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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아귀찜' 간판 500곳 넘지만, '마산식 아귀찜'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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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마산 아귀찜 논문 낸 경남대 이규진 교수

- '아귀는 버려지던 생선'은 아니었다…옛부터 귀한 대접 받던 생선
- 탕으로 먹다 1960년대 마산에서 건아귀 이용한 아귀찜 탄생
- 1970년대 상경, 1982년 마산전국체전 때 전국 확산
- 전국 500곳 이상 '마산아귀찜' 간판 쓰지만 마산식 건아귀찜 드물어
- 마산은 건아귀 정체성 끝까지 지키고, 많이 홍보해야
- 치킨처럼 건아귀반 생아귀반 '반반메뉴'라도 생겼으면

■ 방송 : 경남CBS<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경남대 식품영양학과 이규진 교수

경남대 이규진 교수. (사진=자료사진)

 

◇김효영> 오늘은 먹거리 이야길 하나 해보겠습니다. 창원의 대표적인 음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개인적으로 많이 받는데, 그럴 때 생각나는게 '마산 아귀찜'입니다. 이 아귀찜에 대한 논문을 낸 교수가 있어서 스튜디오에 모셔봤습니다. 창원의 대표음식 아귀찜의 모든 것을 들어보죠. 경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규진 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규진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김효영> 말투를 들어보니까, 마산 분은 아니세요.

◆이규진 교수> 네, 2015년에 경남대학교에 오게 됐구요. '신입 마산시민'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효영> 어릴때부터 아귀찜을 많이 먹어볼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겠군요.
그럼 마산에 오시고 나서, 아귀찜에 대해서 연구를 하신겁니까?

◆이규진 교수> 네 맞습니다.

◇김효영>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규진 교수> 네, 마산하면 누구나 아귀찜을 떠올릴 정도로 대표적인 향토음식인데, 마산아귀찜에 대한 논문이 한 편도 없었습니다. 음식문화를 전공하는 저로서는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논문이 한편도 없는게 늘 제 숙제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무엇보다 자료가 없어서입니다. 문헌자료가 대단히 빈약합니다. 따라서 온갖 설만 분분하지요.

◇김효영> 숙제로 여겨졌다. 마산에 있는 선배 연구자들이 한번쯤은 다뤘어야 할 주제이긴 했군요.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도 마산출신인데, 왜 안하신 겁니까? 하하하.

◆이규진 교수> 저도 아주 일부만, 기초적인것만 정리했다고 보시면 되고, 이걸 시작으로 더 관심이 확산돼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김효영> 좀 전에 '설만 분분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아귀찜에도 그런 설 들이 있습니까?

◆이규진 교수> 네 그렇죠. '원조가 누구다', '이거는 버리던 생선이다'. '혹부리 할머니가 버리던걸 가지고 주워서 개발을 하셨다' 등등 추측만 난무하고, 재인용되고 그랬어요.

◇김효영> 버리던 생선이라는 것. 아귀가 '물텀벙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잡아서 물에다 텀벙 버려서 물텀벙이다 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이 아닙니까?

◆이규진 교수> 네. 버리던 생선이다는게 늘 아귀한테 따라다니는 말인데요, 사실 아귀는 못생긴거 빼고는 영양학적으로나 맛으로나 굉장히 우수한 생선이거든요. 그래서 아귀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통계연보>의 어획고를 보면 아귀는 정식으로 통계에 잡혀있는 어종이고, 우리나라 어민들이 전국에 걸쳐 아귀를 잡았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아귀는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5대 진미' 중의 하나인 고급 식재료였습니다. 도미와 함께 2대 생선이였는데요, 따라서 당시 우리나라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은 당연히 아귀를 식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한국인들의 경우는 구체적으로 아귀를 어떻게 먹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역시 자연스럽게 식용으로 이어졌으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귀의 가격을 살펴보면 1930년에는 고등어의 반 정도의 가격이었습니다. 그런데 1942년에는 고등어보다 비싸졌습니다. 그러므로 아귀는 버려지던 생선이 아닌, 수요가 있었고 상품가치가 있었던 생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하게 여겨지던 생선은 아니었지만 버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효영> 버리던 생선 아닙니다. 일제감점기때 일본인들이 어떻게 요리를 해먹었다는 목격이나 증언은 없어요?

