로 수송하기 위해 이뤄진 사업이다.

조사위는 "당시 한전은 송전탑 건설사업의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에게 사업추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 사업의 출발점부터 문제 삼았다.

밀양에서는 2005년 주민설명회가, 청도에서는 2006년 주민공청회가 있었지만 참석한 주민들은 극소수였고 청도의 경우 2011년까지 공청회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다수였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한전이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판단이다.

조사위는 "한전은 건설을 수행하면서 주민들의 건강권과 재산권에 부정적 영향을 유발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전은 송전선로가 인체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에게 "안심해도 좋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기준을 벗어나는 등 위험성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경찰에 제압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사진=연합뉴스)

 

◇ 농성 주민은 160명, 투입 경찰은 2100명…"사실상 진압"

조사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인력을 과도하게 투입해 반대 주민들을 사실상 '진압'했다고 봤다.

특히 2014년 6월11일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의 움막을 철거하는 밀양시의 '행정대집행'에 투입된 경찰 숫자는 2100여 명으로 추산됐다. 당시 농성 주민들의 숫자는 경찰 추산 160명 정도에 불과했다. 10배가 훌쩍 넘는 경력이 투입된 것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움막은 밖에서 봤을 때 안쪽 주민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그런데 경찰은 칼로 움막을 북북 찢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때 주민들이 목에 매고 있던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내기도 했고, 이들을 움막 밖으로 끌어낸 뒤 특별한 안전조치나 병원 후송 없이 방치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슷한 시기, 경찰은 청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농성 주민 숫자보다 훨씬 많은 인력을 투입했으며, 주민들이 다치기도 했다고 조사위는 설명했다. 경찰이 필요최소한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의무 등이 적시된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조사위 심사결과 문서에는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2건의 '주민 자살사건'을 경찰이 축소하려 한 정황도 담겼다. 이에 따르면 2012년 밀양 주민 이모씨는 한전 용역 인력과 굴착기가 들이닥쳐 자신의 논을 파헤친 당일 분신자살 했다. 밀양경찰서 당직 근무자는 '화재로 인한 안전사고'로 보고하라는 정보과장의 지시를 받고 이를 그대로 시행했다.

눈물 흘리는 수녀들(사진=연합뉴스)

 

◇ '국책사업' 명분 앞세워 한전·경찰 공조…'뇌물 유착' 정황도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과도한 인력 투입과 공권력 남용 이유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는가'라는 질문에 조사위 관계자는 "송전탑 건설 사업이 이행되지 않으면 지역 전기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대(大)명분이었다"고 답했다.

심사 결과 문서에는 한전과 경찰의 긴밀한 공조관계도 드러나 있다. 공사 재개에 따른 경력의 지원 일정, 투입 인원수와 배치, 차량 통제방안 등까지 함께 협의했다는 내용이다. 일부 경찰들은 신분과 소속,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사진을 찍는 등 광범위한 채증활동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조를 넘은 '유착' 의혹에 대한 지적도 문서에 포함됐다. 조사위는 "2014년 청도경찰서장이 한전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는 일이 있어 한전과 경찰의 유착관계 등이 의심됐지만 청도서장 한 명의 형사처벌로 사건은 마무리 됐다"고 되짚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건설된 한전의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평균 이용률은 지난해 13.78%에 불과했다. 밀양·청도 주민들 중에서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위는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과거 부당하고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 방안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조사위는 정부를 향해 "주민들의 재산적 피해와 정신적·신체적 건강 피해에 관해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른 치유방안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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