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걸캅스' 조지혜 역 배우 이성경을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성경에게 5월 9일은 특별한 날이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 '레슬러'가 지난해 5월 개봉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여성 형사 투톱물이자 코믹 수사극인 '걸캅스'(감독 정다원)가 개봉했다.
이성경이 '걸캅스'에서 맡은 조지혜는 정의감에 불타는 열정적인 형사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실수를 저질러 팀에서는 꼴통 취급받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난처해졌을 때 도움을 구하러 오는 곳이 '경찰'이라는 것을 또렷이 아는 인물이다.
또한, 지혜는 여성 경찰 기동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전설로 남은 전직 형사 박미영(라미란 분)과 아웅다웅하면서도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끝내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아들 바보'인 아버지의 부성애에 초점을 맞췄던 전작 '레슬러' 때보다 더 극의 중심에 섰다.
'걸캅스'의 개봉 당일이었던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성경을 만났다. 개봉 직전 유료 관객과 처음 만나는 라이브 톡을 경험한 그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 얼굴을 봤을 때 웃는 모습이어서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떨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9일) '걸캅스'가 개봉했다. 기분이 어떤가.긴장이 되게 많이 되더라. 오늘은 차라리 조금 괜찮은데 엊그제까지 (새벽) 5시, 6시에 잠들었다. 생각이 많으면 잠이 안 온다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저도 모르게.
▶ 이번에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하나 보다.
저는 원래 긴장 잘 안하는 성격인데… 선배님들한테 그랬다. '이렇게까지 긴장되는 걸 어떻게 매번 하세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디세요?' 하고. 너무 대단하시다.
▶ 완성된 영화는 언제 처음 봤는지 궁금하다.기술 시사 때. 그게 가족 시사 5일 전이었다. (라)미란 선배, (최)수영 언니랑 같이 봤다. (기술 시사는) 스태프들 시사니까 배우들은 잘 안 가는데 가게 됐다. 그날은 자기 (연기의) 아쉬움과 부족함만 보이니까 '하…' 이러면서 봤다. (웃음)
▶ '걸캅스' 제안 받고 얼마만에 수락했는지. 또,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설명 부탁한다.되게 빨리 했던 것 같다. 유머 코드가 저랑 되게 잘 맞아서 엄청 웃으면서 봤다. 미란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이걸 어떻게 소화하실지 상상하게 되고, 기대도 됐다. 선배님과 호흡 맞출 수 있어서 좋고, 거침없고 솔직한 지혜 캐릭터도 마음에 들어서 즐겁게 했다.
그 유쾌함! 특유의 유쾌함이 좋았고 유머 코드도 잘 맞았다. 저희 영화에 매력이 있다면 딥해질만 하면 웃겨버리는 것? 꼬아서 틀지 않나. 그게 또 우리 영화의 매력인 것 같다. 되게 잘 살아났다고 본다.
이성경은 '걸캅스'에서 정의감과 열정이 넘치는 초짜 형사 조지혜 역을 맡았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가 본인 유머 코드에 맞는다고 했는데 어느 장면이 제일 웃겼나.저는 남들이 썰렁하다고 하는 것에도 잘 웃는다. 아재 개그도 좋아한다. (일동 웃음) 그냥 (관객들) 스트레스 풀리고 가실 수 있게 하는 장면들이 있고 그게 좋은 것 같다. '오늘 되게 웃긴 영화 보고 싶어', '스트레스 풀리게 하는 영화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 때 보면 좋은? 사실 그런 영화가 몇 년 동안 잘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좀 웃으면서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웃으면서 보지만, 마음속에 작은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 혹시 너무 웃어서 NG가 난 장면은 없었나.하나 있다. 타투샵에서 '쌈씹분 뒤에 살아나~' 하는 부분이 있다. (폭소) 그때 (테이크를) 몇 번을 가도 '하하,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이랬다. '제발… 저도 진짜 웃기 싫어요. 감독님, 이렇게 웃는 제가 싫어요' 했는데 감독님이 '그냥 웃어요' 이러셨다. 누가 봐도 웃기게 하는데 안 웃으려고 하는 게 힘들다면서. 아무튼 입꼬리가 너무 힘들었다. 웃음 참는 것도 힘들고. 미란 선배님은 웃기려고 일부러 의도하지 않으시는데 그게 더 웃기다. (웃음) 웃기려고 한다고 해서 웃기면 사실 다 (설정을) 하지 않을까. 웃기려고 안 하고 리얼하게 갈 때 사람들이 웃어준다고 본다. 아무튼 그 장면 웃음 참는 게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웃음)
▶ 지혜가 극중 설정으로는 '열정만 앞서는 초짜 형사'로 나오지만, 누구보다 경찰로서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지.초짜 형사라고 나오는데 딱 맞는다. 마음에 열정과 의욕이 충만하고 가득하지만, 아무래도 경력이 좀 부족해서 서툰 게 있다. 사고도 치고. 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열혈 형사다. 누구나 부족함이 있듯이, 지혜도 경험치 면에선 부족함이 있어서 잠시 (부서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진심, 열정, 거침없음이 굉장히 순수하고 좋았던 것 같다. 살면서 그렇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지 못하다.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액션도 좋았던 것 같다.
