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악질경찰' 장미나 역을 맡은 배우 전소니를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말 그대로 악당에 가까워 보이는 문제 많은 경찰 조필호(이선균 분)가 변하는 과정을 그린다. 경찰 압수창고 화재 사고 용의자가 되는 조필호는, 우연히 자기보다 '더 나쁜' 재벌 태성그룹을 목격한다. 이때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후 아무 두려움도 희망도 없다는 듯 사는 미나(전소니 분)를 만나고, 그제야 '덜 부끄럽게 사는 것', '괜찮은 어른'에 관해 생각한다.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활용'된다는 점에서 미나는 도구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였다. 하지만 미나를 연기한 전소니는 단지 미나가 필호의 '감화'만을 위한 존재는 아니라고 봤다. 지키고 싶은 어떤 이들을 보호하고 살피며, 위협이 느껴지면 기지를 발휘해 어른을 난처하게도 만드는, 똑똑하고 행동력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위험천만한 옥상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추잡하게 거래하는 '어른들'의 꼴을 보고, 미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 '어른'이란 무엇이고, '좋은 어른'은 어떤 것일지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대사다.
전소니 역시 '악질경찰'을 찍으면서 '어른의 존재'에 관해 생각해 봤다. '어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전소니를 만났다.
일문일답 이어서.
▶ 이선균, 박해준, 정가람, 권한솔, 박소은 등 여러 배우와 만났다. 배우들 이야기도 궁금하다.선균 선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를 되게 가깝게 느끼시는 것처럼 보였다. 격식을 차린다거나 거리둔다는 느낌이 없었다. 처음 뵀을 때부터 제가 미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 갖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봐주셨다. 본인이 가진 생각을 저한테도 많이 얘기하셔서, 첫 대화에서부터 내가 이 사람과 연기할 때 '각자'가 아니라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같이 하는 씬이 있을 때 한두 마디가 되더라도 도움 되는 말을 해 주셨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저 스스로 답을 생각할 수 있게. 선배님은 그렇게 깊은 뜻으로 하신 게 아닐 수도 있지만, 한두 마디씩 들으면서 제가 깨달은 것들이 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더 늦지 않게 제가 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박해준 선배님은 역할과 다른 모습이셨다. 되게 밝기도 하시고, 재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선균 선배님, 해준 선배님과 셋이 대화하다 보면 많이 웃는 것 같다. (웃음) 선배님이 제게 액션을 가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것도 많이 배려해주셨다. 무심코 하다간 다칠 수도 있는데 많이 챙겨주셨다.
가람 씨는 제가 그전부터 되게 궁금해했던 배우였다. 박해준 선배님도 그렇고, 제가 두 분이 나온 영화를 되게 재밌게 봐서 정가람 씨도 되게 궁금했다. 같이 하게 됐다고 했을 때 기대됐다.
전소니는 '악질경찰'에서 이선균, 박해준, 정가람, 권한솔, 박소은 등과 함께 연기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제가 주로 맞는 편인데 유일하게 때리는 씬이 가람 씨 장면이다. 많이 미안했다. 정말 마음이 불편했다. (웃음) 그때만 해도 서로 교류가 많이 없었다. 선배들하고도 더 안 친했을 때 촬영했어야 해서 너무 어색하고 너무 미안해서 오히려 더 빨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진짜 죄송한데 한 번에 끝낼게요!"라고 했던 거 같고. (웃음) 그때 정가람 씨가 괜찮다고 하면서 많이 받아준 거 같다. (웃음) 또래 배우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지원 역할 맡은 박소은 배우하고는 찍은 장면이 한 씬이었다. 소희 역할 맡은 권한솔 그 친구랑 하는 씬이 조금 더 많았다. 제가 한솔 씨에게 느꼈던 감정을, 선배들이 저한테 많이 느끼신 것 같다. 그 친구도 신인이라 현장이 약간 낯설고 부담도 되고 그랬을 텐데 촬영하면서 되게 겁도 없이 적극적으로 잘해줘서 고맙고 예뻤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선배님들이 제게 해 주신 칭찬도 그런 내용이었다. 아무튼, 소은이랑 한솔이랑 저보다 다섯 살이 어려서 갑자기 제가 엄청난 언니처럼 느껴지더라. (웃음) 셋이 시간을 보내면서는 그냥 친구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 이선균은 인터뷰 당시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미나의 말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라고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등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좋은 어른이라는 게, 진짜 어른이라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다. 저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저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미성년인 사람이나 어린 친구들한테만 필요한 것 같진 않다. 요즘 사람들은 사회를 살면서 기댈 곳이 많이 없는 것 같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가끔 가끔 실감할 때가 있다. 그냥 서로한테 기대면서 사는 것 같은데, 내가 한 사람한테만이라도 어른이 되어줄 수 있다면… 되게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시선으로 내 일만 바라보고 살면 아무한테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저랑 상관없는 일들,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기 일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필모그래피를 보니 2014년 단편영화를 찍은 게 가장 처음이더라.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어릴 때부터 하긴 했다. 일반고 다니다가 고2 때쯤 입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는 예술경영 쪽으로 가게 됐는데, 2학년이 되면서 연극도 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 만드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다.
