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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배우 송강호,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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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기생충' 기택 역 송강호 ②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다음날인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송강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송강호는 1989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에 진출했다. '초록물고기'와 '넘버 3'에서 맛깔난 조연으로 활약한 후에는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조용한 가족', '쉬리',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YMCA 야구단',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우아한 세계', '괴물',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의형제', '설국열차', '변호인', '관상',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 '기생충'… 20년 전에도, 지금도 그는 당대 한국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다.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여전히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하나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감독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제안하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자꾸 눈에 보이니까"라고 답해 모두를 폭소케 만들었다.

애쓰고 발버둥 쳐도 좀처럼 바꾸기 힘든 현실 때문에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기택의 '무계획론'을 언급하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를 위해 추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 그뿐이었다. "진짜 배우는 무계획인 거죠."

◇ 부담감을 나누어 짊어진 소중한 작품 '기생충'

'기생충'은 벌써 20년 가까운 인연을 맺고 있는 봉준호 감독과 재회했다는 것 외에도 '배우 송강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은 자신에게 기댄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면, 이번 '기생충'은 주인공 두 가족에게 분량과 비중이 비슷하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지난 10여 년 제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좀 무겁고 진중한 게 많았다. 일부러 그렇게 선택한 건 아닌데도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데, 이번엔 봉 감독님하고 배우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부담감 없이 작업한 게 참 오래간만'이라고"라고 전했다.

혼자 어깨에 모든 짐을 지고 가는 영화도 있지만 '기생충'은 배역별로 분량이 고르게 나눠지는 영화였다. 송강호는 좀 더 맘 편히 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우선 배우가 많이 나오고…"라는 답을 내놓아 폭소가 터졌다.

송강호는 "너무너무 즐거웠다. 많은 좋은 배우와 협업하는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다른 영화에도 좋은 배우가 많이 나왔지만, 같이 책임을… 책임이란 단어는 좀 잘못된 표현 같고, 어떤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가벼워지더라"라고 말했다.

모든 배역이 비슷한 비중으로 참여한 것을 두고, 그는 "다 놀랐다. 조여정 씨는 봉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단역이겠지' 했다고 한다. 근데 대사가 제일 많았다. 다들 깜짝깜짝 놀란 것"이라고 말했다.

위쪽부터 4월 22일 '기생충' 제작보고회,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지난달 28일 '기생충' 언론 시사회 때 배우들의 모습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택시운전사'와 '변호인'에서 스치듯 만났던 이정은, '사도'에서 잠깐 만난 박소담을 제외하면 다른 배우들과는 처음 연기하는 것이었다. 송강호는 "어떨까 되게 궁금했다"면서 "그 많은 배우의 앙상블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후배들이 너무너무 잘 적응해주셔서 너무너무 좋았다"며 웃었다.

극중 아들 기우, 딸 기정 역을 각각 맡은 최우식과 박소담은 아직도 송강호를 '아부지'라고 부른다. "저 친구들한테 '아부지'를 들을 나이는 아닌데…"라는 송강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친밀감의 표시니까 뭐라고 말 못 하겠더라고요."

지난 4월 열린 제작보고회 때 '분량' 이야기로 웃음을 줬던 최우식에 관해서는 "우식이가 별명이 '최분량'이었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요즘은 별명이 '최만개'로 바뀌었다. 특별출연한 박서준이 영화를 보고 연기가 만개했다는 감상평을 문자로 보내준 덕이다.

"제가 그 나이 때는 피부가 그렇게 곱진 않았죠. (일동 웃음) 얼굴을 보면 저런 피부는 가지질 못했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아유, 너무 좋죠. 우선 '거인'이라는 작품! 봉 감독도 그걸 보고 최우식이라는 존재를 마음속에 담아둔 것 같은데 저도' 거인'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참 어려운 영화고 어려운 역할인데 아주 좋은 연기 보여줬어요. 박소담 씨는 뭐 '사도' 때부터 알아봤고요. 그 두 친구가 공교롭게도 아들딸로 나와줘서 너무 기쁘고 역시나 잘해줘서 좋습니다."

