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칸 그토록 바랐는데…" 떠돌이 끝에 고독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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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주거 ③] 무연고 사망자 장례엔 절반 가까이가 '홈리스'

원룸과 고시원, 여관까지. 서러운 발버둥을 치기에도 비좁은 '비적정 주거지'에 들어가 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엄마, 우리집은 왜 이렇게 좁아?" 온가족의 원룸살이
②목돈 없이 생계 잇고자…화재 후 도로 고시원살이
③"집 한 칸 그토록 바랐는데…" 떠돌이 끝에 고독死


지난달 27일 치러진 유씨의 장례식엔 유씨를 비롯해 나눔과나눔의 지원을 받은 '홈리스' 3명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사진=김명지 기자)

 

제대로 된 집 한 칸 없이 떠돈 삶은 죽음마저 고독했다.

모텔을 전전하며 숙박업소를 집으로 삼는 '달방살이'를 하던 유모(45)씨는 지난 1월 서울 광진구의 한 모텔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씨의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지인 정모(32)씨 한 명뿐이었다.

"오랜 달방살이를 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유씨지만, 따로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했고 결핵을 앓는 등 폐도 좋지 않았지만, 서로 왕래하며 끼니나 병원 치료 등을 신경 써줄 상대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유씨는 해당 모텔에서만 5년 가까이 살았고, 그전에도 이 같이 여관 등을 전전하며 산 것으로 안다는 게 정씨의 말이다.

정씨에 따르면, 유씨는 이따금 정씨를 붙잡고 "나만의 집을 얻어 살고 싶다"고 하소연도 했다.

숙박업소 관계자의 신고로 드러난 나흘쯤이나 지나고서야 발견된 유씨의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로 추정됐고, 유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도 벌써 지난해 11월이었다.

지난달 27일 치러진 유씨의 장례식엔 유씨와 같은 '홈리스' 2명의 위패가 더 있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등의 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은 "장례 지원을 해드리는 분 중 특정한 거주지가 없는 '홈리스'가 45%가량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숨진 사람들을 비롯해 '집 아닌 집'에서 돌아가신 분들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통계에 포함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지난해 7월엔 당시 57세였던 이모씨가 서울 강북구의 한 재개발 구역의 빈집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씨의 주민등록상 마지막 주소지는 여관이었고, 노숙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됐다.

부 팀장은 "열악한 주거지에서, 때로는 주변 사람과의 접촉도 단절한 채 살다 돌아가신 홈리스 분들은 지인의 말씀이 아니고선 생전의 삶을 추측해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나쁜' 주거, 제대로 파악부터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 박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고시원. 화재 장소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창문 없는 방이다. (사진=김명지 기자)

 

가족이 함께 사는 원룸, 화재에 취약한 고시원, 비닐하우스, 특정한 주거지 자체가 없는 경우까지.

유씨와 같은 설움을 막기 위해서는 '적정하지 않은 집'에 대한 폭넓은 정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국제사회와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4일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이 "'홈리스'의 역내 취침 금지 등 한국 정부의 조치들이 주거 환경 개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 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

파르하 특보는 "한국은 정부가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한 데 따라 전반적인 주거 여건은 크게 개선됐지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과 주거 환경의 문제는 여전히 시급한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올해 중점 사업 가운데 하나로 '비주택 거주민들의 주거권 증진'을 꼽았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고시원과 쪽방 등을 일컫는 이른바 '비주택 주거'에서 나아가 유엔이 제시하는 '비적정 주거' 개념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깨끗한 수도와 전기 등 물리적 환경, 가처분 소득 대비 임차료의 비율, 가족 구성원의 특성 등을 두루 고려해 무엇이 '나쁜 주거'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우리나라에 있는 최저주거기준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며 "10살 이상의 '이성' 가족이 원룸에 살지 않도록, 관련 비용을 국가에 청구하게 하는 등의 제도도 있다는 영국 등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공고한 '최저주거기준'엔 '4인 가구 총 주거면적은 43㎡' 등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의 개수 등이 제시돼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비적정 거주민에 대한 좁은 개념도 문제로 지적된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현행 노숙인복지법상 권리를 보장받는 대상은 '노숙인 등'으로 모호하게 정의돼 비적정 거주민이란 큰 개념을 아우르지 못한다"며 "산 홈리스도, 죽은 홈리스도 제대로 실태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진이 진도 1짜린지, 10짜리 있는 그대로 밝혀봐야 진정한 해결책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폭넓은 개념 정립으로 홈리스들의 규모와 질적 속성을 잘 밝혀내고 그에 따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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