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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웨이드·노비츠키, NBA 역사의 한 페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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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웨인 웨이드 (사진=연합뉴스 제공)

 


드웨인 웨이드는 2003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64강 토너먼트 8강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웨이드가 이끄는 마켓 대학은 중서부지구 결승(8강전)에서 톱시드 팀이자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켄터키 대학을 만났다. 마켓대는 켄터키대를 83대69로 완파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운동능력, 화려한 스텝, 득점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두루 갖춘 웨이드는 29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웨이드는 1977년 이후 처음으로 마켓대를 4강으로 이끌며 미국프로농구(NBA) 도전을 앞두고 주가를 끌어올렸다.

마이애미 히트는 200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다.

2002-2003시즌을 끝으로 감독에서 물러나 구단 운영에 전념하기로 결정한 팻 라일리 사장은 5순위 지명권으로 포지션과 관계없이 남은 선수 중 최고의 선수롤 뽑겠다고 했다. 또 이 지명권은 마이애미의 팀 재건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웨이드는 르브론 제임스, 다르코 밀리시치,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시에 이어 전체 5순위로 마이애미의 지명을 받았다.

웨이드는 황금 드래프트라 평가받는 2003년 입단 동기들보다 먼저 화려한 경력을 쌓아나갔다. 2004년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21득점을 올렸고 2004-2005시즌에 평균 24.1득점, 6.8어시스트를 올리며 팀 공격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2004-2005시즌은 당대 최고의 센터였던 샤킬 오닐이 마이애미에 합류한 시즌이다. 그런데 오닐은 마이애미의 간판은 웨이드라고 인정했다. 서포터를 자처했다.

웨이드는 훗날 오닐의 배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밝혔는데 2010년 제임스와 보시가 마이애미에 합류했을 때 웨이드는 팀 공격의 중심 역할을 두고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양보했다.

오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웨이드는 2006년 마이애미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3년 주요 입단 동기 중 가장 먼저 우승 감격을 누렸고 파이널 MVP 트로피도 차지했다.

마이애미는 NBA 파이널에서 먼저 2패를 당한 뒤 내리 4연승을 질주했다. 웨이드는 3차전부터 6차전까지 4경기에서 평균 39.3득점, 8.3리바운드, 3.5어시스트, 2.5스틸, 1.0블록슛을 기록하며 코트를 압도했다.

당시 마이애미의 상대팀은 더크 노비츠키를 앞세운 댈러스 매버릭스였다.

이후 웨이드는 전성기를 누리며 리그 최정상급 슈팅가드로 활약했다. 2009-2010시즌에는 정규리그 평균 30.2득점을 올려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0년부터는 제임스, 보시와 의기투합해 2회 우승을 달성했다.

웨이드는 2015-2016시즌을 마치고 계약이 불발돼 마이애미를 떠나야 했지만 시카고 불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거쳐 2017년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2018-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밝혔던 웨이드에게는 11일(한국시간) 미국 브루클린 바클레이센터에서 열린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가 마지막 무대가 됐다.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웨이드는 NBA 마지막 경기에서 25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웨이드는 은퇴 경기에서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역대 5번째 선수가 됐다. 웨이드 개인에게는 통산 다섯 번째 트리플더블.

16년 전 자신의 이름을 농구 팬에게 각인시켰던 트리플더블만큼 짜릿하지는 않았지만 은퇴 경기에서의 트리플더블에는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웨이드의 대기록을 완성한 10번째 어시스트를 득점으로 완성한 선수는 오랜 기간 히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우도니스 하슬렘이었다.

마이애미는 브루클린에 94대113으로 크게 졌지만 팬들에게 경기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브루클린 팬들은 웨이드가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올릴 때마다 마치 홈 팬인 것처럼 즐거워 했다. 코트사이드에는 웨이드의 '절친' 제임스와 앤서니, 크리스 폴이 자리해 은퇴 경기의 의미를 더했다.

같은 날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도 의미있는 경기가 열렸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럽 출신 선수로 기억될 더크 노비츠키가 은퇴전을 치렀다.

노비츠키는 20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댈러스 매버릭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94대105로 졌지만 바클레이센터에서 열린 경기와 마찬가지로 팬들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샌안토니오 팬들은 오랜 기간 '텍사스 라이벌'로 활약했던 노비츠키의 마지막 경기를 아낌없이 응원했다.

노비츠키는 샌안토니오 구단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헌정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13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가드 못지 않은 슈팅 능력을 자랑했던 노비츠키는 유럽 출신 선수 중 가장 많은 3만1560점을 기록해 NBA 통산 최다득점 부문 6위에 올랐다.

미국 언론 '블리처리포트'에 따르면 노비츠키가 데뷔한 1998년 이전까지 NBA에서 213cm 이상의 장신선수가 넣은 총 3점슛 개수는 507개에 불과했다.

노비츠키 혼자 통산 1982개의 3점슛을 기록했다. 그리고 노비츠키가 NBA에 데뷔한 이래 신장 213cm 이상의 선수가 성공한 3점슛은 총 7253개로 크게 늘었다. 주요 미국 매체들은 "노비츠키는 농구 경기를 바꿔놓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노비츠키는 1998년부터 올해까지 댈러스에서만 뛴 프렌차이즈 스타다. 댈러스는 2011년 NBA 파이널에서 6경기 평균 26.0득점, 9.7리바운드로 활약한 노비츠키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파이널 상대는 웨이드와 제임스, 보시가 의기투합한 마이애미 히트였다. 노비츠키와 웨이드는 NBA 파이널 무대에서 두 차례 만났고 서로 한번씩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둘은 같은 날 코트를 떠났다. NBA의 역사는 이렇게 또 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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