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선거 연령 낮춘 국가에선 '교복 투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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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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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 연석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선거제 개편을 두고 자유한국당이 연일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뿐만이 아니다. 한국당은 선거 연령 하향에도 제동을 걸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비상연석회의에서 "선거연령을 18세로 인하하면 고등학교 교실에 이념과 정치가 들어간다"며 "말도 안 되는 선거연령 인하를 그대로 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고3'인 만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추면 교실의 정치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외국은 18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외국은 대부분의 나라가 만 18세 정도면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라며 "만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추려면 학제를 조정해서 한 살 빨리 학교를 가게 하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진=커뮤니티 캡처)

 

그렇다면 정말 선거 연령이 낮은 국가의 학생들은 한국보다 일찍 졸업하는 것일까?

◇ 교복입고 선거하는 OECD 국가 '최소 20곳'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6곳 중 선거 연령이 만 19세 이상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나머지 35개 국가들 중 오스트리아(16세)와 그리스(17세)를 제외하곤 선거 연령이 모두 18세다. 당초 선거 연령이 20세였던 일본도 2015년 법을 개정해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같은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부 커뮤니티에선 외국과 한국의 학제 차이를 근거로 선거 연령 하향을 반대하고 있다.

선거 연령이 낮은 국가들은 그만큼 졸업이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외국 학생들이 한국보다 졸업이 빠르다고 보긴 어렵다.

OECD 36개 회원국의 일반적인 졸업 나이을 찾아본 결과, 한국을 포함해 고등학교 졸업 연령이 18세 이상인 나라는 최소 20곳이었다.

OECD 가입국 고교 졸업연령

 

OECD가 지난해 발표한 교육지표(Education At a Glance 2018)에 따르면, 대학 입학 전 일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18세에 학교를 졸업하는 OECD 국가는 벨기에, 핀란드, 스위스 등이 있다.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의 경우에도 학생들이 최소 17세에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일 뿐, 18세까지 학교를 다니며 선거를 할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일본, 스페인 등 7개국의 경우 17세에 졸업하며 영국은 그보다 빠른 15세에 졸업하기도 한다.

다만, 영국의 경우에도 학생들이 졸업 이후 바로 사회에 나간다고 보긴 어렵다. 영국은 2015년부터 의무교육 참여기간을 18세까지 늘려, 16세부턴 대학 준비 교육을 받거나 직업 교육을 받고 있다.

◇ 세계적 추세는 선거 연령 낮추기

이미 유럽 국가들 사이에선 선거 연령을 16세까지 낮추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일지라도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맥락이다.

오스트리아는 16세부터, 그리스는 17세부터 국가 단위의 선거에 참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지방선거로 눈을 돌리면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춘 곳은 더 많아진다.

(사진=영국 웨일스 의회 누리집(assembly.wales) 화면 캡처)

 

OECD 회원국 중 에스토니아, 독일, 슬로베니아 등은 지방 선거 수준에서 16세 참정권을, 이스라엘은 17세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2014년 독립투표 때부터 선거권을 만 16세로 하향 조정했으며, 웨일스도 2021년부터 16세에게 지방의회 선거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미국도 지난해부터 16세 참정권 논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미국 정치권의 총기 규제 논의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3월 로렌스 스타인버그 미국 템플대 심리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즈(NYT) 칼럼을 통해 16세 참정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고등학생들은 총기 규제 등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원들을 뽑는 과정에 아무 힘이 없다"며 "회의론자들은 청소년들의 뇌가 충분히 발달했는지 의심하지만 이미 16세 땐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지 능력이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 또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고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입을 모은다.

국회입법조사처 이정진 조사관은 지난해 발행된 보고서 '이슈와 논점'에 "참정권 제한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을 제한할 만큼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또한 "청소년들이 미성숙해서 교사들의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만 18세면 민법상 성인일뿐만 아니라 국방의 의무도 진다"고 말했다.

◇ 정치화 우려된다면, 정치교육 원칙 확립부터

선거 연령 하향을 우려하는 쪽에선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이 학교에 그대로 투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황에서 선거 연령만 낮췄다간 학교가 정치 논쟁의 장소 또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 정치교육에 주목한다.

이정진 조사관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학교 교육에서 정치 교육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청소년으로서 정치에 대해 교육받고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고등학교 때 전반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부실하다"며 "시민의식 등 적극적인 시민의 역할에 대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청소년들이 다양한 견해를 듣고 스스로 정치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치 교육의 원칙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이창호 연구원은 연구보고서 '고등학생들의 정치참여욕구 및 실태 연구'(2017)에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내용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독일 모든 정파의 정치인들과 교육자들이 모여 합의한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주입식 정치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논쟁적인 사안의 경우 수업 시간에도 논쟁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있다.

이창호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 합의는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그 의의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접하고 자신만의 관점이나 사고를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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