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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다룬 '생일'에 아주 나쁜 사람들은 안 나오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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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생일' 이종언 감독 ②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생일' 이종언 감독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예상치 못한 참사의 당사자였는데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도 컸지만,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요구하는 무리의 무례함과 비난과도 맞서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무심한 말은 비수가 됐고, 상처를 더 헤집었다. 국가적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참사의 책임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당시 정부와 여당이 막말에 앞장선 게 대표적이다.

정치세력만 그런 건 아니었다. 세월호 특조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며 단식하던 유족을 드러내놓고 조롱하는 '폭식 투쟁'을 하고, 배·보상금에 관해 확인하지 않은 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이 정치세력 바깥에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에는 이 같은 행태나, 흔히 말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현실보다 '온건한' 버전일 수 있다. 궁금했다, 이런 연출 배경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종언 감독에게 물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이 영화에는 소위 '아주 나쁜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특별히 이렇게 연출한 이유가 있나.

가혹한 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 당시 마음이 어때서든, 본인의 어떤 경험 때문이든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 같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런 행위를 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그건 다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까지 우리가 볼 시간은 없다. (영화 안에서) 설명될 시간이 없기도 하고. 저는 우리 영화가 많은 관객들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관객들과 보려면 불편함을 덜 느껴야 한다고 봤다. 방해받지 않고, 두 시간 안에 (영화를) 고스란히 잘 느끼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

▶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잃은 엄마 순남 역을 맡은 전도연은 연기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순남의 것이 아닐까 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축이다. 있는 그대로 가만히 떠서 옮기고 싶었단 말도 사실 그 지점에 있는 말이다. 저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시선이 혹시라도 개입돼서 오해를 불러오거나 다른 상처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게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이 순간까지 어쩌면 관통하고 있는 건데, 항상 방법은 없었다. 잠시 멈추고 '정말 그랬나?' 하고 생각해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 '생일'에 관해서는 최종 결정권자인 만큼 중압감이 더했을 것 같다.

그랬을 수 있다. 근데 그게 제 일이고, 저는 제 일을 성실히 해야 한다. (웃음) 비판이든 뭐든 제가 받아야 할 몫이다.

위쪽부터 정일 역의 설경구, 순남 역의 전도연, 예솔 역의 김보민 (사진=NEW 제공)

 

▶ 연기로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설경구과 전도연을 캐스팅했다. 과정이 궁금하다.

뭐 두 배우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함께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솔직히 행운이다. (웃음) 사실 전도연 배우는 이 역할이 아니라도 어떤 걸 해도 잘하실 분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어떤 평범한 엄마 아빠, 그러나 큰 상처를 경험하고 있는 엄마 아빠 역에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자'(2009)라는 영화를 설경구 배우와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일상성이 있는 배우다. 센 역할도 많이 하시지만. 선배님이 아이돌이시지 않나. (웃음) 이 영화를 촬영하고 모니터하면서 중년 팬층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 수호 역의 윤찬영, 예솔 역의 김보민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 캐스팅 과정도 듣고 싶다.

처음 봤을 때 찬영 군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거로 저는 기억한다. 정말 전 수호가 그러길 바랐다. 학교에서 하교하면 쭉 나오는 아이들 속에 있는 한 친구, 옆집에 사는 오빠, 동생, 후배 같은 그런 친근감이 있는 친구. 찬영이는 되게 그랬다. 여동생에게 되게 다정한 오빠일 것 같고, 엄마를 의젓하게 지켜주는 모습일 것 같았다. 그런 이미지였다. 연기야 이미 훌륭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찬영이가 주는 이미지와 느낌에서 제가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 보민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솔이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공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 아이 자체의 천진함이 있었다. 감정이 진짜 풍부하다. '진짜의 감정'을 대화하면서 많이 느꼈다.

두 분(설경구-전도연) 빼고 전부 다 오디션을 봤다. 유가족 역할하신 분들도 오디션을 안 본 분은 없던 것 같다. 아, 김수진 배우는 미팅 후 대화를 했다.

그 역할로 몇 분을 생각했는데 김수진 배우가 가진 개성이 우찬 엄마로서 의외의 매력을 줄 것 같았다. 순남을 안아주는 옆집 엄마라고 하면 대부분 푸근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 같은데, 김수진 배우는 (다른 느낌으로) 굉장히 존재감이 보인달까. 자기만의 개성과 자기만의 매력으로. 어느 전형적인 한 캐릭터가 아니라 정말 옆집에 사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가진 가장 큰 오해와 편견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한테만 꼭 그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희생자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나, 그건 304개의 사건이었고 304개의 우주를 잃은 것이라고. 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그들을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명 한 명을 보면 평범한 우리의 삶과 그렇게 다르지 않더라. 내 형제자매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되면, 작은 편견이든 큰 편견이든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일(설경구 분)이란 한 사람, 순남이란 한 사람, 예솔이라는 친구를 통해 그렇게 보여드린 것 같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 (사진=NEW 제공)

 

▶ 영화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가.

저는 영화를 전공했다. 2000년대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단편도 만들어보고 하다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고 남들처럼 똑같은 젊은 날을 보내다가 (웃음) 이창동 감독님 연출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후에 연락이 와서 인연을 맺었다. 감독님 연출부만 꽤 오래 했다. 작품은 드문드문 나오는 것 같지만 감독님은 준비 기간이 워낙 길어서… 시간이 지나서 제 걸 준비하는 때가 됐고, 이렇게 하고 있다. (웃음)

▶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내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제 삶에서 영화가 저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저는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몇 개의 큰 것이 있다. 제가 굉장히 많은 시간을 극장에서 보냈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때는 영화를 할 거라고 전혀 생각 안 했다. 스무 살 넘어서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때, 눈앞에 인물들이 펼쳐지고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나. 뭐든 하지 않나, 인물들이. 그런 것들에서 제가 어떤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영화가 저에게 위로였다. 제가 누군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수 있고, 그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데 영화는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영화만 그러냐,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시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예술적인 모든 것은 다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제겐 그게 영화였던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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