▶ 어린 시절 지혜는 우연히 미영을 보고는 "여자도 경찰이 있어?"라고 묻는다. 그러고 나서 본인도 경찰이 된다. 경찰이란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경찰이 되기까지 전사를 생각해 봤나. 또, 경찰 역할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다.실제 강력반 모습 담은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보니까 다양한 성격에 다양한 말투를 가지신 분들이 계시더라. 똑같이 사람 사는 일이고. 다만 사회의 무거운 부분을 처단하려고 해서 위험할 뿐이다.
지혜는 열정이 가득하지 않나. 근데 (극중) 피해자가 (병원에) 누워있는 장면이 있을 때 너무 마음이 힘든 거다. 속상한 마음이 너무 컸던 거다. 극중에 나온 서진이랑 수빈이 역할이, 딱 제 여동생 나이였다. 저보다 4살 밑인데. 그래서 무의식중에 상상하게 되는데 너무 생각하고 싶지가 않더라.
대표님, 감독님, 선배님들한테 '이 씬 빨리 찍길 잘했다'고 했다. 우리 영화에서도 범인 잡으면 해피엔딩일 것 같지만, 당연히 잡혀야 하는 거지 그거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나. 지혜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빨리 만나서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친구의 진심이고 표현 방법은 (시나리오에) 너무 잘 드러나 있어서 지혜의 마음을 더 많이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초반에 찍었던 장면이 저한테 되게 도움이 많이 됐다.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앞서 언급한 대로 지혜는 누구에게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솔직하고 당당하다. 지금까지 맡은 다른 캐릭터도 비슷한 선상에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성격과 닮은 부분은.실제로도 솔직한 편인 것 같다. 솔직한 걸 굳이 티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보이게 되는 성격인 것 같다. 전 그냥 속이랑 겉이 그대로 보인다고, 똑같다고 그러셨다. (웃음) 그런 부분은 (지혜와) 똑같은데 거침없는 부분은… 사람은 (거침없으면 안 되고) 거쳐야 한다. (일동 웃음) 그런 부분은 지혜를 통해서 해소했던 것 같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의) 복주도 그렇고, (맡은 캐릭터가) 거의 솔직했던 것 같다. '레슬러' 때도 솔직한 부분이 있었다.
▶ 방금 전에 정다원 감독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 꿈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혜 캐릭터와 닮아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연기 안 해도 된다'고 했다던데.네. (웃음) '성경 씨 하고 싶은대로 해, 자유롭게 해' 이러셨다. 하필 제가 제일 고민도 걱정도 많은 시기였고 자유롭지도 않을 때였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니까.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 보니까… 저는 감정적인 부분을 갖고 감성에 가깝게 일하는 사람인데, 그게 흔들리고 이성이 (저를) 지배하다 보니까 침체기, 혼란기, 과도기가 온 거다. 다행히 감독님이 O, X가 확실하시고 방향 잘 잡아주셨고, 미란 선배가 현장에서 조언도 해 주시고 제가 의기소침 해있으면 풀어주시고 친구처럼 언니처럼 대해주셨다. '걸캅스' 덕분에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주문이 배우 입장에서 더 어렵고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완전 있었다. (웃음) 전에는 '마음대로 해, 자유롭게 해' 이러면 너무 신났을 텐데, 그땐 '마음대로 하라고요? 제 마음이 뭐죠?' 이 정도였다. (웃음) 우스갯소리처럼 했지만 그만큼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던 거다. 고민도, 어려움도 많은 사춘기 같은 시기에 그걸 빨리 헤어나오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해 준 건 모두 '걸캅스' 덕이다.
