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백지원 (사진=토브 컴퍼니 제공)
배우 백지원은 지난 1996년 연극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으로 데뷔한 이후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 무대와 스크린, 안방극장을 오가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선보였다.
SBS 드마라 '열혈사제' 안에서는 조용한 성격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김인경 수녀부터 필살기인 10의 패 숨기기로 '십미호'란 별칭을 얻은 전설의 3대 타짜 '평택 십미호'를 오가며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구담 어벤져스'가 '구담구 카르텔'을 단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아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SBS '열혈사제'는 백지원이란 배우를 이전보다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20여 년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실력을 쌓아 온 배우 백지원은 어떤 배우일까.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지원에게 '배우 백지원', 그리고 '백지원'을 물었다.
다음은 배우 백지원과의 일문일답.
JTBC '밀회'에서 왕비서 역을 맡아 안방극장에 진출한 백지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 지난 2014년 드라마 '밀회'를 통해 안방극장 데뷔 이후 '열혈사제'까지 9개 정도 작품을 했다. 이제는 TV 문법에 익숙해졌겠다.
아니요. 매체 연기에 있어서는 아직도 신인이자. 연기와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은 무대 연기나 매체 연기나 똑같이 접근하기에 다르지는 않다. 그런데 무대 연기도 처음에 시작해서 10년쯤 지나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지금도 무대에 서면 설수록 무섭고 떨려요.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20년 넘게 한 무대도 그런데 매체(TV 드라마)는 시작한 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았고, 아직 멀었다. 익숙해지려면 아직 멀었고, 또 익숙해지는 게 과연 배우로서 좋은가. 관성에 젖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부분을 늘 긴장하면서 살고 있다.
▶ 익숙함을 경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뭐랄까, 전문성이라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좀 달라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구별이 되지 않는다면, 배우로서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게 아닐까 생각도 한다. 지금 현재는 그런데 또 조금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최대한 경계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카메라에 익숙해진다거나 현장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는 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과 연기적인 측면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고민거리다. 앞으로 내가 매체 연기를 하는 동안은 여전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인 거 같다.
SBS '애인 있어요' 최진리 역의 백지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 연극과는 다른 TV 드라마의 연기가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즉흥성? 무대 연기도 즉흥성이 있는데 무대 연기는 대본이 나와 있고 목표지점이 정확하게 나와 있기에 그런 것들이 공유된 상태로 연습해서 한 방향으로 간다. 그래서 즉흥적인 부분이 나와도 큰 틀 안에서 하게 되는 게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대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배우들도 같이 기대하면서 보게 되고 기다리는 게 있다. 그때그때 대본이 나올 때마다 서사가 쌓여간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보인다. 조금씩 나의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나온다는 게 무대 연기랑 다른 점 같다. '열혈사제'도 현장에서 배우들이 재기발랄한 즉흥성을 선보인다. 그게 매시간 엔도르핀이 된다. 이 밸런스에서 저 밸런스로 가기 위한 불균형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하면서 웃음을 참아야 하고, 웃음을 참기 위해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 게 TV 드라마가 갖는 매력인 것 같다.
▶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 혹은 캐릭터가 있을까.감정의 동요가 없는 인물, 감정의 기복이 없는 인물, 또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김 수녀님 같은 경우는 한편으로는 여리고 또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을 가질 만한 서사가 있는 인물이다. 기회가 된다면 반대의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많이 흔들리지 않고,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 있으면 만나보고 싶다. 그게 어떤 건지 궁금하다. 가끔 상상만 하는 건데,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인지, 뭔가 느끼는 건 있지만 필터로 걸러내는 인물인지 궁금하다. 그런 인물 유형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이해를 하고 접근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막연한데, 아직 해보지 않는 인물이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 '백지원'이라는 배우가 배우로서 가져가고자 하는 지향점은 무엇인가?
인물로만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인물에 젖어서, 오로지 인물로만 살아야 한다는 게 내가 연기의 놓치고 싶지 않는 부분이다. 다들 마찬가지지만 배우로서의 욕심이 보이는 것에 대한 계산 없이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건 거 같다. 다른 건 잘 못하겠고 모르겠고. 그냥 오롯이 그 인물 하나는 책임질 수 있는 배우, 그런 배우가 되면 좋겠다. 분량과 비중과 보이는 비주얼과 전혀 관계없이 말이다. 그저 한 인물을 사랑하고 책임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SBS '열혈사제' 속 백지원의 모습 (사진=방송화면 캡처)
▶ 다른 배우와는 다른 나만의 '무엇'이 있나?내가 생각하기에는 별로 없다.(웃음) 음…. 말의 뉘앙스에 예민한 배우다? 대사가 가진 말의 뉘앙스를 살리고자 하는 배우다? 사실 그걸 잘하고 싶다. 한국말이 정말 어려운 게 물론 외국어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어는 같은 말임에도 상황이나 말의 뉘앙스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들리는 언어다. 나는 한국어를 잘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늘 쓰고 있는 말이기에 쉽게 생각하지만, 연기자로서, 배우로서 대사로 발화하는 순간 어떤 의미든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말 한마디의 무게가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의 말에, 하나하나의 호흡에 어떤 의미들을 아주 섬세하게 담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냥 한마디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걸 노력하는 배우, 조금은 그런 것들이 차별화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물론 무리한 욕심이지만.(웃음)
▶ 배우가 아닌 개인 '백지원'으로서의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나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한다면, 진짜 심오한 질문인 거 같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베풀면서 살고 싶고, 소박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 이런 말 하면 그럼 왜 배우가 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를 도닥거리면서, 유기묘를 후원하고 싶은 것도 개인적인 소망이다.
배우 백지원 (사진=토브 컴퍼니 제공)
▶ 소박하게, 행복하게 산다는 게 쉬워 보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거창하게 선행을 베푼다거나 봉사한다는 말은 쉽게 못 하겠다. 대신 소박하고 조용하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챙기면서 살고 싶다. 제가 그렇게 주는 기운을 받아서 그 사람들이 또 옆에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그런 작은 한 알의 '씨앗'으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씨앗이 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웃음) 그래도 조금 다른 씨앗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씨앗인줄 알았는데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다른 것이 나와 있을 수 있고. 나의 '정체성'이란 것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아직은 더 발전할 수 있고, 아직은 늦지 않았다, 좋은 방향으로 살 수 있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웃음)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