◆이규진 교수> 다양한 연구가 있는데요. 아귀를 내장, 간, 껍질까지, 부위별로 영양소가 다른데, 다 다른 메뉴로 굉장히 즐겨서 먹었다고 합니다. 특히 아귀 간은 프아그라를, 3대 진미라고하는데, 그것에 견줄정도로 맛있는 부위라고 여겨지고 있어요.

◇김효영> 맛있죠. 아주. 참, 논문의 제목이?

◆이규진 교수> '아귀찜의 등장과 확산'이라는 제목입니다.

◇김효영> 아귀찜입니다. 아귀탕이 아니라.

◆이규진 교수> 처음에는 탕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일단 부산 출신의 김종해 시인이나 남해 출신의 백시종 작가의 회고에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아귀탕에 대한 글이 있는데요, "뚝뚝 썰어 넣은 무가 몇 쪽 떴을 뿐인데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하는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두 문인의 연배를 고려해 볼 때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의 풍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남에서는 주로 맑은 탕으로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전라남도에서는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를 넣은 얼큰한 아귀탕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김효영> 그럼 아귀찜이란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이규진 교수> 이렇게 탕으로 먹다가 1960년대 마산에서 건아귀를 이용한 아귀찜이 탄생했습니다.

◇김효영> 생아귀를 말린 건아귀.

◆이규진 교수> 맞습니다. 마산아귀찜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주장이 있는데요, 어느 특정인이 개발했다는 주장부터 6.25때 먹을 것이 부족했던 피난민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주장, 그리고 기존에 있었던 북어찜, 복찜이 같은 음식에 아귀를 적용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 등이 있습니다.

마산아귀찜 탄생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북어찜 같이 마른 생선에 양념을 해서 먹는 기존 요리법이 기본이 되었고, 전쟁 상황에서 식재료가 귀해지면서 피난민들이 당시 마산에 흔했던 건아귀를 여기에 적용했다는 것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몇몇 분들이 아귀찜을 외식 상품화해서 발전시킨 공로가 크고, 또 그것을 즐겨먹어 마산향토음식으로 만든 마산 시민들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효영> 그러면 아귀찜의 시작을 마산으로 보는 것은 맞습니까?

◆이규진 교수> 네, 자타가 공인하는, 마산은 아귀찜의 원조입니다.

◇김효영> 그 원조식당 아직도 있습니까?

◆이규진 교수> 지금 1965년에 창업한 모 식당이 가장 먼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효영> OO아구찜 집이 원조군요. 그런데, 아까 아귀는 전국적으로 다 잡혔다고 했잖아요. 마산에서 시작된 이 아구찜이 전국화된 시기는 언제입니까?

◆이규진 교수>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서울로 상경했다고 보입니다. 지금 신사동 아귀찜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마산아구찜' 집은 1977년 창업했는데 창업주 고향이 마산입니다. 그 분은 고향 음식인 아귀찜이 서울에서도 인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서울에서 창업을 했다고 합니다.

80년대 초반 신문기사에는 서울 명동에 3층 규모의 음식전문백화점이 등장했는데 거기에 아구찜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마산아귀찜 전국으로 확산된 계기는 1982년 마산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국체전에 참가한 많은 임원과 선수들, 관광객들까지 아귀찜을 찾는 바람에 "마산에 아구가 동났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전국에 아귀찜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계셨는데요, 제가 인터뷰를 했던 모 사장님은 새마을 야시장,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 때 아구찜 홍보하러 다니셨는데 처음엔 서울사람들이 아구를 보고 동태냐고 물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처음에는 시뻘겋고 맵다고 사람들이 안 오고 그래서 영업은 별로였는데 한 해 두 해 계속 나가니까 반응이 점점 나아졌다고 합니다. 노력들이 모아져서, 그 후에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서울 낙원동, 신사동, 방배동 등지에도 아귀찜 골목이 형성 되었습니다. 아귀찜이 확산된 증거는 아귀소비량을 봐도 알 수 있는데요, 1960년대 아귀는 주로 수출하는 어종이었는데, 아귀찜 개발되고 아귀거리 형성과 맞물려 국내 소비가 급증하게 되자 1990년대부터 수입량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김효영> 그렇군요. 그야말로 전국화된 것이군요.

