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2월 9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박종민 기자)
북미가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서로를 향해 양보를 요구하면서 비핵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4일 북한의 발사체 발사로 북미 대화가 향후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당장 다음주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워킹그룹 회의를 갖기로 하는 등, 한미는 북한을 대화로 다시 이끌어 내기 위한 공조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군사행동 감행으로 보다 복잡한 국면에 들어섰다.
◈ "'물러서지 않겠다' 배수진 친 북한···미국 행동변화 요구하는 것"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을 '노 딜'로 마무리한 뒤, 미국은 '일괄타결식 빅딜' 입장을, 북한은 '단계적, 동시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서로를 향한 날선 양보 요구가 이어지며 북미 대화는 멈춰섰다.
4일 북한의 도발은 미국에 변화를 요구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북러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을 통해 시사됐던 북미 대화의 '프레임 변화' 시도를 공식화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북한은 앞서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완화 혹은 해제에 초점을 맞춰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왔지만 미국은 현재까지 이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계기를 통해 사실상 행동조치를 보여주며 '체제 안전보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특히 대북제재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으로서는 그렇다면 6·12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으로 돌아가, 비핵화 대 안전보장의 문제를 중요 카드로 제시하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날 발사체 발사에는 향후 북미 대화 국면이 완전히 틀어지는 것까지는 가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가운데 '승기'를 북쪽으로 잡아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북한은 앞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중단한다'고 미국에 언급한 바 있다. 이날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함으로써 약속은 어기지 않으면서도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외신들도 이날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해 '핵시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중단한다'는 약속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 이번주 비건 美대북특별대표 방한···주요 국면에 '도발 대응' 의제 추가될 듯
미국 국무부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오는 9~10일쯤 방한할 예정이라고 3일(현지시간) 밝혔다.
그는 한국을 찾아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워킹그룹 회의는 지난 3월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바 있다.
이 방한 일정은 북한의 급작스러운 발사체 발사 감행 이전에 조율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돌발 행동 이후 비건 대표의 방한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제재 이행과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의코자 했던 상황이었는데, '도발 대응'이 의제에 추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외교당국은 북한의 도발 직후 각급에서 전화통화를 갖고 상황을 논의한 바 있다. 비건 대표의 방한에서 보다 자세한 상황 공유와 대책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비건 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엿보일 미국 정부의 입장에 관심이 쏠린다.
신 센터장은 "미국은 지난 하노이에서의 노딜 이후 국내적으로 강경 태도에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발사체 발사 이후 당분간 압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위기관리는 해야하니, 북한을 달래기 위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비중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이번 행동에 대해 미국이 어떤 구체적 반응을 내놓을지가 1차적 관건"이라면서 "미국이 이를 북미 간 1차 정상회담 성명에 위배된다고 판단한다면 비건 대표가 오더라도 대북 압박·제재 공조에 더욱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美, 당분간은 '강경' 입장 바꾸지 않을 듯···전문가들 "美, '당근'도 필요" 지적키도
북미 간 신경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북한은 발사체 발사와 같은 '계산된 도발'을 저강도로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어떤 전략에 나설지를 고민해 온 것으로 보인다. 북러정상회담과 전술무기 시찰 등 최근의 행보에 이어 발사체 발사로 수위를 높이며 미국의 반응을 살폈다.
대화 국면을 이어가려고 했던 미국 역시 전략에 고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미국 의회 등 미 일각에서 강경대응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애매한' 도발을 감행해, 미국이 이에 대해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북미 간 관계의 특성을 감안하면 유연하거나 온화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국내정치적인 요인을 고려할 때 북한의 도발에 굽히는 모습을 보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행동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원칙적으로 군사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수준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중재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혔던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게 됐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북한에 제시하기도 했지만, 북미 간 긴장감이 이어지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홍민 실장은 "미국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진데 대해 놀라고 있을 것이다. 미국 내부에서도 '제재가 답'에 너무 강하게 경도된 상황이다. 제재를 갖고 목줄만 쥐면 항복할 것이란 환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 역시 "우리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창조적 안을 내려하지만 북미 모두 기조에 변화가 없었다. 미국이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북제재 완화' 정도로만 입장을 완화해도 북미 대화에 공간이 생기는데 지금까지 미국의 태도를 바탕으로는 그것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