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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 총장. 윤창원기자
해외출장중인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1일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사사법제도 논의를 지켜보면서 검찰총장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 조직의 미래와 직결된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가느냐 마느냐가 한창이었던 지난달 28일 출장길에 올라 마음이 무거웠을 수 있다.
또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지난달 29일 밤 이후 검찰 내부에서도 지휘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자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한다는 압박감이 생겼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원론적인 수준의 반대 입장으로 보였다. 문 총장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입장 표명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청와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의지를 재확인하자 "수사의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수사의 적법성이 아주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국민이 문명국가의 시민으로 온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국회 사개특위 업무보고 때도 "기능을 단순하게 이관하는 수사권 조정은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야 4당이 합의해 패스트트랙에 지정한 법안임에도 문 총장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자 여느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 文 총장, 표면적인 '패스트트랙' 비판 이유는?먼저 이번 패스트트랙에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방안에 명시된 '사법경찰·행정경찰 분리', '실효적 자치경찰제 동시 시행'등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번 패스트트랙에 오른 것만을 놓고 보면 권력기관의 '권한 분산·견제'라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검찰권 분산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과연 권한을 가져가는 경찰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것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검찰총장으로서 '경찰의 권력기관화'를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검찰이 진짜 참을 수 없는 바로 그 한가지는?'경찰의 비대화'도 염려되지만 어쩌면 속내는 검찰의 '권한 내려놓기'가 더 뼈아플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될 경우, 기존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곧바로 현실이 되는 까닭이다.
이 법안에는 지난해 6월 정부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골자인 '경찰의 1차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 사건 송치 전 검사의 수사지휘 폐지'가 담겨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등 정부 합의안보다 경찰의 권한을 더 높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검경의 권한은 이른바 '제로섬'이어서 한쪽에 권한을 줄 경우 다른 한쪽의 힘이 그만큼 빠지는 양상이 벌어진다.
여기다 특히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이하 피신)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검찰 내부는 거의 패닉 상태다.
◇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이란?현행 형사소송법 312조에 규정된 피신의 증거능력을 보면, 검사 작성의 경우 성립의 진정이 인정될 경우, 경찰 작성의 경우에는 피의자가 내용까지 인정할 경우 증거능력이 생긴다.
다시 말해 검사 피신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됐다는 게 인정되면 증거능력이 생기는데 반해 경찰 피신의 경우 거기에다 내용까지 피의자가 인정해야 증거능력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진술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하더라도, 검사의 가혹 행위 등으로 인한 진술이 아니라는 점이 영상녹화물이나 다른 방법으로 증명되면 법원은 조서의 증거능력을 대체로 인정했다. 반면 경찰에서 작성한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검사 작성 피신 증거능력을 경찰작성 피신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현재의 법원이 인적, 물적 요소를 충분히 구비해 이런 변화를 감당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공판중심주의'를 제도화할 수 있을지 검토해봐야겠지만, 검사로서는 여간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은 '패스트트랙'에 반기 들까?검찰이 때아닌 패스트트랙으로 시끌해졌지만, 검사들의 또 하나의 큰 관심은 곧 임기가 끝나는 검찰총장의 후임과 그 이후 단행될 검찰 고위간부 인사일 것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임기는 오는 7월 24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6월초에 검찰총장후보추천위가 구성되고 6월 말에는 청와대가 새 총장 후보자를 내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패스트트랙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를 가려낼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의 선임 및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수사권 조정에 대한 입장이 주요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2022년 5월 9일임을 감안할 때, 차기 검찰총장 역시 현 정권 아래에서 임기를 다 채울 공산이 크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패스트트랙에 반대 입장을 가진 총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총장을 시켜준다면 '각서'를 100장이라도 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총장이 되면 조직이 온전히 통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 잊지 말아야할 사실 한가지만 더 쓴다면?작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이 예뻐서 경찰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인 검찰개혁의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개혁 대상이 "개혁의 내용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검찰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와 행정부의 불법행위와 범죄행위를 묵인, 방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검찰에게 난데없이 '떡'을 뺏자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무소불위'로 평가받는 검찰의 권한은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대표된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재판권과 함께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이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있다보니 은연중 재판권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됐다.
누가봐도 수사, 기소, 재판의 각 권한을 각기 다른 기관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무일 총장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며 꺼낸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봐서도 그렇다.
수사의 문제점은 기소단계에서, 수사와 기소의 문제점은 재판과정에서 비판적으로 걸러내야 비로소 수사, 기소, 재판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끝으로 지금의 형국은 경찰에게도 '양날의 칼'일 수 있다. 자칫 허투루 권력을 사용했다간 칼 끝이 자신을 겨누는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 말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준비도 없이 자신의 깜냥보다 버거운 권력을 쥐었을 때,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열에 아홉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