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회적인 관음증과 '지금 멈춰야 한다'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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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불법 촬영 유포라는 2차 가해를 멈추자며 한 누리꾼이 제작한 경고장. (사진=페이스북 캡처)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동영상 유포는 2차 가해입니다.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최근 SNS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른바 '멈춰요' 운동에 등장하는 노란색 경고장의 글이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 유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의 단체 카톡방 내용이 일부 공개된 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자는 운동이다.

정준영의 단톡방 내용이 일부 공개된 후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다.

여성을 성 상품처럼 취급하면서 멀쩡한 여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성관계하거나 성폭행한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관련 영상까지 자랑스럽게 올린 것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단톡방 멤버들은 서로 그런 불법 행위에 대해 희희덕거리며 '그보다 더한'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특히 정준영은 기절한 여성과 성관계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직접 올리고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 여성을 성폭행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불법 몰카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정준영이 14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렇게 정준영에게 피해를 본 여성은 현재까지만 해도 1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많은 팬으로부터 사랑받는 유명연예인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팬들은 심한 배신감을, 많은 여성들은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모두가 공분하고 혐오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SNS 상에는 여성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추측하면서 이들에 대해 신상털기하는 글과 이들의 사진, 동영상이 떠돌았다.

심지어 아무런 근거가 없이 만들어진, 피해자들에 대한 '정준영 리스트'까지 나왔다.

정준영이 촬영해 유출한 문제 영상에 대한 호기심도 끓어 올랐다.

이 영상을 찾아 헤매는 시도가 잇따르면서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유명 포르노 사이트에서도 '정준영 동영상'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고 한다.

여성 피해자가 누구라면서 신상털기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2차 가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애꿎은 피해자를 낳는 것이 된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여성 피해자로 거론된 연예인들은 한결같이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강경대응하겠다고 나섰지만 거론된 것 자체만으로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이들의 상처와 억울함은 누가 치유해줄 것인가.

정준영 동영상에 대해 폭증하고 있는 호기심도 정상에서 한참 벗어났다.

이것은 단톡방에서 정준영 일당이 서로 희희덕거리며 '그보다 더한' 영상을 주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호기심이다.

만약 이들이 단톡방에 들어가 있었다면 정준영 일당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호기심을 보이면서 정준영 일당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이들은 별 생각 없이 막연한 호기심에서 동영상을 찾았을 수 있다.

막연한 호기심에서 했다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SNS상의 이른바 '멈춰요' 운동의 경고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한가지 돌아볼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의 성문화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문화에서 정준영과 그 일당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를 추측하면서 신상털기하고 정준영 동영상을 찾아 헤매는 것도 그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를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건전한 성문화로 바꾸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출발은 여성을 성 상품이 아니라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궁금증을 내려놓고 2차 가해를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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