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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동교동, 나란히 걸린 이희호-김대중 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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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40년대부터 활동한 여성운동 1세대
혼인신고 운동부터 호주제까지, 가족법 관심 높아
DJ의 내조자 아닌 동지로서 평등한 관계 보여줘
여성운동계는 야당 정치인 DJ와의 결혼 반대하기도
여성운동, 민주화운동, 평화운동 모두 아우르는 삶
63년에 동교동 자택에 문패 두 개가 나란히 걸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 정관용> 이희호 여사, 바로 우리나라 제1세대 여성운동가시죠. 여성운동가로서 오랜 세월, 고인과 친분을 쌓아 오셨던 분, 전 민주당 의원이십니다. 지금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맡고 계신 이미경 이사장을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 이미경>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미경 이사장께서도 여성운동 오래 하셨는데 사실 이희호 여사가 대선배시죠? 여성운동의 1세대 아닌가요?

◆ 이미경> 그렇죠. 저희 어머니 세대예요.

◇ 정관용> 그러니까요. 1940년대부터 시작하신 거 아닌가요?

◆ 이미경> 그렇죠. 해방되고 난 다음에 쭉 하시다가 70년대까지 하시고 본격적으로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고초를 당하시는 70년대 들어와서는 여성단체활동은 안 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있다가 저희들이 열심히 2세대 활동을 했죠.

◇ 정관용> 네, 1950년에 대한여자청년단. 1952년에 여성문제연구원, 이런 것들을 창립을 주도하셨다고요?

◆ 이미경> 네. 아마 젊어서 학창시절부터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50년 6.25 전쟁 났을 때부터 부산으로 피난 가서 여성청년단을 만드셨는데 함께. 김정례 여사와 함께 만들었는데 아마 그 활동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에 했던 대로 봉사활동,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거 여성문제연구회도 따로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그 뒤에 황신덕 선생님, 이태영 선생님, 박순천 여사님, 이런 분들하고 함께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본격적으로 여성문제에 대해서 여성의식 진작이라든지 해서 나중에 이게 가족법 개정 하는 가정법률상담소까지 이어지는 씨앗이 되었다, 이렇게 들었습니다.

◇ 정관용> 지금도 여전히 좀 남아 있긴 합니다마는 특히 1940년대, 50년대라면 우리 한국의 문화가 남녀 차별뿐 아니라 남녀유별 문화가 너무 엄격했던 때 아닌가요?

◆ 이미경> 그렇죠. 굉장히 가부장적인 문화고 시가집 중심으로 그야말로 (가족생활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여성은) 출가외인으로 가서 그 집안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에 호주제라는 게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들 못 낳으면 큰 문제가 되는 여성이 되고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했던 그런 시절이었죠. 그래서 가족법 운동에 대한 관심은 끝까지 가지고 가셨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관련기록 보니까 40년대, 50년대 그때 이희호 여사께서 혼인신고 하기 운동, 이런 걸 하셨다면서요?

◆ 이미경> 혼인신고, 이거는 가족법하고 연관되는데요. 혼인신고 안 해 놓고 나면 나중에 법적으로 남편이 외도하거나 버림을 받고 할 때 문제가 되고 하니까 그런 계몽활동부터 법적인 보장을 받기 위한 운동, 이런 것을 펼치셨죠.

◇ 정관용> 그리고 우리가 보통 이희호 여사, 누구누구 여사, 이렇게 부르는데 이 여사라고 하는 호칭도 이희호 여사로 인해서 사용하게 됐다는 설이 있던데 맞아요?

◆ 이미경> 아니요, 그거는 그 전에 영부인들, 여사님이라고 불렀죠. 그러면 공식적으로 할 때는 영부인, 아무아무 여사, 이렇게 영부인을 앞에 붙였는데 영부인은 쓰지 말자, 이 얘기를 해서 영부인은 그때부터 안 쓰셨어요. 그리고 이희호 여사,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이런 식으로 하셔서 그거는 아마 굉장히 권위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 정관용> 영부인이라고 하는 호칭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해서 거부하셨다, 이 말이로군요.

◆ 이미경> 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정말로 이희호 여사님한테 특별한 것은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가장 특별한 모습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뭐랄까, 우리가 남녀평등한 모습들 이런 것을 대통령 부인으로서 꽤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거는 그야말로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사시면서 언제나 동지다, 내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고 또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는 그 입장이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 간에 굉장히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내조자가 아니라 동지다, 한마디로, 이거네요.

◆ 이미경> 그렇습니다.

1987년 12월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제주 유세에서 김후보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지원 연설을 하며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 정관용> 그런데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하고 결혼하려고 할 때 여성운동계에서는 반대했었다면서요. 우리 여성운동의 거목을 잃는다, 이러면서.

◆ 이미경> 그게 한참 그야말로 어머니 세대시니까, 나중에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깜짝 모두 다 놀랐다고 했죠. 그러니까 그때 36살에 YWCA, 지금으로 말하면 사무총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YWCA에서 굉장히 잘 키워오셨다고. 그런데 결혼하시겠다고, 그것도 정치인하고, 야당 정치인하고. 그러니까 모두 놀랐고 집안에서는 더욱더 놀랐겠죠. 많은 반대가 있었는데 제가 볼 때는 그야말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 철학에 있어서와 인격에 대한 신뢰와 신뢰를 통해서 사랑을 키우고 그것을 실천하셨던 것 같아서 정말 대단하시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 시절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나오시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오시고 초 엘리트에 여성운동의 중심으로 딱 우뚝 서 있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야당 정치인한테, 대단한 결정이었어요, 그것도. 그렇죠?

◆ 이미경> 네, 그러니까 그분, 저는 아까 1세대, 2세대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정관용> 네.

◆ 이미경> 그런데 그거는 보다 더 진보적인 여성운동의 1세대, 2세대라고 볼 수 있거든요. 여성문제는, 여성문제 독자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 민주화와 또 우리 같으면 분단으로 인한 평화의 위협, 이런 것과 다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 하에서 여성운동도 하고 민주화 운동도 하고 평화운동도 하고 함께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생각을 그분께서 그렇게 훨씬 더 30년 전에 2세대 여성운동보다 30년 전에 활동하고 실천을 해 오셔서 아마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더 힘 있게 나가야 된다, 이런 생각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62년에 결혼하시고 63년 집 마련하셨을 때 김대중, 이희호. 두 문패를 그대로 걸었던 게 참 인상깊은 사건 아닙니까?

◆ 이미경> 가장 정말 저희 어렸던 저희한테는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 동교동 집에 가면 문패가 두 개 붙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 저희가 처음에 초대받아서 갈 일이 있었는데 문패부터 봐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갔습니다.

◇ 정관용> 글쎄요. 그게 80년대, 90년대 이후면 모르겠는데 63년에 그랬다는 게 참 놀라운 일입니다.

◆ 이미경> 그렇습니다. 정말요. 아주 그야말로 실천하는 모습이죠.

◇ 정관용> 후배 여성운동가로서 고인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짧게 해 주시죠.

◆ 이미경> 선생님, 전 선생님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네요. 정말 생애가 한국의 여성운동, 민주화운동, 그리고 나아가서는 평화운동을 아우르는 그러한 일평생의 삶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저희에게 그런 본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주신 어른이 계시다는 거 너무 감사드리고 존경한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고 그리고 마지막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좀 더 지켜주시고 그리고 보고 가셨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큽니다.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정관용> 네, 고맙습니다.

◆ 이미경>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코이카의 이미경 이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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