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포스트 하노이' 정책 결단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1956년 '자주·자립' 행보와 일치시켜 눈길을 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공화국의 근본이익과 배치되는 강도 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적대세력들의 책동으로 조국과 인민 앞에 시련과 난관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1956년의 그 나날을 돌이켜보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만 리 장정에 오르시었던 우리 수령님(김일성)께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국에 돌아오시었던 그 준엄했던 1956년"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 '빈손' 귀환에 따른 현 국면을, 김일성 주석이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방문 일정을 미처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귀국했던 63년 전과 동일시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내민 '일괄타결·빅딜' 요구를 거부하고 왕복 6일간에 걸친 '2만리 열차 행군'으로 귀국했다.
앞서 1956년 김일성 주석은 동구권 순방 중 '연안파'와 '소련파'가 '중공업 우선 노선'을 수정하라는 소련 지도부에 순응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충격적 소식을 접하자 순방 일정을 중단한 채 급거 귀국, 8월 전원회의를 열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스탈린 사망(1953년)으로 소련공산당 총비서 자리에 오른 흐루쇼프는 당시 스탈린 격하운동에 나서면서 김 주석에게도 '중공업 우선 노선' 대신 경공업 발전을 요구했는데, 이들 사안은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 주석의 외유 중에 반기를 도모하는 빌미가 됐다.
북한이 김일성 집권 역사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지칭하며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꼽는 이때를, 포스트 하노이 정세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현 국면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 정세를 김일성 지배체제의 운명을 결정했던 1956년과 일치시켰다는 것은 하노이 회담 결렬이 북한 지도부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이후 노동당 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잇달아 열고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 노선'을 선언한 것도 63년 전 김 주석의 정책적 행보와 맥을 같이 한다.
김일성 주석은 같은 해 12월 당 전원회의를 열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군중노선'(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노선)을 선언한 후 평양 인근의 강선제강소(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찾아 노동자들에게 정책적 지지와 강재 생산량 증가를 호소했다.
이를 계기로 그 유명한 '천리마운동'이 탄생했으며, 북한은 1956∼61년의 5개년계획을 2년 반이나 앞당겨 수행하고 공업 총생산액 3.5배, 국민소득 2.1배 증가 등 고도성장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40여일 만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 시정연설(4.12)을 통해 "적대세력들의 제재 해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선언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이후 김 위원장은 양어장 시찰 같은 민생 행보와 함께 비행훈련과 전술무기 시험 참관 등 저강도 군사행보를 이어가면서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자력에 의한 경제발전 의지를 과시 중이다.
북한 매체들도 천리마운동을 본뜬 김정은 정권의 경제슬로건인 '만리마 속도창조운동'을 연일 선동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지도자로는 29년 만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도,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김일성 주석을 따라 하며 내부 결집을 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