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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전 의원 뿐이랴, 몸과 마음 파괴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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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윤창원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는 군사독재정권의 야만적인 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은데 이어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고문후유증은 파킨슨병으로 이어졌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극도로 야윈 김 전 의원의 모습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고문의 상흔이었다.

고문의 피해자는 김 전 의원만이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은 자신을 반대하는 인사들을 불법구금하고 고문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는 고문으로 멀쩡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사장을 지낸 송건호 전 사장은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송 전 사장은 이 때 얻은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파킨슨병이 발병, 2001년 타계했다.

송 전 사장의 장남 준용씨는 "기술적으로 행해진 알몸에 대한 구타는 온몸에 시퍼런 자국을 남겼고 속으로 골병을 들게 했다. 그 때 당하신 구타로 허리와 팔 등에 심한 통증을 느껴 출감 후 원자력병원에서 종합진찰을 받았으나 고문기술자들에 의해 받은 고문이라 그런지 당시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은 1993년 파킨슨증후군이라는 현대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불치의 병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시기까지 심한 불면증과 가끔씩 찾아오는 허리와 다리, 팔 등에 엄청난 고통으로 괴로워하셨다"고 증언했다.

고 김근태 전 의원(사진=자료사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존재를 폭로했던 김근태 전 의원도 2007년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뒤 투병하다 2011년 별세했다. 김 전 의원은 물고문·전기고문으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고통 때문에 누워서 치과 치료를 받지 못했고, 몸이 느끼는 한기 때문에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피했다고 한다.

동아투위 총무를 지낸 홍종민씨는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때 23일 동안 물고문과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다. 석방 뒤 심장병이 발병했고 심장박동기 이식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88년 숨졌다.

고문은 정신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1985년 9월 민청련 사건으로 인해 김근태 전 의원과 함께 연행됐던 이을호씨는 극심한 폭력으로 인해 자신을 올빼미라고 생각하는 환각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김대중의 하수인이 치안본부에 있는데 그가 나를 징역 살린다"고 말하는 등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씨는 이후 정신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여전히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82년 학림사건의 고문 피해자인 유해우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에도 극도의 공포,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그는 "방에 혼자 있으면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아 수시로 집을 나갔고, 몇 달이고 노숙자 생활과 구걸을 하는 일이 잦았다. 아내와 딸에게 이끌려 돌아오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수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극도의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렸다"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기록했다.

1983년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됐던 함주명씨는 "서울구치소로 간 뒤 1년여 동안은 고문후유증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잠깐 잠들었다가도 이근안 고문 장면이 떠오르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 두세 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함씨는 출소 뒤에는 오랫동안 옥바라지를 한 아내를 의심해 손찌검을 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함씨의 아들은 "차라리 아버지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가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고 할 정도였다. 고문과 장기간의 구금에 의해 황폐해진 정신이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함씨는 16년을 복역하고 199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2005년 7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는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난 지금도 함씨는 그 때의 경험이 반복되는 악몽과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고문 받던 당시의 꿈을 꾸면서 식은 땀을 흘리고 다리에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곤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사진=SBS 제공)

 

1982년 김제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인 최낙교씨는 약 35일 동안 불법구금돼 고문을 당하고 기소된 뒤 서울구치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와 함께 구속됐던 동생 낙전씨는 1991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으나 약 넉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사건의 고문 피해자이자 최씨 형제의 삼촌인 최연석씨는 "(최낙교씨가) 자살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당연히 맞아 죽었다고 생각했어요"고 말했다. 최씨는 또 "(낙전씨가) 붙잡혀가서 심한 고문을 당했으니 또 잡혀갈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같이 살자고 계속 그랬는데 얼마 안 지나고 죽었어"라고 증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대는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흔은 깊다"며 "현재와 같은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사라졌던가"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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