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악질경찰' 조필호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을 만났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악질경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오는 4월 16일, 5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가 차례로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상업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세월호를 담았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긍정적인 기대만 있던 건 아니다.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악질경찰'이 나오는 범죄물을 세월호 참사와 엮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과 지적의 목소리도 나왔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햇수로 5년을 보낸 이정범 감독도, 타이틀롤을 맡은 이선균도 모두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다. 압도적인 비중으로 영화를 끌고 나간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보다 '세월호 참사'를 범죄물 장르 영화여서 더 마음가짐이 달랐다는 게 이선균의 설명이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은 '악질경찰'을 함께한 배우들부터,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괜찮은 어른'이란 어떤 건지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 좋은 어른이란, 잘 익어가는 인간일종의 '끄나풀'로 기철(정가람 분)을 이용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비리 경찰 조필호(이선균 분)는 우연한 계기로 츄리닝 차림의 소녀 장미나(전소니 분)를 만난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좀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던 미나는 조필호의 '각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선균은 극중 필호와 미나가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 않기에, 필호가 미나 때문에 태성그룹이라는 거대 악에 맞선다는 극적인 전개를 관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개연성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게 우리 일"이라고 전했다.
이선균은 "미나는 되게 날카롭고 자기방어적인, 버려진 들고양이 같은 아이였을 것 같다. 필호가 (미나의) 자해한 칼자국을 보지 않나. 필호도 들고양이처럼 컸던 인물이었을 것 같다. 어떤 사건이 겹겹이 쌓이며 미나에 연민을 느꼈을 것 같고, 질 나쁜 아저씨지만 (미나에) 자기(과거)를 투영해서 공감도 했을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필호 나름대로 (미나를) 보호하려고도 했다. 어느 아이가 나로 인해 그런 선택을 할 때 죄책감이 굉장히 컸을 거다. 마지막에 미나가 남긴 말이 뇌리에 박혔을 것이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악질경찰'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어른들에게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이선균은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한테 하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캐릭터가 이렇게 질 나쁘고 욕을 많이 하는 인물로 표현된 것 같다. 그런 캐릭터의 향연이 약간 부담되고 무거울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이 한 마디에 강한 임팩트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좋은 어른이란 어떤 건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선균. 그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잘 익어가는 인간"이다.
"잘 익어가는 인간. 시대에 맞게. 꼰대들 보면 굉장히 과거지향적이잖아요. '야, 내가 옛날에는 이랬고' 하면서. 시대에 맞게 부끄러움을 알고 잘 익어가는, 그래서 추해 보이지 않고 좋은 향기가 나는 열매 같은 사람. 한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 그 시대에 맞게끔, 잘 익어가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고요. 배우란 직업이 다른 것보다 자기를 많이 돌이켜 보게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장점 같고 어떤 동력이 된 것도 같아요."
◇ 이선균이 말하는 박해준-전소니-정가람이선균은 영화 초반 정가람과, 중반부터는 박해준-전소니와 호흡을 맞췄다. 정가람은 촬영 초반 분량을 다 소화하고 빠져서 아쉬웠단다. 이선균은 정가람에 관해 "제가 '4등'이란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해준이 연기도 좋았지만 보고 '저 친구 누구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때 너무 좋게 봐서 궁금했던 배우"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이 무르익지 않았을 때 다 찍고 가 버렸다. 저한테 많이 맞기도 했다. 이번에 '기묘한 가족'에서 좀비로 나오지 않나. 거기서 배추 먹고 있는데 참… 애가 너무 착하다"면서 "초반에 필호 캐릭터를 강하고 독하게 보이려고 디렉션이 많이 들어갔는데, 가람이한테 더 세게한 부분이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박해준은 한예종 연극원 1년 후배다. 이선균이 1기, 박해준이 2기다. 원래 막역하게 보내는 사이인데 박해준의 입대 시기 때문에 같이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고.
이선균은 '악질경찰'에서 정가람, 박해준, 전소니와 함께 연기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선균은 "걔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선배들한테 '아우~ 형!' 이런 걸 잘 못 했다. 저한테도 자꾸 선배님이라고 해서 제가 '너 왜 그러냐. 누가 보면 내가 너 갈구는 줄 알겠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찍으며 편한 사이가 됐다. 이선균은 "저도 해준이가 연기하는 거 보면 신기하다. '화차' 때 일단 너무 놀랐고, '독전'도, 이 영화도 그렇다. 선한 느낌이 있는 마스크가 너무 좋고 부럽다. 근데 거기에 이상한 광기랄까 똘기가 나올 때 굉장히 묘한 느낌의 캐릭터가 탄생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장미나 역을 맡은 신예 전소니에 대해 묻자 "굉장히 훌륭했다"는 즉답이 나왔다. 이선균은 "저를 먼저 캐스팅하고 미나 역을 두 달 반 가까이 찾으신 것 같다. 처음부터 좀 새로운 얼굴을 원하셨다. 굉장히 비중이 큰 역할이니까. 아무튼 감독님이 택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지 않나. 그래서 너무 보고 싶었고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굉장히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의견이나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차분하게 전달을 잘한다. 배우한테는 그게 되게 중요한 부분이다. 큰 롤을 맡았는데도 꾸밈없이 솔직하게 얘기를 잘하더라" 부연했다.
그러면서 "연기할 때도 와! 저 신인 때 돌이켜보면… (전소니에게선)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스크나 여러 가지가 기존에 겹치는 배우가 하나도 없어서 새롭고 앞으로 행보가 굉장히 궁금하다"고 밝혔다.
◇ '악질경찰'의 진심 전해지길인터뷰한 날은 개봉 닷새 전이었다. 이선균은 "2015년에 준비할 때부터 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는 거라서 관객들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잘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할 것 같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마케팅 시작할 때도 세월호 언급이 없었어요. 저는 이 이야기에 들어가는 데 주저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상업영화에서 이 소재를 이용했다는 시선이 우려되더라고요. 왜 굳이 나쁜 인간들 나오는 범죄 드라마에? 하고요. 그런데 음악 하시는 분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음악에 자기 이야기를 넣듯, 감독님이 (이 영화로) 하고 싶었던 건 사건의 치유와 위로와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녹여내는 게 숙제였기에, 더 많은 고민과 부침이 있었던 영화였죠. 많은 제한 속에서도 뚝심있게 지키고 간 거니까요. 아무튼 이 영화에 대한 결과는 관객의 몫입니다. 영화적인 재미를 잘 즐기고 가시고, 조금이라도 어떤 울림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배우 이선균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선균의 다음 작품은 '불한당'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 김운범과, 그의 뒤에서 뛰어난 선거 전략을 펼친 서창대의 치열한 선거 전쟁을 그린 작품으로 설경구와 이선균 캐스팅이 확정됐다.
이선균은 "안 해 봤던 시대극이라서 저한테 큰 도전 같다. 많은 부담도 느끼고 책임도 느끼고,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