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안 의결 여부를 놓고 파행을 겪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다음 과제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논의를 두고도 차질을 빚을 위기에 놓였다.
애초 문재인 정부는 오는 6월 열릴 ILO 총회를 앞두고 이달 안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도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무역분쟁 2단계로 넘어가겠다고 경고하는 등 한국의 ILO 협약 비준은 국제적 관심거리로 부상했다.
ILO 이상헌 고용정책국장도 최근 한국을 찾아 "ILO 협약 87호·98호에 관한 논의가 한국 내에서 건설적으로 진전돼 비준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EU 등에서 많은 압력이 있고, ILO도 10년 이상 여러 차례 비준을 권고한 바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지난 15일 국회 주요 업무 추진계획 보고에서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를 통한 ILO 핵심협약 비준 합의를 올해 중점과제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ILO 협약 여부를 논의할 경사노위는 산하기구인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지난달 25일 실무협상을 진행한 이후 3주째 관련 논의가 사실상 멈춰있다.
우선 현재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확대안 의결 여부를 놓고 지난 7일과 11일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계층별 대표 노동자위원 3명이 본위원회 보이콧에 나서는 등 노사정 간 갈등이 극심한 상태다.
이러한 보이콧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사노위 조직개편도 고려되고 있지만, 양측의 해법은 정반대로 엇갈려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이콧했던 노동자위원들은 노사정의 각 대표자들이 주요 안건 논의에 소외되지 않도록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문성현 위원장 및 상임위원 등은 오히려 본위원회 의결 없이 산하위원회의 의결만으로도 주요 안건의 협의를 마무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이콧했던 노동자위원은 문 위원장의 대안에 자신들이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발할 수밖에 없고, 문 위원장도 현재보다 참여의 폭을 넓히면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가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할 상황이다.
한 경사노위 관계자는 "경사노위의 운영방식은 관련 법에 근거하고 있어 먼저 국회에서 관련 법부터 개정해야 할 수도 있다"며 "단기간 안에 구조개편 논의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경사노위 내부 갈등을 그대로 둔 채 ILO 협약 비준 협의부터 강행하기도 곤란하다.
ILO 협약 비준 조건과 내용을 놓고도 노사 간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탄력근로제 당시의 본위원회 파행이 고스란히 재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에는 노사관계 개선위 소속 공익위원인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월 말 사퇴 의사를 밝히고 위원회 회의에 불참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권 교수는 지난 1월 25일 경영계 요구를 반영한 공익위원 권고안 초안을 제시했다가 노동계의 거센 비판을 받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경사노위가 ILO 핵심협약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자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각자 이와 관련된 노조법 개정안을 내놓는 등 이미 사전 정지 작업에 시동을 걸어둔 상태다.
이 경우에도 만약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국회 입법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진다면 노사 양측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도 탄력근로제 합의 불발에 이어 재차 훼손되고 만다.
그럼에도 과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 합의가 정부 구상대로 이달 안에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