본인도 젊은 시절 미남이지 않았냐는 말에 송강호는 "제일 괜찮았던 게 '반칙왕'(2000) 때였던 것 같다. 그땐 실제로 레슬링 운동을 어마어마하게 했기 때문에, 몸 상태도 좋았고 피부도 좋았다"고 답했다. 이어, "'넘버 3'나 '초록 물고기' 때가 더 젊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면 오히려 '반칙왕' 때가 좋아. 역시 운동을 해야 돼"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 올해 칸에서도 수상 요정은 활약했다

송강호는 최근 '수상 요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출연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하면 상을 받는 전통(?) 덕분이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박쥐'(2009)는 제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한 '기생충'은 최고 영예로 일컬어지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송강호가 칸에 가면 상을 받고 돌아온다'는 전통이 유지됐다고 하자 그는 "하하하"하고 웃으면서 "제가 너무 운이 좋다. 행운아다. 너무 좋은 작품과 좋은 배우들과 같이 가서 폐막식에 참석하면 그런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는 '괴물', '밀양', '박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기생충'까지 5번이나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다. 이제 칸이 익숙하지 않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그는 "아니다. 정말 매번 긴장된다"고 말했다.

"상이 중요한 건 아닌데 참… 경쟁 21편 안에 들어간 것만 해도 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는데 막상 집에 가라고 하면 섭섭하고… (일동 웃음) 저는 그냥 집에 돌아온 적은 없지만 (웃음) 사람 마음이 참 그런 것 같아요."

이번에는 일정상 여행할 시간은커녕 다른 경쟁작을 볼 시간도 없었다고. 황금종려상을 받던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하니, 송강호는 "화면 나온 그대로다"라며 다시 한번 "으하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는 "이게 참 사람이 좀 잔인한 건데, 호명이 안 될수록 박수 소리가 커지더라. 이게 참 잔인한 거지. 마음이 그렇게 되어가지고. 어마어마한 작품과 어마어마한 거장이 호명돼 (수상하러) 올라가시고 마지막에 우리밖에 안 남았을 때… 그땐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다. 아, 그건 정말…"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소감 때 "나와 함께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가능했고,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최세연, 김서영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송강호도 '반칙왕',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세 작품을 같이한 홍경표 촬영감독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홍 감독은 광기가 있다. 안주하지 않는다. 그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년에는 '버닝', 그전에는 '곡성'이었다. 하여튼 안주하지 않는다. 어떤 좋은 장면을 위한, 좋은 의미의 광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번뜩번뜩 하고 현장에서의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봉준호 감독이나 수많은 감독들이 다 같이하고 싶어 하시고"라며 "평소에는 너무 좋은 분인데 현장에서는 좋은 광기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인터뷰 날은 '기생충'의 개봉 날이기도 했다. 개봉 이틀 전 열린 언론 시사회 때 봉준호 감독은 가벼운 변장을 하고 극장에 가서 관객들의 생생한 평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송강호에게도 그런 계획이 있을까.

본인 출연작을 잘 안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설국열차' 때 같이 연기했던 크리스 에반스 일화를 꺼냈다. 그 또한 본인 영화를 잘 못 본다며 시사하러 안 들어갔다는 것이다. 송강호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겠더라"라며 "가만 보니까 저는 다른 배우들, 감독님들보다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배우 송강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드라마도 '옛날 드라마'를 본다. 송강호는 '전원일기' 광팬인데, 그중에서도 1980년대 방송분을 좋아한다. '대장금'도 1편부터 46편까지 봤다. 그는 "옛날 드라마가 좋아"라며 과거 드라마를 쭉 틀어주는 채널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동안 영화-연극만 해서 드라마에 출연하면 신인상 후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운을 떼자, 송강호는 "일부러 안 한 건 아니다.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성향을 못 가졌다. 20년 전에 제의 왔을 땐 영화에 너무 몰입해 있었고, 그 이후로 (영화로만) 굳어졌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일부러 하고 싶다 이런 것도 아니다.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데뷔 30주년 맞은 송강호가 생각하는 '계속 쓰이는 이유'