다행히 초반에는 추격씬 같이 그림 위주로 해 주셔서 몸풀기가 되고 (부정적인 기분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걸캅스'를 찍지 않았다면 되게 길게 갔을 것 같은 고민에서 빨리 헤어나오면서, 작품과 지혜라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영화에 거친 대사도 꽤 나오는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지혜는 비슷한 입 모양은 나와도 대놓고 욕을 하는 대사는 없었을 거다. 다만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웃음)
'걸캅스'는 왕년에 잘 나갔던 전직 형사 미영(라미란 분)과 정의감은 넘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해 미숙한 지혜(이성경 분)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여성 경찰 투톱물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함께 비공식 수사를 펼칠 미영과의 관계성이 중요한 영화였다. 지혜에게 미영은 어떤 존재였나. 초반-중반-후반 시점마다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제일 좋아하는 씬이기도 한데 밥상머리 씬이 있다. (웃음) 오빠(윤상현 분)랑 새언니랑 지혜 캐릭터가 제일 가까워졌던 씬인 것 같다. 그걸 찍으면서 더 친자매 같게 됐다. 그러고 나서 미영과 사건 해결해나가는데, (지혜 입장에선) 꿈의 시작이 미영이었던 거다. 동경의 대상이고, 무의식적으로 미영을 대단하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특별하게 하진(티내진) 않았지만 순간순간 그런 것들이 보였던 것 같고, 같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둘이 더 가까워진다. 익숙한 가족을 넘어서 좋은 파트너가 되는 순간도 있고. 더 끈끈해지는 과정이기도 하고, 지혜 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 액션 연기는 이번이 처음인가.싸움은… 역도는 했어도 (웃음) 싸우는 거는 처음이었다. 액션 스쿨을 계속 갔는데 육탄전으로 싸우는 건 미란 선배가 거의 다 하셨다. (감독님이) 제게는 한 방 날리는, 타격감 있는 한 방짜리 액션을 시켜서 시원함을 보여주시고 싶었나 보다. 저는 와이어 연습했다. 진짜 어려운 거는 호흡 맞추면서 싸우는 거였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를 때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빗)맞거나 합이 안 맞아서 큰일나니까 너무 무섭더라.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안전에 대한 부분이 있긴 했으나,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잘 가르쳐주셨다.
▶ 액션 연기가 체질에 맞는 것 같던가.카 체이싱 장면은 너무 재밌었다. 또 찍어보고 싶다. (웃음) 그게 카메라를 달고 하니까 사이드미러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다. 훈련된 분들이 하시고, (저는) 안전한 상태에서 마음껏 하니까 너무 멋있게 나왔다. 다음번에도 한번 잘 만들어 보고 싶다. (웃음)
또 도산대로가 너무 익숙한 도로이지 않나. 모든 스태프도 '와, 우리 영화 여기서 찍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면서 다들 뭉클해 했다. 진짜 뭉클해 하셨다. 또 코엑스 장면은 다 문 닫고 새벽에 밤 새워서 찍었다. 단역분들까지 다 같이 너무 고생하셨다.
▶ 화재 장면도 찍었다. 불 때문에 아슬아슬한 분위기였는데 당시 촬영 현장 어땠나.저는 이걸 불구뎅이 씬이라고 부르는데 (웃음) 이 씬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전 진짜 불을 무서워한다. 모닥불 피워도 멀리 가 있는다. 전문가들 대기하면서 찍어서 괜찮았다. 이틀 동안 찍었는데 상현 오빠 표정이 너무 웃겨서 되게 재밌게 찍었다. 시간이 훅 갔다.
이성경은 '걸캅스'를 향한 부정적 관심도 모두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떤 영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라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걸캅스'는 지금까지 나온 형사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디지털 성범죄를 소재로 해 화제가 됐다. 평소에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뉴스에 나오는 너무 많은 사회 문제 중 하나로만 생각했다. 모르고 지나치거나 무지하거나 무딜 수 있는 것에 대해 들여다보고 경각심을 갖게 됐다. 작년 여름에 촬영했는데 (그때도 관련) 범죄는 많았다. 기사를 보면서 실제로 많다는 걸 알았다. 우리 영화를 잘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배우들이나 감독님과 같이 나눴다.
▶ 개봉 전부터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관심이 이슈가 됐다. '걸캅스 시나리오 유출' 이런 식으로. 반대로 '걸캅스'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다.만약에 우리 영화가 (인터넷에서 도는 가상 글 내용과) 맞았다면 '어떡하지?' 했을 텐데 비껴가니까… 다르니까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 생각 못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내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웃음)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에 대해서 관심 가져주시는 것만으로 사실 너무 영광이고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영화가 인식돼 있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든 것이지 않나. 호응도 받았다. 유료 관객들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다들 웃는 표정이니까 힘이 많이 되더라. 위로도 받고. (웃음) <계속>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