◆이규진 교수> 네, 전국에 그냥 '아구찜'이 아니라 '마산아구찜'을 쓰는 상호가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김효영> 수 십 곳? 많으면 백 곳 쯤?

◆이규진 교수> 2015년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전국에 515개입니다. 제주도에도 3곳이나 있어요. 전국화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효영> 그렇군요.

◆이규진 교수> 그래서 명실상부하게 전국화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효영> 아까 아귀를 말려서 만든 것이 원조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생아구로 트랜드가 옮겨져 가고 있지 않습니까? 마산에는 건아구찜을 고집하고 이어가는 집이 많이 있습니까?

◆이규진 교수> 지금도 마산 아구찜거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면 물어보세요. '건아구인가요 생아구로 드실건가요?'라고. 건아구로 먹겠다하면 '건아구는 조금 냄새가 날 수도 있습니다'며 별로 안 권하시더라구요. 그래도 건아구 주세요 해서 먹는 경우도 있는데, 조금 마산에서도 이 건아구를 조금 더 강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김효영> '건 아구찜'을 이어가야 한다?

◆이규진 교수> 마산 아귀찜이 건아귀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분이 필요하여 찜의 조리법을 씁니다. 그런데 부산이나 군산 등은 생아귀를 쓰기 때문에 볶음에 가까운 조리법이지요. 그러니까 '아귀찜'에는 앞에 '마산'이 붙는 것이 맞겠지요.

흥미로운 것은 서울의 아귀찜 골목들도 간판은 모두 '마산아귀찜'으로 달고 있으면서 정작 음식은 마산식 건아귀는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산아귀찜의 정체성은 건아귀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 아귀찜 골목을 갔을 때, 24시간을 영업합니다. 그런데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 서서 기다리면서 먹는걸 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서울에서 생아귀를 먹어본 관광객들이 이제는 원조 건아귀를 맛보러 마산으로 미식여행을 오도록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아귀찜 거리에 조금 더 볼 것, 체험할 것, 즐길 것, 먹을 것이 풍성해졌으면 합니다. 건아귀라고 말은 해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수 있거든요. 어떻게 건아귀 모형도 볼 수 있고 아귀찜 말고도 다양한 아귀메뉴가 개발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제안하는건, 반반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치킨에도 양념반 후라이드반이 있듯이 건아귀반 생아귀반 메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아귀 먹을까 생아귀 먹을까 고민을 하거든요. 이 고민을 해소 할 수 있는..

◇김효영> 반반 메뉴. 혹시 식당 주인한테 건의 해봤을 때, 반응은 어떻던가요?

◆이규진 교수> 아직 건의 안 해봤는데, 방송을 듣고 메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김효영> 조금 번거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꾸 생아귀로 변해가는 트렌드에만 쫒아가지 말고, 우리 건아귀를 지키고, 마산만의 특색있는 음식을 지키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이규진 교수> 네, 맞습니다. 하하

◇김효영> 교수님이 전망하시기에, 아귀찜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메뉴가 될 것 같아요?

◆이규진 교수> 네 당연하죠.

◇김효영> 혹시 손을 봐야된다는 점은 없으세요?

◆이규진 교수> 건아귀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고,많은 홍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최근에 모영화 때문에 '수원왕갈비통닭'이 떴다면서요, 마음 같아서는 우리도 아귀찜 영화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건아귀는 생아귀와는 또다른 깊은 맛과 풍미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건아귀찜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전국에 계신 여러분, 외국인 관광객 여러분들이 원조 아귀찜 맛 보러 마산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김효영> 마산에 오셔서 꼭 건아귀를 드셔보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규진 교수>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지금까지 경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규진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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