▶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후에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좀 달라졌나.예전에는 제 즐거움과 행복 같은 거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 직업이 됐으니까 조금 더 약간의… (잠시 침묵)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 연기하면서 내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려면 이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배우는 똑똑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렵지만.
전소니는 지난해 tvN '남자친구'로 TV 드라마에 처음 데뷔했다. 그동안은 주로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72초 드라마 시즌 3-빨래방 여자' 등 웹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했다. (사진=tvN, 매니지먼트 숲 제공)
▶ 배우들은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직업이다. 그동안 오디션을 많이 본 거로 아는데, 짧은 시간 안에 본인을 어필하기 위해 어떤 걸 보여주는지 궁금하다.정말 많이 경험했다. 오디션을 잘 본다는 건 너무 어려운 거 같다. (오디션은) 뭘 기대하는지조차 모호하다. 엄청난 연기력을 바라는지, 아니면 캐릭터의 모습을 제가 배우로서 보여주길 바라는지, 진짜 사람인 제가 그 캐릭터와 닮아있길 바라는지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디션 잘 보는 것도 운명 같은 짝을 만나는 것 같다. 전 오디션을 되게 못 보는 배우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 대화하는 시간이 긴 경우에 캐스팅이 더 잘되는 편이었다. 연기만 딱 보여주고 나왔던 때보다는.
▶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공감능력이 풍부해야 할 것 같다. 이해해야 표현할 수 있으니까. 본인은 공감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우와, 그러게요. 그런 생각을 안 해 봤다. 제가 겪어보니까 그게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 거 같다. 배우 친구들을 봐도,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더라.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친구가 있다면, 머리로 분석해서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전 길러질 수도 있다고 본다.
▶ 웹드라마, 단편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경험했는데 혹시 차이점이 있나.이 영화('악질경찰')가 처음 경험한 상업영화이고 장편영화였다. 그동안 작은 영화들을 하면서 그 나름의 행복과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 큰 현장에 와서는 저만 잘하면 모든 게 다 잘 굴러가더라. 모든 게 다 갖춰져 있고, 하다못해 현장 미술 소품까지도 연기할 때 도움받을 수 있게 잘 만들어져 있고, 액션이나 장치 같은 것도 다 너무 안전하게 준비돼 있었다. 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안정감을 만들어 주는 게 되게 좋았다.
드라마는, 드라마 자체가 처음이어서 그 돌아가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되게 어색함이 많았던 것 같다. 드라마 현장은 아무래도 배우분들이 영화보다 많아서 분위기가 되게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웃음) 제가 어색한 게 있어도 모르는 걸 잘 물어보고 잘 드러내면서 빨리 적응했던 것 같다.
▶ 전소니라는 배우를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작품 추천 부탁한다.
'악질경찰' 전까진 장편을 경험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장편이긴 한데 옴니버스여서 단편에 가깝다. 제가 한 작품들은 주로 단편이다.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쉽고 속상하다. 아! 웹드라마는 보실 수 있다. 근데 오히려 드라마 할 때보다 '72초 드라마 시즌 3-빨래방 여자' 이걸 했을 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제 또래 사람들이 웹드라마를 많이 보나 보다. 저도 실감을 못 했는데 그걸 보고 저를 많이 궁금해해 주시더라. 작업해주셨던 분들과도 너무 좋은 관계로 남아서, 72초 드라마를 보시는 것도 좋겠다.
▶ 올해 계획은.그거에 대해서 아직 생각 안 해봤다. 이 영화 개봉하는 게 저한테는… 개봉하고 홍보하는 게 저한테 되게 낯선 일이다. 처음 경험해보는 거라서 잘 해내고 싶고 후회 없이 잘 마친 다음에 차기작을 생각하고 싶다. <끝>
배우 전소니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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