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한형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은 부실경영을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박 전 회장 몰락의 전조는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 인수에서 시작됐다는 평가다.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른 박 전 회장은 이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재계 순위 7위로 그룹을 끌어올리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형제의 난'이 벌어지는 계기가 됐다.
박 전 회장이 당시 건설사 1위인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풋백옵션(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을 조건으로 3조원을 마련하면서다.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에 반대하자, 박삼구 전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사들이면서 형제간 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와 대우건설 풋백옵션 여파로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형제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각각 2009년과 2010년 재매각, 일부 계열사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금호타이어는 중국기업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은 2009년 7월 동생을 대표자리에서 해임하고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퇴진했다.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민‧형사상 소송은 진행중이고,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완전히 쪼개졌다.
이 가운데 박삼구 전 회장은 구설수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오너 리스크'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7월 '기내식 공급 대란'이 일었고, 갑작스럽게 기내식 납품을 맡게 된 업체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협력업체 '쥐어짜기' 논란이 일었다.
또 박삼구 전 회장은 여성 승무원들을 행사에 강제로 동원하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두 사건은 형사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오너 리스크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실적도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룹 연간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대표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1월 시세가 2000억원으로 알려진 인천국제공항 격납고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 항공사 운영에 필수인 격납고까지 담보로 잡아야 할만큼 다급한 유동성 위기였다.
절정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22일 '한정' 의견의 감사보고서를 받으면서 주식거래가 중지된 사건이다. 나흘만에 '적정' 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며 관리종목 지정 해제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부실경영 의심은 더 커졌다.
수정된 최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은 282억원으로 전년대비 -88.5%를 기록했고 당기순손실은 195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부채는 수정 전보다 1400억원이나 늘었기 때문이다.
'회계꼼수'로 수백억원의 부실을 숨기려고 했다는 비판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번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이 현재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떨어질 경우, 지난해 말 기준 1조 1328억원에 달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을 즉시 상환해야 할 상황도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29일 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오른 금호산업 주주총회는 부실경영 책임을 묻는 청문회 성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가 박 전 회장이 31.%의 주식을 보유한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 전 회장은 주총을 하루 앞둔 28일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로 사내이사직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불명예 퇴진'을 사전에 막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