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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1948년 건국 논란, 이승만도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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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27년의 기록] 건국절 논란 팩트체크
이승만 "기미독립운동으로 민국 정부 수립" 임정 정통성 확인
'1948년 건국론'은 헌법 부정..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모순 발생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연호 포기성명에서 "기미년 독립을 선언한 것이 미국이 1777년에 독립을 선언한 것보다도 영광스러운 역사"라며 대한민국연호가 아닌 단군기원 연호로 확정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동아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해이다. 찬란한 역사와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 행사 또한 임시정부 수립 날짜인 4월 11일에 맞춰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도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과정'의 정부이고 국가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를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임시정부 27년의 기록'을 기획 취재하던 중 이승만 당시 대통령도 대한민국 정부도 임시정부 위에 수립된 것임을 천명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국회에서 대한민국 연호를 단기(단군기원)로 확정한 다음날인 1948년 9월 26일에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다.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기원을 사용한 것은 민국이라는 명칭에 표시되는 민주정치제도를 우리는 이제와서 남의 조력으로 수립한 것이 아닌 벌써 삼십년 전에 기미독립운동으로 민국정부를 수립하여 세계에 선포했다는 위대한 민주주의를 자유로 수립한 정신을 숭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직접 '기미독립운동으로 민국정부를 수립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 취임사 푯말에는 '건국'이 아닌 '수립'이라고 적혀있다. 대한민국 정부 문서에서도 '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우표도 '정부수립기념'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건국기원절(개천절)을 이어받아 국경일로도 정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앞서 이 대통령은 같은해 취임사에서도 대한민국의 국권에 대해 '회복', '복권'이라고만 표현했을 뿐 '건국'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취임사 말미에는 '민국 30년'이라며 임시정부의 연호를 이어가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을 주창하는 이들이 국부로 숭상하는 이승만 마저도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의 건국으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들인 셈이다.

이 밖에도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은 헌법과도 대치된다.

1948년 7월에 집행된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다"고 나와 있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고 1948년에 '재건'됐다고 명시한 것이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서도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고 분명히 표현했다.

임시정부에 국민, 주권, 영토의 국가 3요소 중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했다는 주장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를 보면 "우리나라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며 북한 지역을 국내 영토라고 분명히 한 것.

실효적 지배만을 근거로 들면 당장 대한민국도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보면 국가 구성의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를 규정했다. 임시정부는 당시 임시의정원을 통해 입법 활동을 했고 내무부, 외무부 등 행정기관을 갖추었으며 대통령, 국무령 등의 명칭을 사용한 정부의 수반이 있었다. 한국광복군이라는 군대도 갖추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서는 'Republic of Korea'라고 지금의 국호를 썼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에 맞닥드리게 된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CBS노컷뉴스에 "북한이 남조선이라 하고 우리나라가 북한이라고 하는 이유는 민족의 정통성이 서로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하면,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것이 되지만, 1948년 건국론은 남북이 같은 해 나라를 세웠다는 논리가 돼 민족의 정통성을 포기하고 북한과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꼴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48년 건국론은 48년 전까지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두게 돼) 창씨개명 등과 같은 조선총독부의 통치 자료 또한 인정하게 돼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할 빌미를 제공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은 독립선언문 채택 날짜인 1776년 7월 4일을 건국 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파리협정에서 국제적 승인을 받은 1783년보다 7년 빠르고 미국 정부 수립 날짜인 1789년보다 13년 앞선다. 일본은 초대 일왕 즉위 시점인 기원전 660년 2월 11일,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날짜인 1949년 10월 1일을 건국일로 각각 지정했다.

글 싣는 순서
①100년 전 상해 임시정부는 어떻게 수립됐나
②100년전 4월 혁명의 거점 상해에선 무슨일이
③상해 떠난 임정, 각박한 생활 속 빛난 조력자들
④중일전쟁 발발로 풍전등화의 처지 임정
⑤내부의 적이 쏜 흉탄에 갈등의 골만
⑥위태로운 임정에 가해진 네 발의 총격
⑦지독히도 임시정부를 괴롭힌 일본군의 폭격
⑧한국 청년들의 멋과 흥으로 유주 땅을 뒤흔들다
※[팩트체크] 1948년 건국 논란, 이승만도 부정했다?
(계속)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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