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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컨트롤타워 발목 잡은 국회, 靑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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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4일 밤 11시에 청와대 도착해 상황파악
대통령 첫 보고시간도 지연, 文대통령 11시15분 첫 지시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도 0시20분에 개회
靑 내부 곳곳서 한국당 향한 불편한 심기 감지
재난 컨트롤 총책임자 부재 '골든타임' 놓칠뻔한 심각한 상황

(사진=청와대 제공)

 

강원도 일대에 발생한 사상 최악의 산불에도 불구하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4일 오후 위기관리센터로 곧장 복귀하지 못한 것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운영위에 참석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5일 "홍영표 운영위원장이 저녁 회의 개시 이후 적어도 세 차례 이상 정의용 실장의 이석(離席) 요구를 했다"며 "하지만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발로 계속 붙잡혀있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된 지 한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야당 의원들이 '한미동맹 균열' 등 오전 질의 때 나왔던 질문을 반복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고성에서 발화한 산불이 강한 '양간지풍'을 타고 속초 시내 쪽으로 향하던 전날 밤 9시30분 전후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CBS노컷뉴스가 4일 국회 운영위 속기록 등을 확인한 결과, 운영위원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9시25분 전후로 회의실에 착석했다.

9시32분 홍영표 위원장이 강원도에서 확산되는 산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 실장에게 "지금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는데 고성 산불 문제를 지금 얼마나 파악하고 있나"라고 물었다.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청와대 소관 업무보고에 (좌측부터)김수현 정책실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안보실장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이에 정 실장은 "오늘 저녁 7시 30분쯤 변압기에서 발화가 돼서 고성군에서 (산불이) 시작됐다. 바람이 동향으로 불어서 속초 시내까지 번지고 있다"며 "민간인 대피령을 내리고, 소방차 50대 정도를 동원했다. 헬기는 야간이기 때문에 작동을 못하고 우선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을 위기관리센터로 다시 보내 상황을 관리하도록 했다"고 답했다.

이에 홍 위원장은 운영위원들을 향해 "지금 속초 시내에도 주민들 대피령이 내린 것 같다"며 "굉장히 상황이 심각한데 위원님들이 추가적 질의가 없으신 게 확인되면 바로 이석을 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요청했다.

10여분 뒤인 오후 9시44분쯤 소방청은 전국적 수준의 화재일 때 내리는 '대응 3단계'를 발령했고, 소방청 중앙통제단이 강원도로 긴급 파견돼 지휘에 나서는 한편, 서울과 충북, 경기 등 다른 시도 소방본부에서도 소방차와 진화 인력이 속속 파견됐다.

불길 방향이 속초 시내쪽을 향하고 바람까지 거세지는 데다, 야간 헬기 투입 등 진화의 어려움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 총책임자인 정 실장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로 복귀하지 못하고 여전히 운영위에 발목이 잡혔다.

이 시점에 한국당 정양석 의원은 "정 실장이 미국의 신뢰를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 (정 실장을) 안 만나준다고 한다, 그래서 역할이 없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공세를 가했다.

정 실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하자 정 의원은 "말장난하지 말라"고 소리쳤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옥신각신 말다툼까지 벌어졌다.

같은 당 강효상 의원도 "하노이 회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 (안보실장에게) 물러날 생각이 없느냐고 우리 원내수석이 질의했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거들었고 홍 위원장은 "질의에 대해서 말할 기회는 줘야 할 거 아니냐"며 여야간 공방은 확전됐다.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까지 번진 5일 소방대원들이 강원 속초시 노학동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여야 의원들간 고성이 오갈 때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속초 인근을 넘어 시내쪽으로 거세게 옮겨붙고 있었다.

9시55분쯤 홍 위원장은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지금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다"며 "그런데 (정 실장은) 위기대응의 총책임자다. 위기대응 책임자를 이석시킬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잡아놓는 게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재차 정 실장을 위기관리센터로 정위치시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저희도 정의용 안보실장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 그럼 (질의) 순서를 조정하셨으면 된다. 여당 의원들 하지 말고 먼저 야당 의원들 하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갔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5분 뒤인 10시에는 산림청이 산불 국가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조정했고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피령도 더욱 확대됐다.

홍 위원장은 오후 10시20분에도 다시 한 번 정 실자의 국회 이석을 요청했다.

홍 위원장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국가안보실장님에게 아직도 질의할 의원님 계시냐? 먼저 질의를 하시고 좀 가시게 하자. 고성 산불에 대응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재차 요구했다.

이에 한국당 송석준 의원은 외교부 차관급 행사에 구겨진 태극기가 설치된 사실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기강이 풀렸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었던 급박한 시기에 한미동맹 균열 의혹과 외교부 의전 실수 등이 도마에 오른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오후 10시30분쯤 홍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위원님들 (컴퓨터) 모니터를 한 번 켜시고 속보를 좀 봐달라. 지금 화재 3단계까지 발령이 됐다"며 "이런 위기 상황에는 책임자가 이석을 하는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함께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거듭 요청했다.

결국 정 실장은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되지 한 시간 가까이 지난 10시 38분쯤 국회 운영위에서 몸을 뺄 수 있었고 11시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한 뒤 대통령 첫 보고를 마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11시15분에 관계부처에 가용 인력을 모두 동원한 총력대응 체제 유지를 지시했고, 5일 새벽 0시20분쯤 위기관리센터를 직접 방문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화재 발생 직후부터 김유근 안보실 1차장 중심으로 가동돼 소방인력 투입 규모 등을 결정하고 다행히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정작 재난 최고 책임자인 정 실장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하마터면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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