포털에는 데뷔작이 연극 '동승'(1991)으로 돼 있지만, 송강호는 1989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이 됐다. 연극은 7년 정도 하고 나서 충무로로 자리를 옮겼고, 그때부터 눈에 띄는 호연을 펼친 송강호는 23년째 영화를 찍고 있다.

사회적인 명예나 부를 갈망했던 적이 있는지 묻자, "저는 배우니까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를 추구하고 그걸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그는 "진짜, 배우는 무계획인 거다. 연극을 통해서 드라마에 나오고 그다음에 영화배우로 성공하겠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을 했다면 단 1년도 못 버텼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이 일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하다 보니까… 나름대로 성취나 사회적 평가가 있었다면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이지, 애초부터 계획했더라면 못 했을 거다. 이 일(배우)이야말로 '무계획'이 정확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만큼, 배우는 더 다채로운 삶의 결을 표현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의 감각'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송강호는 "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너무 오래 살아가지고…"라고 답해 폭소를 유발했다.

지금은 지하철을 탈 기회가 없지만 걷기도 많이 걷고 지하철과 버스를 매일 같이 탔던 시기가 있었다. '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에도 물론 살아봤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라고 바라봤다.

"배우 생활에 그런 경험을 안 했다고 해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갑자기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연기 못 하는 사람이 갑자기 연기 잘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다양한 삶의 체험을 했다는 건 배우한테 결코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송강호는 언제나 '좋은 연기'에 초점을 맞췄다. 발음과 발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언어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언어를 위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거다. 물론 배우들은 정확한 발음과 발성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상이 있다면 '연기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쪽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사도', '밀정' 촬영 현장의 송강호. 맨 아래는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 사진 (사진=각 제작사 제공)

 

영화 '사생결단' 촬영을 앞두고 사투리 연기로 고민을 털어놨다는 류승범에게 송강호는 비슷한 조언을 했다. "우리가 언어를 위해서 연기하지 않는다. 연기를 위해서 언어를 쓰는 거지"라고. '사생결단'을 본 송강호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실제로 보니까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더라. 칭찬도 했다"며 웃었다.

송강호는 강제규,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이준익, 이창동, 홍상수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작업했다. 몇몇 감독들과는 여러 편을 함께했다. 물론 지금도 그는 '0순위 배우'로 활약 중이다. 계속 작품 제안이 들어오는 이유를, 본인은 뭐라고 생각할까.

"자꾸 눈에 보이니까! (일동 웃음) 자기 눈에 보이니까. (웃음) 이런 그런 느낌이긴 한데. 김지운 감독님도 (칸영화제 때) 파리에 계시다가 기차 7시간 타고 오셨어요. 영화를 못 보시고 뒤풀이 때만 오셨는데, 그게 그런 거 같아요. 음… 어떤 인간적인 의리나 정 이런 것도 있겠지만… 정말 쑥스러워지네요. 아하하하하. 부족하지만 제가 매번 견지했던 것들이 있다면요. 좋은 연기라는 게 거창하게 막 카멜레온 같이 화려한 변신을 하고, 뭐 어떤 재능을 번뜩이고 이런 것보다는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작품이 원하는 인물이 될까' 하는 그 헌신의 태도가 있었어요. 좁은 소견이지만 그것이 좋은 연기의 표본이 아닌가 해요. 부족한 면도 많지만 제가 그걸 쭉 견지해 오지 않았나 싶고요. 이런 측면을, (감독들이) 예의 주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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