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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송강호,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대사 보고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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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기생충' 기택 역 송강호 ①

지난 4월 22일 열린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송강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후 5일 만에 37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가정 형편이 현격히 차이 나는 두 가족의 이야기다. 봉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송강호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송강호는 피자 박스 접기 등 각종 부업을 하지만 이렇다 할 생업은 없는, '전원 백수' 집의 가장 기택을 맡았다. 우연히 친구의 제안으로 부잣집에 과외 선생으로 가게 된 아들 기우(최우식 분)를 보며 그는 기특하다는 듯 말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영화를 시작할 때 등장하는 이 대사는 금세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봉 감독의 장기인 블랙코미디적 유머가 잘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기택 역을 연기한 송강호는 기택의 초반 대사를 보고서 '극적 장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기생충' 개봉일이었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를 만났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가난한 집안의 가장 '기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했는지 궁금했다.

◇ 너무 빨리 몰입하기보다는 '관망'하기를

송강호는 '기생충' 개봉 전 인터뷰에서 기택을 '연체동물'에 비유(2019. 5. 21., '씨네21')한 적이 있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기택을 보며 이런 환경에도 흡수되고 저런 환경에도 흡수되는,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연체동물이 생각났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왔다.

영화 초반 기택은 가짜 재학증명서를 들고 과외 알바를 하러 가는 기우가 자랑스럽다는 듯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말한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라는 대사도 있다. 송강호는 이걸 보고 '연극 대사' 혹은 '만화적인 대사'라고 생각했다.

"저는 이게 어떻게 해석이 되냐면, 관객들로 하여금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방으로 너무 빨리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바로) 몰입하기보다는 좀 관망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만화적인 대사가 나온 거죠. 봉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설정이었다고 봐요. 관망하다 보면,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우리의 모습과 (기택이) 흡사하다는 거예요. 기택이 야심이 번뜩인다든지 그래 버리면, 이 드라마 얘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그걸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겠더라고요. 오히려 정말 연체동물처럼 가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그런 모습으로 나왔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신선한 충격과 입체감이 있고 격차와 낙폭이 크게 와 닿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송강호는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인 집의 가장인 기택 역을 맡았다. (사진=㈜바른손E&A 제공)

 

기택네는 가난하다. 짤막한 예고편 영상이 떴을 때 용량도 브랜드도 제각각인 샴푸가 여러 개 있는 욕실 풍경을 보고, 네티즌들은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며 감탄했다. 모르는 이들의 다리가 보이고, 이따금 꼽등이가 나타나는 반지하에 사는 설정이어서 외적인 모습도 그에 맞춰야 했다.

송강호는 "항상 이렇게 후줄그레 하고 나와서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이번에 메이크업, 미술, 의상 등 스태프분들이 다 최고 스태프분들이다. 굉장히 높이 평가받는 분들"이라며 스태프들을 치켜세웠다.

영화를 보기 전, 별 정보가 없을 때는 기택과 그의 가족이 꽤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몇 마디 대사로 스치긴 하지만, 기택은 대리운전도 해 봤고 발렛파킹도 해 봤으며, 치킨집과 대만 카스텔라 집을 열어본 적도 있다. 물론 잘 안 됐으니 반지하 방에 쭉 살면서, 주인집의 와이파이를 훔쳐 쓴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생겼거나, 강해지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송강호는 "근세(박명훈 분) 이 친구도 대만 카스텔라 (사업이) 망했다. (기택과) 동병상련이다. 우리네 인생이 너나 나나 다를 데 없는 거다. 다시 그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 슬픈 전개가 우리네 인생 같은 느낌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독하게 가난하면 아무리 가족이어도 사이가 틀어지거나 나빠지기 마련인데 기택네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른 가정보다 돈독해 보이기까지 한다.

송강호는 "기택이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아도 되게 애정 어린 무시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어떤 원한이나 분노, 대결 이런 단어하고는 안 어울리는 영화라고 본다. 물론 클라이맥스에선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걸 목적으로 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우발적인 부분도 있고, 그 모든 감정도 '자존감의 붕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성'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 송강호에게 듣다, '그 장면은…'

기택은 다양한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된 게 없어서 현재 백수가 된 인물이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사진=㈜바른손E&A 제공)

 

'기생충'은 웃기면서도 간담이 서늘하고 연민이 생기는 동시에 때로는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여러 가지 성질을 지닌 영화다. '희비극'이라는 표현이 꼭 알맞다. 무엇보다 기택네 삶에 들러붙은 가난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물난리가 난 장면이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린 날, 기택네는 물이 들어차 가슴까지 닿고 변기에서는 오물이 솟아오른다.

극중 기택의 얼굴 톤이 후반부에 붉어진 이유도 수해 때문이다. 송강호는 "오염된 물속에 있다 보면 다음 날 피부질환 같은 게 진행되지 않나. 드라마의 극적인 분위기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도 실핏줄이 보일 만큼 피부가 매우 얇아서 붉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묻자, 송강호는 "그게 그 세트의 마지막 장면이다. 왜냐하면 (물이 들어오면) 다시 쓸 수 없으니까. 마지막에 촬영한 밤 씬이다. 하여튼 스태프들이 많이 고생했고, 박소담 씨가 되게 먹먹해하면서 울더라. 이 집이 없어진다는 느낌… 출연 배우조차 그런 먹먹함을 느낀 거다. 세트를 없앤 그 날 이후로는 철거가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장면은 제대로 촬영했는지 어떻게 확인할까. 송강호는 "감독님도 안에 들어와 있었다. (레인) 슈트를 입고 하루종일 있더라. 모니터도 물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놓고. 어떨 땐 다른 방에도 있었다. (세트) 밖에 나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점심도 거기서 먹고"라고 부연했다.

온 동네가 많은 비에 잠기자, 주민들은 임시 대피소에 머무른다. '괴물'에서도 나온 적 있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을 언급하자, 송강호는 "공교롭게도 거기가 '괴물' 촬영한 그 공간이었다. 어딘지 낯이 익다고 했는데… 그런 체육관을 보기 드물지 않나. 특히 서울 시내에서는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괴물' 때도 체육관 씬 자체가 주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고 이번에도 중요했어요. 기택의 어떤 자조와 세계관이 처음 나오는 거예요. '무계획', 이 대사가 사실 슬픈 대사죠. 아들한테 그런 얘기 하는 아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때까지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그 나이대의 가장으로 살아온, 보이지 않는 고통이 엿보이는 유일한 장면이었어요. 봉 감독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고. 여기서 좋아한다는 건 잘 찍었다는 거예요. 굉장히 잘 찍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기택네 가족은 가정 형편은 좋지 않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사이도 돈독하다. (사진=㈜바른손E&A 제공)

 

사우나실에서 사모님 연교(조여정 분)의 손을 잡은 연출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했다. 조여정은 앞서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택이 그 가족 중 유일하게 연교를 안쓰러워하고 연민하는 인물이라 그랬던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송강호는 "저는 또 다르게 생각했다. '아, 드디어 포섭이 됐다!'고 봤다"면서 "그건 봉준호 감독의 정확한 계산 속에서 이뤄진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면은 좁은 공간 안에 기혼자인 남녀 둘이 갑자기 손을 잡기에 왠지 모를 성적 긴장감도 흐른다는 반응이 많았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독창적인 부분인 것 같다. '마더'에서도 금기의 선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긴장이 주는 느낌이 있다. 금기의 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더 아슬아슬하게 하고, 극에 긴장감이 확 스며들게 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 '기생충'에 관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기생충'에 출연한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송강호는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16년 전 개봉한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밝히면서 "봉준호 감독의 정말 놀라운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을 받은 작품이어서 어려운 줄 알았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한 기자의 말에, 송강호는 "그게 진짜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게 우려가 됐어요, 솔직히. 특히 최고상 황금종려를 받으면 '아, 심오한 영화구나!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 하고 어렵고 철학적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저 자신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칸에서도 열광했잖아요. 쉬운데도 묵직함을 던지니까, 칸에서도 열광했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인데, 이 드라마 구조가 되게 신선하죠. 진행이 되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표현을 가장 듣고 싶어요."

반면, 빈자와 부자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두고 호불호가 뚜렷이 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송강호는 "일반적인 대중 상업영화가 가진 드라마트루기의 엔딩은 아니다. 엔딩을 만들어서 '이렇게 끝났습니다'가 아니라 (극중 인물의) 삶은 계속 진행되는 거고 우리 삶도 똑같다. 영화관 나가는 순간부터 내 인생이 또 시작되는 거니까"라고 밝혔다.

배우 송강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 감독의 장기인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는 어떻게 봤을까. 송강호는 "특정한 대사가 굉장히 웃기고 재밌다기보다는 그 어떤, 시퀀스의 리듬감? 그것이 굉장히, 굉장히, 충격적으로 재밌었던 것 같다. 칸에서도 그 지점에서 정확하게 반응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퀀스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저희 작품은 그게 특별하지 않나. 보통 코미디 영화처럼 어떤 대사가 굉장히 재미있다든지 그런 건 아니다. 영화적인 유머가 물씬 담겨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결말에 관한 생각을 묻자, 송강호는 "슬프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고 복합적이다. 복합장르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이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얘기라고 봤다"면서 "열렸다는 표현보다는, 관객분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느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寄, 기대다)가 아니라 '공'(共, 함께)과 '상'(相, 서로)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어떻게 보면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거다. 어떤 분들은 슬픔으로, 어떤 분들은 희극적인 모습으로 느낄 것 같다"고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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